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목적 없이 서점으로 향한다. 정처 없는 발걸음은 으레 입구에서부터 멈칫하게 된다. 화려한 추천사로 한껏 멋을 부린 신간과 베스트셀러들이 나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인문, 경제, 과학, 문학. 마치 잘 정비된 계획도시의 구획처럼 반듯하게 나뉜 코너들은 저마다의 지적 호기심과 매력적인 이야기로 시선을 잡아챈다.
모든 구획의 입구에는 매대가 있다. 그곳에 편안히 누워 화려한 표지, 즉 자기 얼굴을 뽐내는 건 오직 선택받은 책들만의 특권이다. 출판사의 기대를 한 몸에 받거나, 이미 수많은 독자의 손길을 탄 인기 도서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자리다. 매대 사이를 걷는 건, 마치 도시의 가장 화려한 대로를 활보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나의 발걸음은 그 화려한 대로를 지나쳐, 책들이 어깨를 맞대고 빽빽이 서 있는 안쪽 서가로 향한다. 그곳의 책들은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다. 오직 좁디좁은 책등에 적힌 제목 하나만으로, 무심코 지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넬 뿐이다.
화려한 얼굴은 감춰져 있지만, 좁은 등 위로 건네오는 말들은 때로 더 깊숙이 파고든다.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보낸 불안". 짧은 제목 한 줄이 마음에 안도감을 주기도 하고, 현재를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나를 멈춰 세우기도 한다. 그렇게 수많은 책이 좁은 등을 내보이며 말을 건네는 가운데, 유독 내 발길을 붙잡는 문장이 있었다.
"나를 알아가는 삶"
출판사도 작가도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이 투박한 문장이 왜 이토록 가슴에 콕 박히는 걸까. 나는 서가 앞에 멈춰 서서 그 문장을 오래도록 곱씹어 보았다.
나를 알아가는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남들 학교 다닐 때 학교 다니고, 취업할 때 회사에 들어가고, 결혼 적령기에 가정을 꾸리는 삶. 나는 사회가 정해놓은 그 보편적인 궤도를 이탈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 성실한 과정에서 나는 과연 나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아니, 좋아하는 게 있기는 한 건지.
그 책의 제목은 "나를 알라"는 명령형도, "나는 누구다"라는 정의형도 아니었다. 그저 "알아가는"이라는 현재진행형의 수식어일 뿐이었다. 완결되지 않은 그 불완전한 문장 속에, 내가 평생 외면해 온 질문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나에게 허락된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 그 시간 안에 나는 나를 온전히 알 수 있을까? 아니면 영영 나라는 사람을 모른 채, 타인의 삶을 흉내 내다 떠나게 될까.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다 보면 언젠가 내 안에 나라는 지층이 단단히 쌓이기는 하는 걸까.
나는 책을 꺼내지 않고, 그저 손가락으로 그 좁은 등을 한번 쓸어보았다.
책의 가장 단단한 부분은 화려한 표지가 아니라, 수백 장의 페이지를 묵묵히 붙들고 있는 이 등이다. 어쩌면 나를 지탱하는 힘도 남들에게 보이는 화려한 얼굴이 아니라, 나를 알아가려 애쓰는 이 고단하고 좁은 등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한 문장이면 충분했다. 나는 책을 꺼내는 대신, 그 문장을 마음에 꽂아두고 서점을 나섰다.
https://youtu.be/UYU-8L06rfI?si=gC0oqZoBtoqzayb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