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그렸고 뭔가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는 그렇게 잘그리는 그림보다 훨씬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지점토를 이용해 만든 실물 크기의 킹코브라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그걸 보고 징그럽다고 우는 아이가 있을 정도였다. 미술학원은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다. 그저 그리는 것과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그리는 것과 만드는 것을 하면서 놀기를 좋아했다. IMF 위기가 닥쳤을 때 잘나가던 공장의 문을 닫은 아버지와 그때까지 전업 주부였던 어머니는 궁여지책으로 학교 앞에 문구점을 차렸는데, 그 문구점에 딸린 단칸방으로 구겨 넣어진 가족사의 우울한 시기를 지나치면서도 나는 점토를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을 정도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케치북을 채우거나 점토로 뭔가를 만들었다. 집안 사정이 꽤 나아졌던 고등학생이 됐을 때, 나는 미대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성적도 꽤 좋았고, 무엇보다 미술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였기에 진지하게 입시미술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나의 수험생활은 그날부터 시작됐다. 고등학교 1학년의 나는 매일 석고 뎃생을 하고 정물 수채화를 그렸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즈음엔 조소과에 가겠다고 구체적인 진로를 정했고, 그날부터 조소 학원에 등록해 마지막 대학 실기시험 전날까지 수많은 석고상을 만들고 수많은 얼굴을 만들었다. 돌이키면 참 고된 시기였다. 그렇게 꾸준히 또 열심히 또 간절하게 뭔가를 연습했던 적이 그 이후로 있을까 싶다. 하지만 견뎌야 했다. 미대에 가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내가 가고 싶은 학교의 학생이 되려면 반드시 겪어내야 하는 일이었다. 10대인 나는 그걸 아주 잘 알고있었다. 물론 그 과정을 함께하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도 들러리가 아니었다. 지겨운 훈련과 연습의 나날을 묵묵히 견뎌내던 그 친구들은 어느날 싸우기도 하고 어느날은 힘들고 서러워서 울기도 했고 어느날은 모래 숨어 담배를 피우면서 스트레스를 다스리기도 했다. 나보다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재수나 삼수를 하는 누나와 형들도 있었다. 그것 뿐인가? 미술 말고도 해야 하는 공부가 있다는 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밤 열 시가 되어 학원에서 나오면 집으로 돌아가 국어와 영어와 수학과 사회와 과학 문제집을 펼쳤다. 밤 열두시 즈음엔 에스비에스 라디오를 들었다. 보통은 정지영의 스윗뮤직박스를 듣다가 잠이 들었고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날엔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을 들었다.
11월. 추운 계절이 시작되어 몸이 아직 적응기를 거치고 있을 때 즈음에 수학능력시험을 봤다. 다들 수능을 망쳤다는데 나는 그래도 평소대로 봤던 터라 마음이 후련했다. 다들 그날부터 놀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날부터 미술학원에서 살기 시작했다. 아침 아홉시부터 저녁 아홉시까지. 아그리파와 줄리앙과 비너스를 쉴새 없이 만들었다. 수능이 끝나고 놀고 있는 친구들을 섭외해 앉혀두고 그들의 얼굴을 만들었다. 보통 실기시험은 너댓 시간이 주어지기에 너댓 시간을 주기로 뭔가를 만들고 해체하고 만들고 해체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지겹고 힘든 일상이었으나 확답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자기 자신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믿고 실기시험이 펼쳐지는 대학의 체육관이나 강당 같은 곳에 들어가 시간이 짓누르는 현장을 버텨내야 했다. 그렇게 모든 시험이 끝난 후에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면 학원은 숙연해졌다. 누구는 합격했는데 누구는 불합격이다. 합격한 사람은 함부로 좋아할 수도 없다. 결국 불합격한 사람이 먼저 울음을 터뜨리면서 합격자에게 위로라는 역할을 부여하거나 학원을 뛰쳐나가버리면서 합격자가 축하 받을 시간을 마련해줬다. 딱히 실기를 누가 더 열심히 준비했는지, 누가 더 그림을 잘그리거나 누가 더 잘만들었는지를 설명할 방법은 없다. 모두 나처럼 어릴 때부터 그림 꽤나 잘그려서 영재나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란 친구들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게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들어간다. 그러면 그곳에서 전국에서 모인 ‘잘그리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작품세계를 펼치기 시작한다.
2018년 전국 주요 4년제 미술대학의 정원은 5천824 명이다. 요즘은 입시의 모습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위에서 묘사한 20년 전의 모양새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술대학에는 ‘잘그리고 잘만드는’ 학생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입시를 통해 잘그리고 잘만드는 학생들을 선발한다. 그리고 그 지겨운 석고소묘라든지 수채화는 빛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효과, 그러니까 밝고 어두운 차이나 관찰자의 위치에 따른 형태의 미묘한 변화 등을 감각하고 표현하기 위한 훈련이다. 색채를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는지, 표현하는 대상이 풍기는 분위기를 얼마나 잘 묘사할 수 있는지 역시 이 훈련을 통해 길러진다. 언어의 천재라 할지라도 알파벳이나 한글은 물론 문법을 모르면 글을 쓸 수 없듯이 미술에도 알파벳에 해당하는 기본적 기호들이 있고 문법에 해당하는 장르의 형식이 존재한다. 물론 대부분은 대학에서 연구하게 되지만, 입시를 치르면서 기초적인 소양을 갖추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다.
저 프로그램에서 말하는 ‘한국의 입시가 천재를 망쳤다’는 것은 완전히 틀렸다고 봐도 된다. 입시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본인이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리면서 미대에 들어가고 싶거든 그에 맞는 입시 제도를 따라 밟으면 된다. 그게 아니라면 저 프로그램에 출연한 학생이 감당하지 못한 저 그림들을 그려야만 한다. 입시는 성실함을 담보로 결정된다. 어쩌면 성실함을 평가하는 장치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건 입시를 떠나 작가나 디자이너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작가나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약속된 시간동안 작업을 완료할 성실함이다. 작가에게 이런 성실함이 없다면 약속된 전시를 할 수가 없을 테고 디자이너에게 이런 성실함이 없다면 약속된 결과물을 만들지 못할 테다. 게다가 본인이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리면서 살아가는 작가나 디자이너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상황에 따라서는 의뢰받은 그림을 그리거나 자신의 성향과는 다른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때도 있고 디자이너라면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에 고스란히 따라야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생긴다. 자기가 잘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만 그리고 싶다면 방구석에 앉아 취미로 그림을 그리면 된다.
게다가 나는 저 프로그램에 출연한 학생의 그림이 특출나다거나 천재적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예중이나 예고, 미술대학에 들어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학생들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보편적이고 진부한 표현력 중 하나일 뿐이다. 저런 그림을 그리며 신동 소리를 듣던 5천824명이 2018년에 주요 4년제 미술대학에 들어갔다. 정확히는 그보다 많은 그림 잘그리는 학생들 중 입시를 통과한 학생들만 저만큼이다. 물론 그들 중 천재는 한 명도 없다. 그러므로 저 프로그램이 발굴한 것은 영재도 아니고 이후에 저 프로그램이 소개한 실패 사례는 수두룩하게 많다. 애석하지만 흔해빠진 아이 중 하나고 흔해빠진 중도 포기자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입시를 악마로 만들면 달라질 게 뭔가? 천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둔한 사회임을 고백하는 방식을 취하면 달라질 게 뭔가? 프로그램의 권위? 저 학생을 향한 위로? 오히려 우스워질 뿐이다. 이따금 자기 아이가 특출나다고 착각하는 부모들을 보게된다. 그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그린다면서 예중이나 예고에 보내고 싶다고 말하는 부모들에게 아이의 그림을 보자고 하면 하나같이 거기서 거기다. 나는 그저 그들에게 건투를 빌 뿐이다.
그리고 애초에 천재에게 예고나 대학이 왜 필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