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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

카피라이터로 24년, 그럭저럭 터득한 글쓰기의 기본에 대하여

by 말로

글을 잘 쓴다 라는 것은 과연 어떤 걸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명료함과 간결함이 핵심일 수도 있고, 수려한 문장을 접했을 때 저절로 나오는 감탄을 의미할 수도 있다.

내용의 깊이를 따지기도 하고,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나 통찰이 번뜩일 때도 ‘이 친구 글 좀 쓰는데…’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그 기준 자체도 제 각각이고, 국가에서 정한 표준 점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객관화되기는 불가능하다.


이렇듯 글을 잘 쓰는 것도 모호하고 어렵지만, 자리에 앉아서 글을 쓴다는 출발부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떠오르는 심상을 고민 끝에 고르고 고른 단어로 배치해야 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정리해서 이해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중력 상태의 머릿속에서 떠도는 생각들을 글자로 앉혀 봤자 낙서 그 이상 되긴 힘들다. (천재 작가들은 이런 경우도 걸작을 만들기도 하지만…)


어렵다고 글 쓰기를 마냥 외면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유튜브 시대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영상으로만 표현할 수 없고 (일상이 틱톡이라면 모를까…),

오히려 SNS와 댓글 등에 짧게나마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글쓰기는 일상다반사이다.


그래서, 글 쓰기에 대한 책들이 꾸준히 나오는 것 같다.

한국 성인 연간 평균 독서량이 8권(7.5권)이 안 되는 현실에서 ('19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 -문화체육관광부) 글 쓰기에 대한 책이 계속 나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아마도, 취직을 위해 이력서를 쓰거나, 회사 높으신 분들께 드릴 보고서를 쓰거나,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는 그에게 연애편지를 쓰거나…

아무튼 필요에 의해서 글 쓰는 테크닉과 실질적인 팁이 필요한 사람이 찾는 것이 대부분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런데, 최근에 별난 글 쓰기 책을 접했다.

글 쓰기 테크닉과 실질적인 팁이 가득 차거나 ‘이렇게 글 쓰면 브런치 구독자 만명은 우습다!’ 뭐 이런 식으로 마케팅해도 책이 팔릴까 말까 한데 저자는 아주 뻔뻔하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글쓰기 테크닉 책이 아니다’라고, 심지어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순위로 따져볼 때 '글 쓰기는 대략 1863위 정도' 된다고…

저자 '다나카 히로노부’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광고회사인 덴츠 주식회사에서 24년간 카피라이터이자 광고기획자로 일하다가 16년도에 퇴직한 후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연재한 영화평론은 2년 동안 누적 조회수 330만 건을 달성하고, 그 탄력으로 이 책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을 첫 책으로 출간했다.

출간한 지 두 달만에 일본에서 15만 부를 돌파하고,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하니, 잘 난 양반이긴 하다… 부럽다.

저자의 공언대로, 232쪽의 짧은 분량. 그나마도 여백의 미를 충분히 살린 구성. 중간중간 삽입된 센스 넘친 일러스트는 진지한 글쓰기 테크닉이 들어가기엔 공간이 어색해 보이긴 하다.

(일러스트는 이 책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심지어 결정적인 결말이 한 장의 그림으로 마무리된다.)


중간에 ‘무심코 써버리고 만 24년 차 카피라이터의 실전 글쓰기 기술’이라고 궁색한 변명으로 광고가 만들어지기까지 과정, 취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이력서를 써야 하는지, 글쓰기 도움 독서는 무엇인지가 들어 있긴 하다.

저자가 굳이 책 속의 이런 실전 코너를 넣은 이유는 독자가 이 부분을 절취 소장함으로써 헌 책방에서 이 책이 1엔에 팔리지 않기 위함 이란다. 나름 전략적이기까지 한 양반이다.


물리적인 분량만큼이나 부담 없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책이지만, 담고 있는 저자의 진실만은 가볍지 않다.

저자는 글 쓰기의 핵심은 ‘자신을 위해 쓴다는 것’이고, 자신을 위해서 쓰기 위해서는 사상과 심상이 만나는 곳에 쓰고 싶은 문장이 생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곧 에세이이다.

우리가 외부의 사상을 접하고, 심상이 생겨나 무언가를 쓰고 싶어 지고 누군가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 지는 것이 글 쓰기의 본질이다.

이러한 본질 외에도 평가에 대처하는 우리의 마음가짐, 진실된 글을 위한 자료조사의 중요성, 과함도 부족함도 없는 글 쓰기 등의 저자의 생각이 가볍고 유머러스한 문장에 깃들어 있다.


글 쓰는 것이 부담스럽고, 가끔 욕망의 깃발이 아른거릴 때...

꺼내 보면, 마음이 깨끗이 비워질 것 같다.


소소한 정보...

일본 원서에도 유사한 일러스트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국내 번역 분위기의 가치를 높여 주신 일러스트레이터는 김택수 님이시다.

‘20년 6월 23일 현재 일본 아마존에서 이 책의 평점은 5점 만점에 3.9이다. (302명의 독자 평가)

일본 아마존 평가 중 10%에 이르는 1점(1 star) 평점 대부분의 의견은 ‘돈이 아깝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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