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배우는 '맛있는 문장' 쓰는 47가지 규칙
"하루키 좋아하세요?"
BTS가 세계를 뒤흔드는 이때, 철 지난 질문 같지만 (BTS가 여기서 왜 나와...) 아직도 그 대답이 유효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하루키'이기 때문 일 것이다.
'하루키'는 하나의 브랜드이다.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로 '하루키 신드롬'이 정점에 있었던 90년대. 그 당시 책을 쳐다보지도 않았던 내게도 그 영향력은 커다란 문화적 현상으로 인식되었다. 짝사랑했던 여학생이 항상 옆에 끼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실제로 읽었는지는 확인을 못 했다. 짝사랑에서 끝났으니까.
중요한 것은 아직도 그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몰입의 정도와 세대, 성별은 그때와 다르긴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발표된 <해변의 카프카>, <1Q8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기사단장 죽이기> 장편소설들 뿐만 아니라 단편소설, 산문집 그리고 대담집까지 그의 모든 작품들은 판매량과 화제성에 있어 '하루키 현상'이 아직도 유효함을 증명해 준다.
이 책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는 '하루키 현상'이 현재도 유효함을 증명하는 소소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원제 <村上春樹にならう「おいしい文章」のための47のルール> 번역기로 돌려보면 <무라카미 하루키 배우는 "맛있는 문장"을 위한 47의 규칙> 이란다. 국내 번역 제목인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보다 좀 더 캐주얼하고 좀 더 말랑말랑하다. 소제목으로는 표시되어 있다.
원제목이나 국내 번역 제목이나 책의 내용에 충실한 제목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이니 상관없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책을 보고 하루키의 글쓰기에 대해서 뭔가를 깨달았다면 백종원 씨의 초간단 레시피로 미슐랭 3 스타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 일 것이다.
이 책의 차례만 훑어보고 몇 챕터만 뒤적거리만 해도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와는 격이 다른 책임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이 책은 1장 '33가지 작법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읽기'와 2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의 힘'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언급한 내용들이 과연 '작법'이라고 불릴 수 있을지 혹은 '문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동의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난 후자이긴 하다.
1장의 33가지 작법들이 무엇인지 몇 가지만 보자면...
'수수께끼 같은 긴 제목을 붙인다', '제목에 강력한 키워드를 넣는다', '말을 가지고 논다', '잘 이어지지 않는 말을 이어 본다', '이상한 말투를 사용한다', '갑자기 전화가 걸려온다', '유명한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다' 등등 더 있지만, 자신의 문장을 좀 더 잘 읽히고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소망과는 거리가 있는 TIP들이다. 물론 이런 장치들이 '하루키 월드'의 독창성과 차별화된 질감을 상징하는 것은 맞지만, 이것들을 '작법'이나 '문체'로 포장하기엔 크리스마스 전날 밤 머리맡에 걸어둔 양말이 다음날 비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의 마음처럼 실망스럽다.
2장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기사단장 죽이기>까지 하루키의 장편소설에 대해서 저자가 생각하는 특징적인 문체의 힘(?)을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1Q84>에서 배우는 '엔터테인먼트력', <양을 쫓는 모험>에서 배우는 '국제력' 등 저자의 '갖다붙이기력'을 느낄 수 있다.
항상 주인공이 무언가를 상실하면서부터 시작되는 하루키의 작품처럼 이 책은 본질을 상실하고 말았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어느 정도는 눈치챘을 하루키 작품들의 특징들을 특별한 의미 없이 정리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쓴 챕터 보다 그 사이사이 들어가 있는 별지의 분석과 해석이 '하루키 월드'를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되었다. '하루키 월드'에 입국할 수 있는 비자가 있다고 생각되는 독자라면 팬심에서 한 번쯤 봐도 무방할 듯하다. 글쓰기 도움 같은 기대는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잡담)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하루키의 첫 문장처럼 부족한 문장을 절망하지 않고 계속 채워나가는 성실함이 그의 글쓰기 비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