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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책, 이게 뭐라고

보고 듣는 세계 속 읽고 쓰는 인간의 생존기

by 말로

우연히 자신의 대화나 통화한 내용을 녹음해서 듣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 목소리가 외계인 같이 이상하고, 말하는 내용은 뒤죽박죽이고, 쓸데없는 조사는 왜 그리 남발하는지 손발이 오글거려 듣기가 정말 힘들다.

(만약에 고문 기술 중에 본인의 목소리를 24시간 쉬지 않고 들려준다면 나는 바로 자백할 것 같다.)

'이게 정말 나인가?' '내 말들과 목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들리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입 열기가 무서워지고 자연스럽게 말을 줄이게 된다.

반면에 글은 내용을 다시 읽어보면서 전후 관계를 맞춰보고 정리할 수 있는 퇴고라는 기회가 있고, 정 아니다 싶으면 안 보내거나 안 보여주면 그만이지만 말은 한번 뱉으면 타임머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후회할 일들이 많이 생긴다.


이 책 <책, 이게 뭐라고>는 소설가 장강명 씨가 동명의 팟캐스트를 2년 넘게 진행하면서 "쓰는 인간 장강명"이 "말하는 인간 장강명"으로 변신(?)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책과 사람들 그리고 본인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담은 책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솔직하게'이다.


장강명 작가는 가수 요조 씨와 함께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의 시즌2를 함께 진행했다.

나도 나름 책을 좋아하는지라, 책 관련 팟캐스트를 많이 듣는다. 당연히 '책, 이게 뭐라고'를 즐겨 들었다.

"말하는 장강명"과 "쓰는 장강명"은 달랐다.

<댓글부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산 자들>을 통해서 읽힌 그는 거침이 없고 투박한 느낌이었다면 '책, 이게 뭐라고' 방송을 통해서 들리는 그는 섬세하고 부드러웠고 살짝 물러나 앉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부드러움 속에 쓰는 장강명의 날카로움은 몸에 배어 있었지만... (가끔 초대손님과 요조 씨를 당황케 하는 질문과 답변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책, 이게 뭐라고>가 단순히 팟캐스트 경험담은 아니다.

그 속에는 인간이 말하고 듣는다는 것과 읽고 쓴다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장강명 작가 스스로가 말하고 듣는 세계와 읽고 쓰는 세계의 경계선에서 방황하는 본인 이야기를 한다.

작가로서의 이루고 싶은 욕망이 보고 듣기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자꾸 사그라들고 다다를 수 없어 고민하는 모습이 공감된다. 또 한편으로 장강명 씨처럼 성공한 작가도 이런 고민을 하는데... 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속 편하게 산다는 게 어이없긴 했다.


장강명 작가가 처음 팟캐스트를 하기로 마음먹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이름을 좀 더 알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말하는 장강명"이 "쓰는 장강명"에게도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쓰는 장강명"이 점차 흐려지고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책 곳곳에서 그의 소설가로서의 고민과 갈등을 엿볼 수 있다.

내게 소설가로서 대단한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페이스북 계정으로 종종 내게 그런 메시지를 보냈다. 너 글 못 쓴다고. 너 재능 없다고. 그 말들이 정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기와 쓰기의 경계에서 고뇌하는 모습은 이 책의 마지막 장 "말하는 장강명"과 "쓰는 장강명"의 대담에서 잘 드러난다.


우리는 모두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화를 강요받고 있다.

그 변화를 조금이라도 못 쫓아가게 되면 나 자신이 게으른 것 같기도 하고, 패배자 같기도 하다.

뭐... 상관없다. 그런 생각이 들면 좋아하는 책 속으로 잠깐 피신하면 된다.


잡담) 내가 좋아하는 독서 팟캐스트들이 자꾸 유튜브로 도망간다. '빨간 책방'도 그랬고, '책, 이게 뭐라고'도 팟캐스트는 더 이상 안 하는 것 같고, '낭만서점'도 영상 콘텐츠로 변신한다고 하니... 물론 유튜브에서 잘하고 있는 '겨울 서점' 같은 채널도 있지만, 왠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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