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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raiano May 24. 2020

위인의 전략 - 카이사르 (1.3)

자진해서 사지에 내몰린 영웅

역사에 길이 남았던 사람들의 커리어는 어땠을까? 그들은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고, 어떻게 대처했을까?


7:1의 격차, 처음부터 불리했던 싸움


 갈리아에서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정보를 극비리에 입수한 카이사르는, 자신의 후임지를 갈리아로 정한다. 이때 헬베티족은 스위스에 있던 모든 마을을 불태우고 드디어 프랑스로 진군하는데, 모든 전투원과 부녀자를 포함하여 30만명에 달하는 인원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 때 프랑스에 도착한 카이사르의 수행 부대는 군단 4개였는데, 1개 군단이 6,000명의 편제임을 고려하면 24,000명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드넓은 프랑스 영토를 24,000명으로 진입하는 것은 너무나 무모했고, 상대방의 규모도 컸기에 카이사르는 즉시 징집에 나서 2주만에 3개 군단을 모집한다. 


 총 7개의 군단, 42,000명을 이끌고 카이사르는 헬베티족과 대치하게 되는데, 여기서 카이사르의 전략이 빛을 발하게 된다. 카이사르의 입장에서 선제적으로 상대방을 치기 위해 갈리아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아직 헬베티족이 전쟁을 선포한 것도 아니었으며, 섣불리 갈리아로 들어갔다가 이미 거주하던 민족들의 경계심만 돋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카이사르는 헬베티족과의 경계를 더 강화할 뿐, 먼저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갈리아의 타 민족들이 헬베티족과 싸우기 위해 로마에 도움을 요청할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시장에 진입할 때 든든한 사업 파트너를 만나기 위하여 공공의 적을 이용한 셈이었다.


 며칠 후 헬베티족에 침공받게 된 타 민족들은 카이사르에게 도움을 청했다. 자연스럽게 우군이 생기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이사르는 공격하는 대신 동맹 민족의 영토로 간다. 당장 전쟁을 수행할 최소한의 전쟁물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쟁물자의 부족을 간파한 적은 바로 카이사르를 공격하였는데, 여기서 로마 군대의 우수성이 발휘되었다. 이는 로마라는 조직이 숱한 전쟁과 사업 확장을 치르며 구축한 가장 핵심적인 차별점이었다.


로마군의 조직적 핵심 역량이 빛을 발하다

로마군의 일반적 배치. 이로써 조직적 자율성을 부여했다.

 그 당시 로마는 가장 먼저 적과 싸우는 부대일수록 신참을, 가장 마지막에 적과 싸우는 부대일수록 고참병사를 배치하였다. 이는 적의 핵심 역량이 일부 소모되었을 때 나의 핵심 역량을 싸우게 함으로써 승리하는 전략이었다. 또 고참병에게는 장군이 내리는 전략을 일부 수정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율성을 부여하여, 이들이 가지고 있는 전투 경험을 상황에 따라 극대화하도록 하였다. 헬베티족과 전투할 때 이 점이 발휘되었는데, 헬베티족은 병사 수가 더 많았기 때문에 카이사르 부대의 뒷편을 기습하려고 시도하였다. 이 때 적의 움직임을 눈치챈 카이사르의 고참병들이 자율적으로 부대에서 이탈하여 기습을 막으려고 나섰다. 기습이 실패로 돌아가자 헬베티족은 전략 없이 마구잡이로 싸우게 되었고, 이는 조직적인 로마군에게 먹잇감으로 보일 뿐이었다.


 이 날 헬베티족은 30만 명 중 11만 명만이 남게 된다. 자신을 침공하려는 적이 사라지자, 갈리아 원주민들은 카이사르에게 다른 적(게르만 족)까지 공격해달라 요청하고, 그는 게르만족까지 섬멸한다. 이로써 갈리아 지방에 대한 카이사르의 영향력은 1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되었다. 시장의 주요한 경쟁자들은 모두 철수하였고, 남아있는 중소 경쟁자들은 자신에게 모두 협력하고 있었다. 이렇게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안정시켰다고 생각하며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카이사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는데, 협력 관계에 있던 중소 민족들이 로마를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카이사르의 군대는 카이사르가 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갈리아 영토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원주민들이 생각하기엔 카이사르의 군대가 갈리아 영토에 남아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경쟁자들이 이탈하였기 때문). 따라서 그들은 카이사르가 자신들의 영토를 직접 얻고자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윽고 자신들끼리 연합을 결성하고 전쟁을 선포한다. 첫 전투는 무리 없이 이길 수 있었으나, 두 번째 전투에서 카이사르는 예상하지 못한 일격을 맞는다.


자만심이 일으킨 치명적 피해와 카이사르의 교훈


 사실 카이사르도 자만심에 빠져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단 1년만에 전 갈리아 영토와 민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셈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30만명에 이르는 적을 단 42,000명으로 섬멸하였고, 게르만족까지 격퇴하였다. 갈리아에 거주하는 대다수 민족들은 모두 카이사르에게 협조적이었기 때문에, 카이사르가 1년여의 전쟁 이후 이탈리아로 돌아간 것은 상황이 얼추 종식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갈리아에 거주하는 민족들은 한편으로 카이사르에 협조하면서도 불안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수준 높은 문명에서 온 군대가 얼마나 강하고, 그들이 구사하는 작전이 얼마나 복잡하였는지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리아의 민족들은 카이사르가 없는 잠깐사이에 그들의 전략을 연구하고, 모방하기 시작하였다. 이전의 갈리아족이 '전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정면 공격을 했던 반면, 그들은 로마를 본받아 기습, 우회 기동과 같이 시장의 경쟁자들이 예상할 수 없는 전략들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카이사르가 그의 군대와 함께 다른 민족을 공격하러 향하고 있던 도중이었다. 그는 밤이 되니까 당연히 잘 곳을 마련해야 하는데, 적도 주변에 없을것 같고(자만심이었다), 평평하면서도 물과 가까운 곳을 야영지로 선정하였다. 그런데 적(네르비족)은 로마를 벤치마킹한 결과, 기습이 카이사르를 이길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하였고, 강 건녀편 우거진 숲에 군대를 매복시켰다(강의 수심이 낮아서 사람이 건널 수 있을 정도였다). 

빨간색이 로마군, 파란색이 네르비족이다

 로마군 대부분이 도착하고 한창 야영지 공사가 진행중일 때, 갑자기 건설 현장에 네르비족의 대군이 들이닥쳤다. 당연히 로마군은 신참-고참병의 순서로 이어지는 배치도 준비할 수 없었다. 모든 군사들이 뒤엉켜 마구잡이로 싸우기 시작했고, 이런 상황에선 수가 더 많은 네르비족이 우세했다. 한편 기습을 당했다는 정보를 받은 카이사르는 급히 전쟁터로 달려나갔다. 네르비족에 점점 밀리는 로마군을 보고, 그는 무엇이 문제인지 빠르게 분석하였다


네르비족이 현재 우세 -> 로마군이 기존의 배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 -> 자신이 직접 가서 지휘를 다시 해야 함


 카이사르는 가장 빨리 무너지고 있던 부대로 달려갔다. 대부분의 장교가 죽은 상황에서, 그는 직접 나서서 병사들을 지휘한다(소규모 부대의 병사를 지휘하는 것은 카이사르의 본래 책임이 아니었다). 최고사령관이 직접 나서서 병사를 지휘하고, 병사들의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가며 독려하자 병사들도 차츰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벗어나자 로마군도 다시 자신의 강점인 효율적 배치를 시행할 수 있었다. 기습이 통하지 않자 네르비족은 도망가기 시작하였고, 나머지 저항하던 부대들도 모두 섬멸당하게 된다.


 네르비족을 섬멸한 큰 공적이었으나 로마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적들도 자신의 전략을 벤치마킹할 수 있음을 알아챈 카이사르는, 이 전투 이후 적의 기습을 항상 경계하게 되었다. 이는 단 한 번의 자만심에도 모든 사업이 송두리째 뒤집힐 수 있음을 느낀 전투였다.


카이사르에게 다가오는 패배의 기운, 그리고 승리


 이 전투 이후 카이사르는 자원의 열세를 극복하고 적을 여러 차례 이겼으나, 근 5년간 갈리아의 민족들은 패배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카이사르가 가진 자원이 적다보니, 승리를 해도 압도적으로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한편 갈리아의 민족들에게도 부담감으로 작용하였다. 중소 기업끼리 연합하여 대기업을 축출하기 위해 저항하였으나, 5년째 실패하며 자원을 소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단 한번의 결정적 승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고, 역사상 유례가 없는 민족의 통합을 이루게 된다. 젊고 뛰어난 청년 베르킨게토릭스의 지휘 아래 전 갈리아가 '타도 카이사르'의 비전으로 모였다

 프랑스의 영웅, 베르킨게토릭스의 동상

 카이사르에게 협조적이었던 하이두이족, 보이족까지 모두 베르킨게토릭스에게 합류하자, 자연스럽게 갈리아 민족들에게는 승리의 기운이, 카이사르에게는 패배의 기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추가로 카이사르의 적, 베르킨게토릭스의 지휘 능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갈리아 민족과 로마군의 자원, 전투력 차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갈리아 민족은 로마군과 정면대결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당시 객관적인 로마군과 갈리아족의 차이는 이러했다.


로마군 : 철판과 가죽을 덧댄 갑옷 착용, 조직적 전투 경험 풍부, 개인 전투 능력 우수, 규모 적음, 식량 및 기타 자원을 외부에서 공수

갈리아족 : 갑옷 없음(맨몸), 조직적 전투 경험 적음, 개인 전투 능력 우수, 규모 큼, 식량 및 기타 자원 자체 조달 가능


 베르킨게토릭스의 생각에 따르면, 갑옷도 변변치 않고 조직적으로 싸우는데 익숙하지 않은 갈리아 민족들이 로마군을 상대로 정면대결을 하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였다. 따라서 그는 갈리아 민족의 전쟁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한다. 로마군의 약점만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상대가 원하는 전쟁터에서 싸우지 않는 것이었다.


 로마군의 약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식량 및 기타 자원을 외부에서 공수한다는 점이었다. 적군의 영토에 들어와서 싸우는 만큼 로마군은 식량과 물, 전쟁 자원들을 먼 곳에서 가져와야 했다. 그런데 물류에 드는 비용과 리스크가 커지는 만큼, 카이사르는 끊임없이 전쟁 자원을 현지에서 조달하려 했다. 그런데 베르킨게토릭스가 이 부분을 파고든 것이다. 그는 카이사르의 군대가 지나는 지역의 모든 마을을 비우고, 들고 갈 수 없는 모든 자원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어디를 가든 자원을 얻을 수 없으니 카이사르는 점점 심리적 압박감에 짓눌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카이사르는 자원을 얻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소규모 갈리아 민족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전투의 주도권 때문이었다. 적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계속 나의 약점을 공격할 것이다. 그러나 약점이 아닌듯 행동하면 적들도 고민에 빠지게 된다. 다른 지점을 공격해야 더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겠냐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이사르는 오히려 태연한듯 부대를 움직여 적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외부에서 식량을 공수하면서도,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베르킨게토릭스가 파놓은 함정을 피하여 식량이 없는 마을을 공격했다.


 오히려 달아오른 쪽은 베르킨게토릭스였다. 식량이 많은 마을들을 함정으로 파놓았는데 상대가 걸려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다른 마을들이 공격받고 있었으니, 도우러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카이사르에게서 공격받은 마을을 도우러 가지 않는다면, 갈리아 민족의 내부분열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군대를 이끌고 공격받는 마을로 갈 수 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로마군과 정면대결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당연히 갈리아족의 패배였다. 패배한 이후 베르킨게토릭스는 알레시아(오늘날의 파리)로 도망치게 되었고, 카이사르는 그를 쫓아 알레시아로 향한다.


고의적으로 적의 함정에 들어가다


 베르킨게토릭스는 왜 알레시아로 제 발로 들어간 것일까? 그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알레시아는 그 당시 갈리아 족의 도시 중 규모가 가장 컸다. 그 곳은 갈리아 민족의 수도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셈이었다. 수도에 머무르며 버티면 프랑스 전역에 퍼져있는 모든 갈리아 족이 들고 일어날 것이고 카이사르는 알레시아에서 후퇴할 수 밖에 없다. 그 때를 이용하여 베르킨게토릭스가 후퇴하는 카이사르를 공격한다면, 패배를 뒤집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카이사르는 왜 베르킨게토릭스를 따라 알레시아로 간 것일까? 그는 이 위험성을 몰랐을까? 사실 그도 이를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알레시아로 간다면 베르킨게토릭스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갈리아 족이 여기로 올 것임을, 그렇다면 자신의 등 뒤에 막강한 적이 나타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일반적인 장군이라면, 당연히 알레시아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위대한 장군이었다면, 프랑스에 퍼져있는 다른 중소 민족들을 정리하러 갔을 것이다. 그런데 카이사르는 정반대의 선택을 하였다. 왜?


 여기서 우리는 로마군의 상황과 카이사르의 목표를 기억해야 한다. 중소 민족들을 정리하러 가는 선택은, 안전할 뿐더러 성공률도 높았다. 이들을 상대로 모두 승리하고 베르킨게토릭스와 싸우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는데 더 효과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이 경우, 시간이라는 변수를 통제할 수 없다. 이 말은 카이사르가 예상한 기간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뜻이다. 상대보다 수가 적고, 자원을 외부에서 공수해야 하는 로마군에게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말은 커다란 리스크였다. 또한 로마로 돌아가 정치를 장악해야 하는 카이사르에게 추가적인 시간 소모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카이사르는 오히려 알레시아에 적이 모두 모이는 것을 선호하였다. 제 발로 찾아오는 적들을 한 번에 이긴다면 갈리아를 모두 장악할 수 있다. 자원은 불리하지만, 하루이틀의 문제도 아니었다. (지금은 매우 불리했다는게 문제였지만) 경쟁자의 연합이 내놓은 상품과 서비스보다, 자신이 내놓은 상품과 서비스가 우수하다면 시장은 어떻게 생각할까? 당연히 그 이후로 1등만 기억할 것이다. 2,3,4등이 모여서 만들어낸 가치보다 1등이 만든 가치가 더 우수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이렇게 하지 않는데, 이겼다


 결국 카이사르는 알레시아에서 버티고 있는 베르킨게토릭스를 포위했다. 그러자 베르킨게토릭스도 흩어져있는 갈리아족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갈리아의 대 부대가 모여들었고, 오히려 카이사르가 포위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세계 전략의 역사 상 유례가 없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빨간색 선이 로마군, 파란색 화살표가 갈리아 족이다

로마군 : 11개 군단 (약 60,000여 명)

갈리아 족 : 80,000여 명 (카이사르에게 포위된 갈리아족), 260,000여 명(카이사르를 포위한 갈리아족)


 4배에 달하는 갈리아족의 부대가 다가오자, 카이사르도 마음을 가다듬고 방어를 강화한다. 안에서 튀어나올 갈리아족과 밖에서 들어올 갈리아족 모두를 막기 위하여, 자그마치 7가지 종류의 방어선이 둘러졌다. 갈리아족도 공격을 성공하기 위하여 부대를 2개로 나누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포위된 갈리아족의 공격을 시작으로, 전투가 열렸다. 그런데 갈리아족의 예상과 달리, 로마군이 잘 버텨내고 있었다. 이 상황을 예견한 카이사르가 방어선을 철통같이 보수했기 때문이었는데, 이로써 갈리아족은 3일동안 로마군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4일째, 갈리아족은 북쪽에 빈 공간이 있음을 눈치챘고, 그곳을 집중공격하기 시작한다(긴 화살표). 그러나 이 빈 공간도 카이사르는 눈치채고 있었다. 당연히 그곳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측한 그는, 1차 예비부대를 북쪽으로 보내고, 자신도 직접 망루에 올라가서 지휘를 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이 곳만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포인트라는걸 깨달은 갈리아족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부대를 총공격하여 북쪽의 빈 공간으로 돌진시켰다. 로마군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생각에 마지막 힘을 짜낸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또한 카이사르가 예상했다는걸 눈치채지 못했다.


 1차 예비부대의 대대장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연락을 보냈다. 그러자 카이사르는 2차 예비부대를 그제서야 북쪽으로 보낸다. 여기서 카이사르는 왜 한 번에 예비부대를 모두 보내지 않았을까? 그것은 바로 적들의 심리 때문이었다. 더 이상 지원군은 없다고 희망에 차있는 갈리아족의 눈 앞에 새로운 로마군이 보인다면, 그 때 비로소 심리가 무너지게 된다. 적들의 상황과 심리에 맞추어 전략을 수립함으로써 완벽한 전략을 세운 것이다.


 절망에 빠진 갈리아족이 도망가기 시작하고, 안에서 농성중이던 베르킨게토릭스는 체념하고 카이사르에게 항복한다. 이후에도 작은 전투들이 발생하나, 이로써 카이사르는 그 넓은 갈리아를 발 아래에 두게 된다. 그는 로마 역사상 손꼽히는 공적을 세우고 금의환향하러 로마로 향한다.


그러나 또다시 그를 가로막는 적이 나타났다. 그의 정치적 동지, 폼페이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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