왜 우리는 건강하게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일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데가 없어~ 요즘은 입맛도 없고 억지로 먹으면 그나마 다 나와서 내가 어떻게 살아 있나 싶어. 영양제 주사를 맞아도 그 때 뿐이고, 만사가 다 귀찮아. 노인정에 보면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들도 아픈 데가 하나도 없는 것 같던데. 옆집 사람은 90이 넘어서도 날아다녀~ 왜 나만 이 모양인지 모르겠어.”
올해로 80대 중반이 된 순이 할머니는 10년이 넘은 단골 환자다. 그렇다고 일 년 내내 오시는 것은 아니고, 바람처럼 한의원에 나타나셨다가 나아지면 다시 바람처럼 발길을 끊는다.
그간의 안부를 물으니, 말도 말라며,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몇 달 사이에 정형외과부터 심장내과를 다니셨고 최근에는 대장내시경 검사까지 받았다고 한다. 자식들이 연세가 있다면서 대장검사를 만류했지만, 본인은 분명 중대한 문제가 있음에 분명하다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할머니 표현대로라면 검사하다 뭔 일 나는 줄 알았는데, 검사결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한시름 놨다고. 그후로도 몸이 여기저기 아파서 이 병원 저 병원 다녔는데, 오늘 아침 일어나는데 문득 “그래도 나를 젤 잘 아는 것은 김원장이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왔다고 한다.
할머니의 병원 표류기를 경청하고 난 후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라로 물었다. 그랬더니 일단 무릎과 허리부터 시작하자면서 또 한 마디 하신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나만 이렇게 빨리 늙고 아픈지 모르겠어.”
우리 한의원에는 돌잡이 아이부터 구순 노인까지 찾아온다. 성장이나 피부 그리고 다이어트와 같은 요즘 각광 받는 분야를 전문으로는 하지 않는 덕분에,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병만큼이나 그 병이 난 사람을 중시하는 한의학의 특징 때문에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고, 이를 통해 환자의 삶이 병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흐름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시간과 공간을 나노 단위까지 나누고, 인공지능과 로봇이 펼쳐갈 생명공학의 시대에 맞지 않는 방식이지만, 사람과 병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대에 뒤처진 느린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일까? 우리 한의원을 찾는 환자 중에는 역시 어르신들이 많다. 물론 노인들의 만성퇴행성 질환에는 소염진통제와 같은 대증약이 생각보다 효과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분들을 진료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바로 순이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왜 다른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건강한데 나는 이렇게 아픈 곳이 많지?’
잔잔하지만 그치지 않는 너무 긴 고통의 시간은 마침내 ‘죽지도 않고 이렇게 오래 살아서 뭐하냐’는 말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시대를 잘 타고 나셔서 그렇다.”, “뇌와 오장육부가 멀쩡하고 이렇게 치료 받으면서 관리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 않느냐.” 라고 위로한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느리지만 확실하게 쇠잔해지고 있다는 것은 환자도 알고 나도 안다. 물론 이 과정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나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지금도 경제수준에 따라 국가별 기대여명의 차이가 크지만, 현대인들은 대체로 과거보다 오래산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남녀 모두 기대여명이 80세를 넘기고 있고, 매우 빠르게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기대여명의 증가 속도를 건강수명이 따라가지 못했고, 현재 우리나라는 10년 이상 차이가 난다. 즉, 암과 같은 생명을 위협하는 중한 병에 걸리지 않아도, 10여년을 여기저기 아프고 힘들게 산다는 이야기다.
그럼 왜 우리는 건강하게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수명의 증가가 진화의 속도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인류는 아직 80년이 넘게 사는 것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했다. 학자들은 지금도 인간을 문명으로부터 격리시켜서 야생의 상태에 두면 다른 영장류 정도 산다고 말한다. 약 40년 정도 살것이라고 예측한다. 물론 개인차가 있어서 더 살수도 있겠지만. 평균적으로는 그렇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처럼 오래 살게 된 것은 문명 덕분이다. 생존에 가장 위협이 되는 절대적인 기아와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난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여기에 엄마의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태어나는 아이의 건강상태가 좋아졌다. 현대인은 운동이나 식이와 같은 생활습관에서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의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통장에 더 많은 잔고를 채우고 태어나서 잘 관리하면서 쓰게 되면서 과거의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현대인의 몸은 과거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문명은 좋은 점만 가져온 것이 아니고, 스트레스나 이전에 없던 각종 화학물질 그리고 환경의 오염과 같은 건강에 해로운 것들도 함께 가져 왔다. 과거에 없던 유해한 것들을 우리 몸은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이것은 다양한 병의 원인이 된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오래 살지만 또 오래 아플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런 딜레마를 풀기 위한 노력은 다 방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인간의 한계수명 자체를 늘리려는 연구다. 현대판 진시황의 불로초 프로젝트인 셈이다. 지금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이 과연 옳은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이런 연구는 계속 될 것이고 일정한 성과들을 내고 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건강을 돌보면서 지금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이 그리 축복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면서 더 관심이 가는 것은 건강하게 사는 일, 즉 최대한 노화를 늦추고 건강수명을 늘리는 일이다.
천천히 늙으면서 젊었을 때와는 또 다른 노년이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수준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료의 목표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생명을 기르는 법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양생養生을 강조한 한의학의 관점과도 서로 통한다. 양생은 요즘으로 치면 예방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의학의 양생에서는 병을 예방하고 몸과 마음이 좋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평소에 꾸준히 노력할 것을 강조한다. 일상의 생활습관과 루틴이 양생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왜 나만 더 빨리 늙을까? 하는 순이 할머니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이 그림은 수학시간에 배운 정규분포 곡선이다.
진료를 하다보면 A와 B 영역의 환자를 만나게 된다. A영역의 사람들은 아무리 뭘 해도 안되는 사람들이고, B영역의 사람들은 뭘 해도 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평등과 공평을 추구하지만, 그것은 이상속에 존재할 뿐,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떤 집안에서 어떤 유전자를 물려 받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운에 달린 것이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A와 B 영역의 사람들을 건강에 대입해 보자. A에 속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건강관리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다. 식이도 조절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영양보충제도 잘 챙겨 먹는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곧잘 아프고 때로는 중한 병에 잘 걸리기도 한다. B에 속하는 사람들은 건강관리가 뭐야? 라고 말한다. 술과 담배도 즐기고, 음식도 가리지 않고 운동도 별로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병에도 잘 걸리지 않고 오래 산다.
세상 참 불공평하구나 싶다. 그래도 너무 낙담하지는 말자. A의 사람들도 조심하고 노력하면 큰 탈 없이 타고난 수명을 다 마치기도 하고, B의 사람들도 방탕함이 도를 넘으면 중한 병에 걸리고 단명하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이 두 영역에 속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매우 적고,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A도 B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속한다. 내가 보기에 순이 할머니도 여기에 속한다. 운이 좋게도 평소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건강의 질은 물론 건강수명과 노화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 건강관리라는 것이 단기전이 아니라는 것이고, 특별한 음식이나 약 그리고 운동 한가지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건강을 온전히 돌보는 일은 거의 종합예술 혹은 삶의 기술에 가깝다. 몸은 물론 감정과 생각까지 아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노년의 건강은 조금씩 몸과 마음의 기능이 허물어져 내리는 내리막을 기본 전제로 하기 때문에 더 어렵다. 젊었을 때 잘 통했던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좋은 효과를 받던 약물도 오래 쓰면 효과가 줄어 들거나 도리어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 잘못하면 약을 먹다 배가 부르게 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우울한 상황에 처하지 않고 가능한 중한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산을 관리하듯 내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공든 탑도 무너지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좀 더 공들여서 탑을 쌓는 수밖에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이라는 탑을 잘 쌓을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그것을 묵묵히 실천해야 한다. 영어에만 왕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건강에도 왕도는 없다.
순이 할머니가 말하는 것처럼 나만 아프고 빨리 늙는 것이 아니다. 내가 부러워하는 그 사람도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아파하고 서서히 늙어가고 있다. 여기에 예외는 없고 잠시 그렇게 보이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늙는 길은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은 막대로 치려했더니, 백발이 자기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라는 싯구처럼 노화는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화를 방지한다던가 영원한 젊음을 선물한다던가 하는 광고문구는 마치 노화는 해로운 것이고, 노년은 비극인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늙는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노화는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고 수용하고 타협하고 그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삶의 과정일 뿐이다.
순이할머니의 이야기를 한참을 듣고, 또 치료와 당부가 한참 이어졌다. 치료 잘 받았다면서 할머니는 씩~ 웃으면서 또 온다면서 가신다. 할머니의 웃음이 어떤 의미일까? 노년은 때론 참으로 미스테리한 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