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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물꾸물 Aug 26. 2021

백석도 싫어한 '혼밥', 당신은 혼밥러인가요?

백석 시로 '혼밥' 돌아보기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아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지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 중략)


우리는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 <선우사>, 백석



'혼밥' 잘하시나요? 저는 사실 혼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밥 정도는 혼자 먹을 줄 알아야 쿨해보이는 이 시대에 독립적이지 못한 존재로 보일까 걱정되지만, 사실입니다. 서점, 영화관, 전시는 혼자 가더라도 밥만큼은 혼자 먹기가 싫습니다. 아무래도 저에게 식사란 끼니 해결 그 이상이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밥을 먹는다는 건 저에게 기운을 충전하는 행위입니다. 충전은 음식의 열량으로도 이뤄지지만 다른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근황을 나누며 받는 에너지도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다행히 혼밥을 싫어하는 건 저만이 아닌가 봅니다. 백석은 '선우사'라는 시를 통해 혼밥의 외로움을 드러냈습니다. 1행에서 흰밥과 가재미와 내가 앉아있다는 것은 반찬을 앞에 두고 밥상에 혼자 앉아있다는 뜻이죠. 백석은 그냥 외롭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반찬을 친구로 만들어버립니다.('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백석은 가난해도, 미덥고 정다운 밥친들만 있다면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혼밥을 하면서 서럽다고 이렇게 시를 한 편 써낼 정도라니, 조금은 엄살이 심한 것 같지 않나요? 문학인들 특유의 애틋한 엄살이 밉지 않은 건 우리 모두 혼밥의 외로움을 한 번씩은 느껴봤기 때문이겠죠. 아무리 혼밥이 싫다고 해도 저 또한 혼밥을 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혼자 먹을 때 그 서러움이 커지지 않기 위해선, 메뉴 선택이라도 잘해야 합니다. 


당신의 소울 푸드는 무엇인가요? 


소울 푸드는 힘들고 지쳤을 때 먹으면 영혼을 위로받는 듯한 음식을 말합니다. 백석이 '흰밥과 가자미만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 없다'고 말한 것을 보니 그의 소울 푸드는 흰밥과 가자미였나 봅니다. 저의 소울푸드는 한솥의 치킨마요 덮밥입니다. 치킨 마요는 학창시절 졸업영화를 찍을 때 촬영장 단골 메뉴였습니다. 손쉽게 비벼서 바로 먹을 수 있고 호불호도 비교적 없어 '메뉴 통일'에 적합한 메뉴였기 때문입니다. 촬영이 끝날 때쯤만 되면 다들 치킨마요에 질려서 한솥 앞에만 경악을 했습니다. 


재밌는 건 그 시절을 다 잊고 사는 최근에도 주기적으로 이 치킨마요 덮밥이 땡길 때가 있다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치킨마요를 먹는 점심시간은 촬영 중 유일한 꿀 같은 휴식시간이었습니다. 긴장되는 촬영을 잠시 중단하고, 감독, 조감독 할 것 없이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다 같은 메뉴를 먹었습니다. 그렇게 한숨을 돌리다 보면 누군가 농담을 던지길 마련이었고 살얼음 같은 촬영장의 분위기도 조금씩 풀렸지요. 


생각해보면 저도 모르게 치킨마요에서 그때의 추억을 찾는 것 같아요. 치킨과 함께 달콤하고 느끼한 소스, 그리고 밥을 한 숟갈 퍼 입안에 넣을 때, 저는 든든한 기분을 느낍니다. 혼자 있어도 마냥 혼자이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평소에 샐러드에 소스도 안 먹는 제가 왜 이 자극적이고 느끼한 음식을 찾는지 가만 생각해봤습니다. 아마 저는 촬영을 하던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거 같아요. 몇 달 동안 동고동락하며 전우애가 생긴 스태프들과 밥을 먹고 떠들던 시절이요. 그땐 분명 질렸던 달콤하고 느끼한 치킨마요 소스. 그 소스가 이제는 어느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맛이 됐네요. 


여러분의 소울 푸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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