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가 먼저인가 오늘이 먼저인가
삶이 가져가는 것에 대해서는 불안해하지 않으련다
삶이 남기고 가는 것도
삶은 전부를 주고 그 모든 것 가져갈 것이므로
오늘은 나의 몫
내일은 신의 몫
류시화 시 오늘은 나의 몫, 내일은 신의 몫' 중에서
지난해에 사서 봄기운이 느껴지니 다시 꺼내든 시집이 있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시가 좋아서 샀는데, 오늘 눈에 띈 시는 바로 이것이다. '오늘은 나의 몫, 내일은 신의 몫'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한 말도 연이어 떠오른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자체는 되는대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나에겐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먼저냐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이 먼저냐가 고민이었다. '목표가 있어야 하루하루의 계획이 생기지!' vs '하루하루에 집중해서 하다 보면 목표가 생기겠지!' 글로 적고 보니, 나는 '목표'라는 키워드가 보인다. 꿈의 다락방에서 얘기하고 셀프 퓨처에서 강조하는 굉장히 구체적이고 실감 나는 나의 미래모습,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나 보다. 성과지향주의 사회에서 십몇 년 일했으니 그럴 만도. 목표에 따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성공한다고 하니 그것도 또 그럴 만도.
하지만 핵심 키워드는 '오늘 하루'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너는 오늘 무엇을 할래?'라는 질문은 대답하기도 참 너무 식상한 질문이다. 하지만 삶에 대해서 진득이 생각해 보려면 이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다. 오늘만 살 수 있다면... 너무 극단적인 질문이라 남편은 질색팔색한다. 인생의 끝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지만, 굳이 한 존재가 사라지는 엄청난 일을 갑작스럽게 가정해서 불안하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안전지향주의인 사람에게는 불안을 야기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큰 목표나 야망이 있었던 적이 없으나 그런대로 인생이 참 편안하고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이니 또 그럴 만도.
성과관리와 나는 안 맞는구나를 생각하며, 다시 이어서 생각난 것은 '돌아보면 점들이 연결된다'라고 했던 스티브 잡스의 말. 역시 나는 '오늘은 나의 몫, 내일은 신의 몫'이라는 류시화 시인과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자체는 되는대로'라는 이동진 평론가를 롤모델로 삼아야겠다. 나에게 있어 진짜 문제는 목표가 있냐 없냐가 아니었다. '오늘 하루를 얼마나 충실히 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나의 게으름을 적절히 끊어주고 동기부여와 용기를 주는 새해를 빌미로, 비싼 다이어를 구입했다. 하루하루 시간별로 계획과 실행여부를 쓰는 시간관리용인데, 쓰면서 느끼는 것은 "주체가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온통 시간계획이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해 줘야 하는 것이 먼저 세팅이 되더라. 그리고 그 빈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채우는 것이다. 글쓰기나 독서, 운동도 그 빈 시간에 하려고 하니 실천율이 떨어졌다. 그나마 계획이라도 하면 다행이지. 어떤 날은 이 빈 시간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애들과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라. 휴식도 아니고 뚜렷한 계획도 아닌 '가정의 시간'이 많았던 것이다.
오늘은 가정의 시간을 없애봐야겠다. 자기 계발을 위해 쓰든지 차라리 휴식이라고 당당히 쓰겠다. 나의 시간으로 명명하겠다. 나의 하루는 나의 몫으로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