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본능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가
"인종은 미국의 빈민을 갈랐고, 계급은 미국의 백인을 갈랐다"
이 한 문장이 이 책의 출발선인 동시에, 그 함의가 단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우리가 이책을 봐야할 스타트건이기도 하다.
저자 에이미 추아는 현재 미국의 많은 이슈와 상황들이 정치적 부족주의에 의해 해석되고 설명될 수 있다며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세계 어떤 나라도 이루지 못했던, "슈퍼집단" 즉, 다양한 배경의 이민자들이 "미국인"이라는 새로운 국가 정체성으로 묶어내고, 자유시장경제 하에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뜀틀로 현재 미국을 이룰 수 있었다.
그 본격적인 시작점인 수정헌법 14조는 “미국인"이 된다는 것이 혈통이나 조상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땅과 연결되어 있느냐에 집중함으로써, "슈퍼집단"의 지위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미국의 "슈퍼집단"의 지위가 타 국가의 부족 정치적 속성을 간과하게 하고, 자국 내 파괴적인 정치적 부족주의에도 둔감하게 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의 뼈아픈 외교 역사 중 대부분은 지역주의와 결합된 민족적 속성을 세밀하게 들여다 보지 못하고, 정치 이데올로기로만 안이하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세계의 경찰국을 자처하며, 실제로는 자국의 이익에 무게 중심이 실린 미국의 간섭과 침입이 정당하다고 동조하진 않는다. 일단, 그 부분은 이 책의 주제 영역이 아니기에 찝찝한 기분으로 넘어가본다.)
"별 볼일 없는 작은나라"로 치부했던 베트남에서의 패배도 베트남의 소수 중국 지배 계급(화교)에 대한 투쟁의 역사를 무시한채 그저 냉전시기에 중국 공산화의 졸개 정도로만 평가절하했던 실책에서 기인했다.
미국이 베트남의 민족주의적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펼친 정책들은 기득권인 화교를 돕고 베트남 동포를 죽이는 꼴이 되버린 것이다.
이러한 부족정치의 어설픈 대응 실책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도 반복된다.
아프가니스탄은 부족만 14개이고, 그 중 규모가 큰 파슈툰족, 타지크족, 우즈베크족, 하라자족의 대결과 연합의 역사로 점철 되어 있건만, 미국의 안이한 대외정책으로 인하여 탈레반 조직이 만들어지는데 본의아니게(?) 기여하고 만다.
또한, 이라크에서도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복잡미묘한 관계에 대해 무지했던 일련의 파국적 결정들이 시아파가 지배하는 이라크 정부에 의해 배제당하고 학대 당하고 박해 받는다고 생각한 수니파가 이끈 운동인 ISIS의 탄생을 이끌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단체들의 탄생에 기여한 부족주의는 탈인간화를 통해 공감과 감수성을 마비시키고 자기 잡단이 헌신하는 목표에 유리한 방식으로만 세상을 보게 만들어 현실을 왜곡한다.
베네수엘라 케이스는 어떠한가...불평등과 깊은 인종적 갈등 그리고 시장 지배적 소수 민족(백인)의 존재라는 조건하에 설익은 민주주의를 주입한 탓에 차베스 정권을 탄생시켰다. 저자는 극단적인 불평등하에서의 민주주의는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부족정치를 간과 했던 미국의 외교 실책으로부터 자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족적 간극으로 시선을 돌린다.
미국의 부족 정체성은 "가진자"와 "못 가진자"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점령하라 운동은 하늘을 가로질러 번개가 한번 번쩍하고 지나간 것이었고, 운동이라기보다는 밈이었다" 라는 저널리스트 조지패커의 이야기처럼 이미 계급화되버린 미국 사회에서 "있는자"들이(참가자 절반 이상의 소득이 7만5000달러 이상) 펼친 진보운동이 "못가진자"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연방정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소버린 시티즌, "암울한 결말이 예정된 아메리칸 드림"인 갱단과 마약조직, 종파를 초월해 부자되는 것이 곧 신의 선택을 받고 신성한 것이라 주장하는 번영복음 등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투인 "못가진자"들에게 희망, 방향성 그리고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과의 공동체 의식을 부여하고 있다.
더구나, 본인들의 나라가 소수 비백인 인종에게 점령당했다는 박탈감을 가진 백인 노동자들의 정서와 트럼프가 가진 상징성이 만나 예상치 못한 2016년 대선결과를 보여줬기에 그 파괴력은 익히 예상된다.
(실제로 이후 우리가 접한 몇몇의 장면들은 기존 미국의 모습이 아니다. 블랙호크가 조지 플로이드 시위대를 향해 저공비행 하는 모습 이라든지... )
정치적 부족주의 진앙 폭이 그 범위를 계속 넓히고 있는 과정에서 우파와 좌파 각 진영은 "우리" vs "그들" 가르기와 정체성 정치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다.
에이미 추아는 테러를 우려하는 사람은 "이슬람 공포증"이라고 비난받지 않으면서 그 우려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미국 인구 구성의 대대적인 변화와 이민자의 유입을 걱정하는 사람도 "인종주의자"라고 비난받지 않으면서 그 우려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고든 W. 올포드의 <편견의 속성>에서 상이한 집단 간의 면대면 접촉이 있을 경우 선입견에 의한 편견이 깨지고 공동 인식의 토대가 마련된다는 실험 결과를 인용하면서 집단을 초월한 보편적 정의와 집단의 권리가 아닌 개인 권리를 촉진하는 보편 인권으로 이제 미국이 새로운 '아메리카 드림'을 꿈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이한 집단에 속한 개개인이 서로를 인간으로서 이해하고자 할 때 실제로 막대한 진보가 이뤄질 수 있음”을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미국에 의한 미국에 대한 이야기지만,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미국처럼 인종과 민족의 갈등 지형도는 존재하지 않지만, 빈부격차에 따른 계층, 성, 지역, 학력, 세대 등의 집단 부족주의가 그 정치력을 발휘하고, 자기 집단은 무조건 善이고 다른 집단은 무조건 惡인 상황, 특정 사건의 개별적인 의미가 아닌 집단 전체 투쟁 전선으로 확대 해석되는 판단들...
우리가 늘 경계하면서 인간이라는 보편 가치의 중심을 지켜가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는 책이다.
"개인이 제정신이 아닌것은 드문 일이지만, 집단은 제정신이 아닌게 정상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