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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더라도 나답게, 영화 <카모메 식당> 리뷰


이 영화의 첫 장면은 핀란드의 뚱뚱한 갈매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뚱뚱한 동물에게 자꾸 마음 쓰게 된다는 주인공, 사치에 씨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그녀는 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치에 씨는 핀란드에서 일본의 가정식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가게의 이름은 '카모메(갈매기) 식당'. 동물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좋아해서 뚱뚱한 동물들에게는 더 마음 쓰게 된다는 그녀가 식당을 하는 건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지 않았을까. 왜 꼭 핀란드여야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주인공의 말마따나 일본에서 아침으로 자주 먹는 연어구이, 핀란드에서 오는 연어와의 공통점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서로 조용하고 친절한 면이 닮은 나라이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


카모메 식당은 한참 동안 손님이 없었다. 그저 사치에 씨만이 애꿎은 식기를 닦고 또 닦으며 식당을 지켰다. 하지만 당장 손님이 없다고 해도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첫 손님이 된 일본 애니메이션 덕후인 '토미'를 시작으로 갓챠맨의 가사를 알려주다가 사치에 씨의 집에서 함께 살며 일을 돕게 된 미도리 씨, '에어 기타(실제로 기타 없이 치는 시늉만 하는) 페스티벌'에 진심인 핀란드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부러워 무작정 왔다가 공항에서 짐을 잃어버려서 얼떨결에 함께하게 된 마사코 씨까지. 사치에 씨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카모메 식당은 이들의 만남에 공간적 매개가 된다.

처음에는 혼자 식당을 지키던 사치에 옆에 사람이 하나둘 이들이 늘어난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카모메 식당에는 핀란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결말에 이르러서는 카모메 식당이 비로소 핀란드의 식당이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어느덧 일본 사람보다 핀란드 사람들이 더 북적북적해진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 속 핀란드의 모습과 카모메 식당은 많이 닮아 있다. 바다에 둘러싸인 나라답게 바다를 중심으로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돋보이고, 빛과 그늘이 공존하며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조도로 연출되는 장면들은 손님이 적든 많든 한결같은 친절함과 느긋함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사치에 씨의 평정심과 닮아 있다. 조금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면 난리 법석을 떠는, 경계심 많은 미도리 씨와 대조되어 그녀의 평정심이 사뭇 멋지게 느껴진다.

가게에 손님이라곤 첫 손님이라는 혜택을 받으며 매일 무료 커피를 마시러 오는 토미밖에 없었을 때도 그녀는 동요하지 않았다. 매번 가게 앞에서 속닥거리기를 반복하다 가버리는 할머니 삼총사를 볼 때에도 묵묵히 가게 접시만을 닦던 그녀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창문 밖으로 자신을 뜨겁게 노려다 보는 여자가 대뜸 들어와 "술 한 잔 줘"라고 말했을 때에도 놀라는 기색 없이 보틀을 가져와 술을 따라주던 그녀였다.

나는 늘 무의식적으로 경계심을 갖고, 그래서 작은 변화 하나하나에 깜짝 놀라기를 잘한다. 무언가 마음처럼 잘되지 않으면 미래의 근심까지 끌어다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극중 인물로 따지자면 미도리 씨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장사가 잘되지 않아도, 밖에서 낯선 여자가 본인을 노려 보거나 여성 무리들이 속닥거리며 그냥 지나쳐 가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씽긋 웃어 보이고 마는 일-을 다 하고 자신이 해야 될 최선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행하는 사치에 씨의 태도가 퍽 인상 깊었다. 어떤 경우에도 평점심을 유지할 수 있는 그 마음가짐이 내가 이야기하는 어른의 가장 큰 요소라는 점에서 사치에 씨의 모습이 유난히 대단해 보였다. 그런 사치에 씨를 닮은 가게 분위기와 핀란드의 잔잔한 도시 풍경이 번갈아가며 연출되는 게 이 영화를 보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 하나는 제3자의 입장에서 행복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너무 가까워서 잘 보이지 않는 게 있는데 그중 하나가 '행복'이다. 이 영화에서는 가게를 지키는 이들이 함께하는, 별거 아닌 가게 안 일상을 통해 행복을 보여준다. 가게에서 자주 등장하는 메뉴인 드립 커피를 내리고 원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드는 모습들은 일상의 소중함을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게끔 한다. 그야말로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이런 것 아닐까. 10평 남짓한, 화려한 것 없는 그 작은 가게 안에서 보이는 소소함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


이 영화는 어느 한 시기에 각자 다른 사연을 갖고 모인 이들의 소통과 공존을 보면서 스며들어가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은 뭉근한 마음이 들게 한다. 바라는 것 없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순간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영화이다. 화려한 것도, 자극적인 것도 없는 영화이지만 한 편 보고 나면 이토록 평범한 삶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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