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아빠가 알아야 할 육아 개념
멧 데이먼과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영화 굿 월 헌팅 혹시 기억하시나요?
멧 데이먼이 연기한 주인공 윌은 수학, 법학, 역사학 등 모든 분야에 뛰어난 재능이 있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고 MIT 대학의 청소부로 일합니다. 어느 날 윌은 우연히 칠판에 적힌 수학 문제 (MIT 수학 교수가 세계에서 몇 명 밖에 풀지 못한다며 냈던 문제)를 풀게 되고, 이를 알게 된 수학 교수는 그를 제자로 삼고 싶어 하지만 윌은 본인의 부족함이 드러날까 봐 제안을 거절합니다. 상처로 가득한 윌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수학교수는 정신과 의사 숀 교수에게 윌을 부탁하고 영화는 이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윌이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좋은 영화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작년 초 이일준 정신과 선생님의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라는 강의를 들은 후 윌의 상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어린 윌은 새아버지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하며 자라는데요, 저는 당연히 윌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일준 선생님께서는 윌이 마음의 문을 닫은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보다는 '내가 부족하고 문제가 있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한다 -> 나는 맞아도 되는 아이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데요, 3살 아이는 아버지의 폭행과 폭언에 대해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서 그렇다'라고 생각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만약 새아빠가 나쁜 사람이어서 내가 고통받는다고 인식한다면 내가 새아빠를 떠나 더 이상 보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그렇게 하지 못하죠. 3살 어린아이에게 새아빠(가족)를 떠난다는 것은 죽음과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학대를 당하는 어린아이들은 '아빠가 나빠서'가 아니라 '내가 못나서,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맞는다고 생각하게 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감이 없거나 나의 부족함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성인이 되었지만 무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아빠를 떠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나로 살고 있으니까요.
윌의 상처를 알게 된 숀 교수는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너 때문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서야 마침내 윌은 무의식 속 어린 자신의 상처를 극복한 후 현재를 살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주관대로 선택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의식에 많은 영향을 받고 살아갑니다.
일반 가정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예를 들어볼까요?
이무석 박사의 '마음'이라는 책을 보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직장인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가면서 외로움과 우울증에 빠진 강군 이야기가 나옵니다.
강군의 아버지는 말단 직원에서 시작하여 40대 중반에 3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기업의 이사에 오를 정도로 자수성가하셨지만 매일을 전쟁 같이 살고 계신 분입니다. 강군은 아버지의 교육열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영어, 일어, 중국어에 능통하고 공부도 1등급이지만 늘 외롭고, 우울해하며, 미국 유학 가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있는 쪽을 택합니다.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는 강군의 아버지는 아들에게도 냉정하셨습니다. 강군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마침내 전교 1등을 하고 아버지의 칭찬을 기대했지만 정작 아버지께 들었던 말은 '자만하지 마라, 너보다 뛰어난 애들이 수없이 많다'라는 다그침이었습니다. 어쩌다 성적이 떨어지면 '이건 정말 내 아들답지 않구나. 실망이다'라는 말을 들었지요. 덩치가 산만한 사촌 형에게 맞고 억울함을 호소했을 때도 아버지는 아들의 나약함을 질책했고 늘 바쁘셨기 때문에 졸업식, 생일 파티 등에도 얼굴을 보이지도 않으셨습니다. 강군의 입장에서 존경하는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면 아파도 울지 않아야 했고 항상 1등의 자리를 지키는 최고의 명품 아들이 되어야 했던 것이죠.
어린 시절 아이다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강군은 결국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외로워도 억울해도 표현하지 않고 숨기는 착한 아들로 자라고 말았습니다. 정신 분석 상담을 해 보고,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부터 '얌전하다' '착하다' '너희 부모님은 걱정할 것이 없겠다'라는 말을 듣고 자란 저 역시 '착한 아이 콤플렉스' 때문에 제 감정을 많이 억제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모습의 저는 얌전하고 착한 아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요.)
우리 대부분은 3-4살 이전 유아기에 형성된 인성을 중심으로, 4-6세에 맺은 관계를 토대로 평생을 살아간다고 합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우리가 무의식과 의식 속에 쌓인 핵심 기억에 의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죠.
물론 어린 시절 형성된 인성과 관계를 바탕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기억들만 줘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불가능한 이야기일뿐더러 긍정적인 기억 못지않게 좌절이나 슬픔 또한 성장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부모가 하는 언어 습관이나 행동들이 그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아이들의 감정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우리 아이들이 감정 상태를 잘 보살펴줄수록 우리 아이들은 감정에 대한 편견이나 구속 없이 여러 감정을 자유롭게 느끼고 유연성 있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