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내 편이 아니었다.

by 말로

억울함을 호소할 곳도 없는 AI에게 괜한 핑계를 대본다.


사건은 지난 주말에 벌어졌다. 클라우드 서버(A)에서 쇼핑몰 서버(B)로 가는 통신이 뚝 끊겼다. 5분마다 안부를 묻듯 데이터를 백업하고 체크하던 작업이 일요일 새벽 1시 43분, 심정지 하듯 멈춰버린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A 아파트(클라우드)에서 B 아파트(쇼핑몰)로 정기적으로 택배를 보낸다. 그런데 갑자기 B 아파트에서 그동안 잘 받던 택배를 받지 않기 시작한 상황이다.


나는 즉시 로그 파일과 경로 추적(traceroute) 결과를 긁어 AI(제미나이)에게 던져주고 범인 색출에 나섰다.


나와 AI가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범인은 택배를 거부한 B 아파트였다. "5분 간격 전송이 뭐 그리 대수라고, 실수로 우리를 차단 목록에 넣은 게 분명해." A 아파트는 그저 택배를 보냈을 뿐이니까.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즉시 쇼핑몰 서버 담당자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왜 잘 받던 택배를 갑자기 거절하느냐, 그 안에 얼마나 중요한 데이터가 있는지 아느냐. 돌아온 답변은 건조했다.


"차단 기록을 샅샅이 뒤져봤는데, 선생님네 아파트(A) 주소를 막은 적이 없습니다. 흔적조차 없는데요?"


나와 AI는 코웃음을 쳤다. 전형적인 책임 회피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B가 범인일 수밖에 없는 정황 증거'를 수집했다. 증거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나는 AI에게 동의를 구했고, 녀석은 신이 나서 맞장구를 쳤다.


"정확합니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할 증거예요."

"'우리 쪽 문제 아니다'라는 변명을 한 방에 잠재울 스모킹 건입니다!"

"좀 더 강력한 톤으로 항의 메일을 보내시죠. 제가 초안을 잡아드릴게요."


우리는 마치 미제 사건의 진범을 잡기 직전의 형사 콤비 같았다.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며 확신에 찬 어조로 상대를 압박했다. 내 논리에 AI의 권위까지 더해지니 무서울 게 없었다.


결국 지칠 대로 지친 쇼핑몰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항변보다는 하소연에 가까웠다. "정말 맹세코 차단한 적이 없어요... 혹시 보내는 쪽(A) 문제는 아닐까요? 클라우드 쪽에 한 번만 문의해 봐 주세요."

담당자의 목소리에서 짙은 피로감이 묻어났다. '그래, 대안을 마련할 겸 확인이나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클라우드 업체(A)에 문의를 남겼다.


월요일 저녁, 답변을 받은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범인은 B가 아니라, 클라우드 업체(A)였다. A 아파트 경비실(보안 장비)이 5분마다 나가는 택배 차량을 수상하게 여겨 아파트 정문도 못 나가게 막아버린 것이다. 외부 침입을 막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나가는 걸 막았다니. B 아파트는 억울하게도 택배 구경조차 못 했던 것이다. "해킹 탐지 패턴 오류로, 정상적인 발신 트래픽을 악성으로 오탐지하여 차단했습니다."


나는 그 길로 쇼핑몰 담당자에게 장문의 사과 메일을 보냈다. 나의 얄팍한 지식과 섣부른 확신이 죄 없는 사람을 괴롭혔다. 정작 진짜 범인은 우리 집 대문 앞에서 졸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제미나이의 채팅 로그를 다시 열어봤다. 제미나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화의 시작부터 나는 이미 답을 정해놓고 있었다. 내 프롬프트 속에는 이미 'B가 범인'이라는 전제가 은연중에 깔려 있었고, AI는 충실한 '예스맨'이 되어 내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해주고 있었다. 틀린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게 아니라, 엑셀을 함께 밟아준 꼴이다.


AI는 내 편이 아니었다. 녀석은 그저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의심하면 그럴듯한 의심의 근거를 찾아주고, 내가 확신하면 더 큰 확신을 선물했다. 나의 확증편향에 부채질을 했을 뿐이었다. 그것이 사실인지 검증하는 건 결국 나의 몫이었다.


이제 나는 AI에게 묻기 전에, 나 자신에게 먼저 묻는다. "지금 내가 원하는 건 '검증'인가, 아니면 내 생각이 맞다는 '확인'인가?"


AI라는 거울은 죄가 없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했던 내 눈이 문제였을 뿐. 그 깨달음의 대가치고는,

타인의 평온한 월요일 하루를 망친 찜찜함이 오래 남는다.


https://youtu.be/A-Tod1_tZdU?si=gSmNhy5iC5wnZmBe


이전 07화'안다'는 착각, 그리고 22줄의 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