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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소 Dec 21. 2018

온두라스에서 미국까지

by 김연주

올해 550여 명(2018년 7월 기준)의 예멘인이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1] 불과 삼 년 전만 해도 예멘 출신의 난민 신청자는 한국에 한 명도 없었지만 2015년부터 계속되는 내전, 2016년의 콜레라 발병과 기근에 의해 피난을 떠나는 예멘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2]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이주자들 (2018년 12월 기준으로 딱 2명이 난민 판정을 받았고[3] 300여 명 정도는 올해 10월에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을 두고 정말 난민이 맞는지 아닌지, 이들을 한국이 받아줘야 할 의무가 있는지 계속 논의되고 있다. 이는 난민을 인정하는 데 있어 안보 문제도 무시할 수 없고 난민을 받아주는 나라의 경제적 부담도 고려해 봐야 하기 때문에 쉬운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이 글을 통해 국제법상 합법적인 난민 신분으로 분류돼야 하는 이주자들 일부가 그들의 국적 때문에 (예를 들면 미국은 남미 이주자들보다 유럽 이주자들에게 더 호의적이다) 불법 이민자로 분류돼 보호받지 못하는 복잡한 국제 이주의 현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도 한국과 비슷한 상황을 직면하고 있다. 많은 이목이 쏠린 이주자의 행렬, 캐러밴(caravan)은 올해 10월 12일에 온두라스의 산페드로술라(San Pedro Sula)에서 소규모로 시작됐다. 캐러밴은 ‘난민의 행렬’이라고도 불리고 ‘이민자의 행렬’이라고도 불리지만 본 글에서는 최대한 중립적인 표현인 ‘캐러밴’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캐러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지역의 핍박, 빈곤, 그리고 폭력을 피해 미국에 정착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얘기한다. 2014년부터 계속 세계에서 가장 살인율이 높은 도시 중 하나로 꼽혀온 산페드로술라, 이 도시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160명의 사람이 걷기 시작했고 10월 말, 그들이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국경 도시인 시우다드이달고(Ciudad Hidalgo)에 도착했을 땐 그 수가 2,000여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4] 온두라스 국민들이 시작한 행렬이지만 지금은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 국민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캐러밴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돼있다. 꼭 젊거나 가난한 이들만 난민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가족 단위로만 피난을 떠나는 것도 아니다. 젊은 여성들과 아이들도 있지만, 나이 많은 노인들과 젊은 남자들도 있다. 신체적 폭력과 위협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경제적인 이유로 미국으로의 이주를 꿈꾸고 참여하는 사람들도 섞여 있는 것이다. 이 중 여러 이유로 본국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안전한 삶을 살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국에 도착해서 망명신청을 할 것이고 미국의 이민법에 따라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well-founded fear)”를 증명해야 한다. 미국의 이민 체제는 한국과 다르며 난민(refugee)신청과 망명(asylum)신청에도 차이가 있다.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상세히 살펴보겠다.


산페드로술라에서 출발한 캐러밴의 경로 (출처: BBC 2018)

트럼프는 자주 이 캐러밴과 같이 미국의 남쪽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불법 이민자’라고 부르며 타당한 이유로 망명신청을 할 수 있는 이주자들까지 범죄자로 간주해왔다. 심지어 5천 명가량 되는 미군을 국경으로 보내 무력으로 캐러밴의 입국을 막을 거라고 하기도 했다.[5] 4천 명도 안 되는 민간인을 상대로 미군을 움직이겠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현재 미국은 국제법이나 미국의 이민법에 따라 미국에 들어와 망명신청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민간인들을 미국의 대통령이 병력을 사용해 막으려고 하는 비현실적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정상적인 민주주의와 독재정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민주주의 국가는 그의 병력을 민간 법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The largest difference between a functioning democracy and an autocracy is that a democracy does not deploy its troops to handle civilian law)” 라는 아메리칸 대학의 타즈리나 싸자드 (Dr. Tazreena Sajjad) 교수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국제법은 차치하고 미국 국내법만 본다고 하더라도 캐러밴은 난민신청을 할 권리가 있다.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미국에 입국했든지, 심지어 불법적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입국 후 1년 내에만 난민신청을 한다면 똑같이 법적인 절차를 통해 난민 인정심사를 받을 수 있는 것이 현재 미국 이민 법이다. “누구든 미국에 입국한 방법이나 현재 이민 신분과 상관없이 망명신청을 할 수 있다. (You may apply for asylum status regardless of how you arrived in the United States or your current immigration status.)”[6]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의 견해와는 상반되게 미국 이민법은 합법적인 신분 없이 미국에 들어온 이민자들도 이민법의 절차를 따라 망명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이주자의 수가 늘고 있고 난민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입국 절차에 따라 난민 또는 망명자로 구분이 되고 어느 범주에 속하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보호 자체가 다르다. 타국에서 신청해서 법적인 난민 자격을 받은 뒤 미국으로 들어오는 인구를 난민으로 분류하며, 타국에서의 신청 또는 비자 없이 미국 국경을 넘어 추후에 신분을 얻는 사람들을 망명 신청자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으로 걸어오는 캐라밴의 경우에도 미국으로 입국 후에 망명신청 법에 따라 합법적인 절차를 시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단순히 비자가 없고 난민 신분이 지금 없다고 해서 불법 이민자인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그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모든 이주자를 단순화시켜 ‘이민자’라고 부르며 캐러밴의 문제를 불법 이민자와 합법적 이민자의 차이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캐러밴이 왜 생겨났는지, 많은 이주자를 위험하고 불안정하고 힘든 상황으로 밀어내는 요소들(push factor)이 뭔지, 그리고 그들이 비자가 없이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왔어도 법적인 절차를 따라 망명신청을 하고 이민법대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지만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1]김원철. 2018.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을 우려하기 전에 생각해 봐야할 4가지.” Huffington Post.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28ad01e4b0f0b9e9a47ce2

[2] Fox, Kara. 2018. “85,000 children under 5 may have died of starvation in Yemen war.” CNN. https://www.cnn.com/2018/11/20/middleeast/yemen-children-starvation-death-intl/index.html

[3] 연합뉴스. 2018. “제주, 예멘인 2명 난민인정…’언론인 출신으로 박해가능성’.” 한겨례.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74421.html

[4] BBC. 2018. “Migrant caravan: What is it and why does it matter?” https://www.bbc.com/news/world-latin-america-45951782

[5] Shear, Michael D. and Eileen Sullivan. 2018. “Trump Suspends Some Asylum Rights, Calling Illegal Immigration ‘a Crisis’.” The New York Times.  https://www.nytimes.com/2018/11/09/us/politics/trump-asylum-seekers-executive-order.html

[6] U.S. Citizenship and Immigration Service. 2015. “Obtaining Asylum in the United States.” https://www.uscis.gov/humanitarian/refugees-asylum/asylum/obtaining-asylum-united-st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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