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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컬리 Dec 22. 2019

겨울 시래기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는 방법

시레기밥과 양념장, 시레기국, 손두부로 만든 반찬

나는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

2012년 7월 상주로 귀촌하여 학교에 얹혀 지내다, 겨우 동네에 빈집하나를 구해 3년동안 비어있던 집의 구석구석을 수리해서 막 들어가 살기 시작하던때가 12월 이었다. 집수리를 마친 그 집에 들어가던날 첫 눈이 내렸다. 내린눈에 가려진 도랑을 구분하지 못해 바퀴가 빠져 지인의 도움으로 겨우 건져 올렸고, 길고도 긴 눈길을 빗자루 하나로 쓸어내느라 안그래도 안좋은 허리가 나갔다. 그해 12월은 야속하게도 일주일에 한번씩 폭설이 내렸다. 잊을 수 없는 2012년의 12월이었다.  

나는 귀촌과 동시에 맞이한 이놈의 눈과 추위 때문에, 아침마다 꽁꽁 얼어붙은 차를 녹여내느라 애를 먹었고 운전대가 너무 차가워 손을 호호 불어가며 운전하느라 엉엉울어댔다. 겨우 차로 5분거리에 있는 학교였건만. 그 길이 얼마나 춥고 서글프고 외로웠던가. 그렇게 촌에서 맨몸으로 맞이한 나의 겨울은 시리고 서러웠다   


그렇게 몇년을 고생한 끝에, 나는 상주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대구로 돌아왔다. 

맨몸으로 추위에 맞섰던 그 겨울의 기억을 아직도 간직한채 겨울이 되면, 내복과 패딩을 쟁여놓아야 마음이 놓인다. 


상주에서 대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괴산에 있던 아지트 덕분이었다. 이곳이 있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다시 대구로 돌아와 주말이면 괴산의 아지트로 향했다. (그렇게 5도2촌의 삶이 시작되었다) 

2014년 11월 아지트에서 겁없이 김장담그기에 도전한 적이 있다. 마당에 심은 배추와 옆집 어른에게 얻은 배추를 도합 100포기 가량에 도전한 것이다. 직접 키운 배추는 알은 작았지만 그 자체로 달고 맛있었고, 여럿의 손맛이 들어간 김장김치의 맛은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춥고 고생스러웠던 기억과 함께. 김장은 실내에서 해야한다는 것을, 각자 알아서 해먹자는 것을 다짐하게 했던. 어려운 작업이었다. 


시레기는 달랐다. 밭에서 기른 무를 뽑아 밑둥을 잘라 줄기채 삶고 널어두었더니 아지트에 갈때마다 훌륭한 식재료가 되어주었다. 널어두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김치는 냉장보관을 해야하기에 차가운 상태로 먹지만, 시레기는 불리고, 삶아서 따뜻한 상태로 먹는다

겨울의 찬기운을 온몸으로 흡입하며 말려진 시레기를 냄비에 담아 삶아낼 때는 신기하게도 따뜻한 향이 난다

보글보글 또골또골 자갈자갈 거리며, 시레기는 세상 따뜻해 진다

그렇게 나는 시레기란 식재료를 알게 되었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뜻한 향을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은 시레기를 사먹는다. 한살림에서 시레기를 사면, 잘 마른 아이가 포장되어 온다

이 아이를 그냥 두었다가 먹을만큼 물에 불리고, 껍질을 살짜기 벗겨내어 푹 삶아내면 요리 준비 끝.

밥할 때 같이 넣으면 시레기밥, 된장과 함께 끓여내면 시레기국, 된장양념에 조물조물 무치면 시레기나물


나는 시레기밥이 젤 좋다.

양념장만 잘 만들어 비벼먹으면 간단하고도 속이 든든하다. 시린 뼈속까지 채워진다

겨울이 깊어갈 때엔 둘러앉아 시레기밥을 해먹어야지. 

시레기 삶으며 따뜻한 향을 나눠야지.  

 

2014년 11월 시래기를 삶아 널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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