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walking somewhere I don’t know…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처럼, 나는 지금 기억 속 어딘지 모를 거리를 걷고 있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이 끝난 지 꽤 지났지만, 내 플레이리스트는 여전히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 좋은 드라마는 보는 사람마다 다른 레이어를 입힌다. 누군가는 두 여성의 우정으로, 누군가는 존엄한 마침표에 대한 고민으로 이 드라마를 기억하겠지만, 나에게는 '좋아하면서도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관계의 디테일'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드라마의 OST를 들으면 어김없이 'K'가 떠오른다. 은중과 상연처럼 섬세한 결은 아닐지라도, 내 유년 시절을 관통했던 단짝 친구. 그리고 나에게 처음으로 '열등감'이라는 단어를 가르쳐준 아이.
K와의 첫 만남은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버지는 가세에 비해 자식 교육열만큼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혹은 우리 집이 교복집을 하던 시절, 제법 빳빳해진 교복 깃만큼이나 집안 살림에 자신감이 붙으셨던 아버지의 허세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3년간 친구들과 잘 다니던 공립학교를 떠나, 뜬금없이 사립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게 쉽지 않은 일이기에, 어른들만의 세계에 비밀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 먹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아직까지 그때 일을 물어보지 않았다.
전학 첫날의 분위기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교실에서 선생님은 피아노 앞에 나를 세우고는 다짜고짜 연주를 해보라고 했다. 내 등 뒤로 쏟아지던 수많은 호기심 어린 시선들. 나는 건반 위에 손도 올리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선생님이 야속했던 게 아니었다. '누구나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안다'는 그 당연한 전제가, 그 세계의 상식이 나를 압도했다. 유치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내가 감히 침범해서는 안 될 세계에 들어왔다는 직감. 그 어린 날의 문화적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 주눅 든 내 앞에 나타난 것이 K였다.
기죽은 전학생에게 유일하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준 아이. 물론 그 친절함의 배경에는 압도적인 여유가 있었다. K의 집 지하실에는 우리 집 현관문보다 더 큰 스크린과 오디오가 있었고, 겨울이면 스키를 타러 가는 것이 당연했고, 집에 영어 선생님을 불러 라보 수업을 했다. 나는 옆에서 기쁘지 않은 웃음을 지으며 그 풍요를 경외했다.
K는 운동도 잘했고, 잘생겼으며, 인기도 많았다. 우리는 붙어 다녔지만, 그 관계의 명암은 뚜렷했다. 그는 언제나 주인공이었고, 나는 그를 빛내주는 조연이었다.
그가 성룡이었다면, 나는 원표였다.
함께 앵글에 잡히지만, 결코 메인이 될 수 없는, 하지만 메인 옆에 있어야만 화면에 나올 수 있는 존재였다.
선생님은 무슨 의도였는지, 어떤 교육적 목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서로 마음이 통하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알아서 같이 앉게 했다. 내가 속으로만 좋아했던 여자아이는 K와 같이 앉았고, 나는 그 여자아이의 친구와 앉았다. 그래야 그 주인공들의 세계에 계속 머물 수 있다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도 알고 있었다.
좋아했지만 질투했고, 친했지만 늘 패배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나는 한 번도 K가 내 친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뒤에도 우리의 우정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K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안의 부를 이용하여 투자를 시작했다. 재개발 사업 실패와 함께 집안의 부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사업 실패 때문인지 결혼 2년 만에 이혼 도장을 찍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 길로 K는 잠적했다.
몇 년 후, 누군가는 어느 빌딩에서 발레 파킹을 하는 그를 보았다고 했다. 누군가는 서울역 근처에서 노숙인 차림의 그를 닮은 사람을 보았다고 했다. 술자리에서 K의 몰락은 종종 화제가 되었지만, 정작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그를 찾아 나서지는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 살기도 바쁘다"는 핑계는 얼마나 편리한가. 하지만 내심 알고 있다. 내가 그를 찾지 않는 진짜 이유는 바빠서가 아니라는 것을.
As if there's nothing I can say for sure…
음악이 다시 흐른다. 나는 어릴 때 K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과연 친구가 맞을까. 그럼, 왜 나는 K를 찾지 않을까. 무너진 K를 보는 게 두렵기 때문일까, 내 삶이 복잡해지는 게 두려워서일까.
어쩌면 나는 K에게 단 한 번도 진짜 친구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열등감을 느끼며 함께 걷던 그림자였을지도.
내 휴대폰에는 아직도 K의 번호가 남아 있다. 이미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을 그 번호를. 그가 친구였는지 아닌지,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는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There's no time for me to think of it…
음악은 계속 흐르고, 나는 여전히 어딘가를 걷고 있다.
https://youtu.be/IUVwSLow-Mk?si=6KK4ZklshQaDJ04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