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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Dec 31. 2022

마감을 끝내는 힘, 전우애

학부모 사이에 전우애라니

12월 8일.

마감을 했다. 글과 그림이 하나가 된 원고가 각자의 컴퓨터를 떠나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 교보 퍼플에 등록됐다. 각자 교보 퍼플 사이트에 원고 등록 후 판매 승인 신청내역을 캡처해 단체 대화방에 인증했다. 그것이 마지막 임무였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계획했던 전체 마감일은 12월 7일이었다. 그림 작업 마감을 4일 늦췄지만 포토샵 및 인디자인 작업기간을 단축했다. 하루 정도의 지연은 깔끔하게 눈감으면 그만이다.


도전자 7명 모두가 결국 해냈다.

포기할 것도 같았으나 포기한단 말없이, 결국 포기하지 않은 두 명도 어쨌든 마감을 끝냈다.




"그림 얼마나 됐어? 하고 있지? 할 거지?"

Y가 L에게 전화로 응원 겸 압박을 여러 차례 했다.


"언니, 오늘까지 다 올려야 돼. 밤에 우리 집에 다시 모입시다. 9시 어때요?"

J가 P에게 혼자 할 생각 말고 같이 끝내자며 끌어당겼다.


정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서로의 리더가 되었다. 글과 그림을 대신해 줄 순 없어도 약간의 포토샵 보정과 인디자인 작업과 마지막 검수는 무조건 2인 이상으로 함께 했다. 역시 정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서로의 지원자가 되었다.


초등학교 학부모 사이에 믿을 수 없는 전우애가 생겼다. 그림책 팔아 돈 벌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열심히 매달리는지 우리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내 책 한 권 만드는 것인데 왜 남의 책 만드는 일에 이렇게 열성으로 도와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순수하게 시작한 창작 프로젝트가 이렇게 엄청난 전우애를 만들 줄이야.


"진짜 대박.. 완성했네요. 어제 저의 경솔했던 말과 생각을 반성하게 됩니다."

마감일 전날 J는 도저히 그림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A를 떠올리며, 안 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A가 고민한 주제와 콘텐츠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 많은 시간을 혼자 끙끙대며 걱정만 했을 A에게 오히려 미안했다.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좀 더 일찍 찾았어야 했는데, 개인 작업에 훈수를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마음의 선이 되었다. 어쨌든 A와 나는 마감 당일 하루를 온전히 바쳐 랜선으로 함께 작업을 했다. 그렇게 가장 걱정했던 A까지 마감을 끝냈다.




2주 만에 반신욕을 했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면, 아이들을 재우고 혼자 느긋이 즐기는 반신욕이 나의 힐링 시간이다.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의 물, 그러니까 우리 집 보일러 컨트롤러에 표시된 온수 온도가 43도 이상인 것을 확인해야 욕조에 물을 채운다. 최근 일주일은 연이어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밤만 되면 반신욕 생각이 절로 났다. 하지만 아이들을 일찍 재워도 욕실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다. 반신욕은커녕 저녁에 했어야 할 세안을 날을 넘겨 새벽 5시에 한 적도 있다. 그림을 수정하고 수정하고 글을 또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수정은 끝이 없었다.


작물에 대한 만족의 기준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높아진다. '이 정도면 됐다.' 싶다가도 돌아서면 '조금만 이렇게 해 볼까?'하고 또 건드리게 된다. 한번 손을 대면 두 시간이든 네 시간이든 정말 잠이 쏟아져 눈이 저절로 감기거나, '이 정도면 됐다.'싶은 만족의 순간이 오거나(그런 경우도 열 번 중 두 번 정도였으려나?), '이러나저러나 글렀다.' 싶게 좌절이 되면 잃어버린 의욕만큼 눈꺼풀도 힘을 잃었다.


모두가 각자의 창작물을 보면 볼수록 아쉬움이 남은 듯하다. 그렇다고 개인의 완벽주의를 마음껏 발현시키기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조금 더 하면 더 좋은 퀄리티의 결과물이 나올 것은 당연한 이치. 조금만 더 하면 그림책다운 그림책이 나올 것만 같은 기대감도 아주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간 언제 그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출간 기획서에 적시한 타깃 독자, '상상력이 풍부한 나의 10살 된 딸'이 충분히 만족한다고 한 것이다. 그것으로 되었다.


용기 있게 도전한 것만으로도, 마음속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만으로도,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을 느낀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했다.


모두의 마음이 같았다.




  *Photo by Timon Studl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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