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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범 Jul 23. 2021

영어는 내 모국어가 아니야!

미국 학교로 등교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처음으로 발표숙제가 주어졌다. 

삼일 밤낮으로 원고 하나에 매달려 외우고 또 외우고 또 외웠다. 

우리나라에 있을 때도 원고를 외워 발표를 해야 하는 숙제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먼 땅 미국에 와서 영어로 발표를 해야 한다니... 

한국에서의 습관 때문인지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 발표를 잘해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한다는 압박까지 느끼고 있었다. 

매일 하교 후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고 읽어보고, 녹음기에 녹음을 하며 원고를 외우는 일에 매진하였다. 

드디어 발표의 날이 되었고 나의 차례가 다가왔다. 지난 며칠간 밤낮 없는 연습을 하였지만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Hello, My name is Jinbum Choi and today I am going to tell you about..."


셀 수 없이 많은 시간동안 연습한 첫 발표문이었다. 

하지만 맨 앞에 앉아 있는 한 친구의 웃음소리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야 말았다. 나의 발음이 웃긴 모양이었다. 

큭큭 거리는 그의 웃음소리에 나의 얼굴은 이미 새빨개져 버렸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그동안 수 없이 연습하고 외웠던 발표문이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도 발표를 끝마쳐야지 점수를 받는다는 생각 밖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창피함에 어쩔 줄 몰라하다 단상위에 올려놓은 원고를 그냥 읽어 내려갔다. 

원고를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갈 때마다 점점 더 많은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말 눈앞이 캄캄해지고 더 이상 글을 읽을 수도 없었다. 너무 창피했다. 

그리고 내가 왜 미국까지 와서 이런 창피함을 당해야 하나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보이기 싫어 읽던 원고를 내려놓고 뒤로 돌아섰다. 

뒤로 돌아서 눈물을 닦아보니 큰 칠판이 내 눈앞에 들어왔다. 

왜 그랬는지 기억은 나질 않는다. 

하지만 화가 나기도 하고, 뭔가 따지고 싶기도 했던 것 같다.

갑자기 분필을 들고는 칠판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Jin Bum Choi

An Nyung

Daehanmingook


그리고 떠듬거리는 영어로 아이들에게 읽어보라고 하였다. 몇몇의 친구들이 조용히 읽어보기 시작하였다. 

처음 보는 단어들에 멋쩍어서인지 서로 웃기 시작했고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봐, 이건 내 이름이고 이건 인사말, 그리고 이건 우리나라... 영어로 쓰여 있는데도 한국말은 너희 말이 아니니깐 읽기 어려운 것처럼 나도 영어가 어려워. 그러니깐 내가 이 원고 끝까지 읽을 때까지 웃지 말고 들어줘. 난 점수를 받아야 하거든."


교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원고를 다시 읽어 내려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없어지자 그 고요함 속에서 참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지난 일주일 밤낮으로 매달려온 내 노력의 결과가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싶은 마음에 스스로 실망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복잡한 생각들과 함께 원고읽기를 끝내고 강단에서 내려올 때였다. 

교실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시던 선생님께서 박수를 쳐주시는 것이었다. 

좀 전에 나의 발음에 웃고 있던 아이들도 잘했다며 함께 박수를 쳐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내 자리로 돌아온 나에게 주변 친구들이 많은 격려를 해주었다. 


사실 그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한국을 돌아가야 하나 고민을 하며 계속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듣지도 못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다음 교실로 옮겨가고 있는데, 

발표당시 처음 웃음이 터져버렸던 친구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 미안하다며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앞으로 내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겠다며 친구가 되자고 말을 했다. 

분명 같은 또래의 친구였는데 굉장히 어른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뭔가 한국과는 다른 문화가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자신의 잘못을 먼저 사과할 줄 알고 약자를 배려하고자 하던 그의 태도는 내가 가지고 있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미국인”의 이미지를 단번에 부숴주었다. 

그리고 야구부 주장이었던 그의 권유로 교내 야구부에 가입하게 되었고, 그는 야구부원들에게 나를 소개시켜 주었다.


“얘들아, 여기 이 작은 동양인은 나랑 같이 수업듣는 친구인데, 이름이 진-봉. 진-붐?. 너 이름이 뭐더라?”

“범. 진범”

“범. 그래 진-범. 발음하기 어렵다. 음, JB 어때? 앞에 스펠링만 따서 JB라고 하자.”


JB. 제이비. John이라든지 Kevin이라든지 뭔가 미국스러운 이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JB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이니셜이니 내 이름이기도 하고, 

미국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부를 수 있는 이름, JB. 

유학을 가기 전까지는 몰랐던 사실인데, 미국에는 이렇게 긴 이름을 줄여서 이니셜로만 부르는 이름을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재밌는 사실은 우리 야구부에 JC(John Cade Adkins), JD(Jerry Dean Kinder)라는 이름의 친구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


이렇게 나는 미국생활에 적응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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