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편한 직업을 꼽으라면 남성용 소변기를 디자인하는 이들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소변기라는 것이 그 쓰임새가 배설이라는 것 하나뿐이기 때문에 획기적인 디자인을 기획할 수도 혁신을 이룰 일도 없어서 디자이너의 이름이 널리 알려질 기회는 단연코 없다는 것만 빼면 아주 훌륭한 직업이다. 이들은 얼굴도 이름도 없이 그저 묵묵히 디자인을 한다. 다만 미리 경고하는데, 이건 꽤 억울하고 지난한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생각해보라. 똑같은 학교에서 똑같은 교수에게 똑같은 강의를 듣고 똑같은 학점을 받고 졸업해 한 명은 베엠베 디자이너가 되었는데 다른 한 명은 남성용 소변기 디자이너가 됐다. 그래서 베엠베 디자이너는 한국 최초의 베엠베 수석 디자이너라며 언론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남성용 소변기 디자이너는 파리 모양 스티커를 디자인한다.
단언코 파리 모양 스티커는 남성용 소변기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혁신이었다.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한 것만 빼면. 한 번 과녁에 조준하면 있는 힘껏 오줌을 발사하는 것이 남자들이다. 파리 모양 스티커를 발견한 남자들은 더 세게 오줌을 발사하고, 이윽고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오줌은 사방으로 튄미수다. 소변기의 곡률을 변주해보기도 하고 센서를 달아 오줌 눌 남자가 지퍼를 채 열기도 전에 물을 내려버리는 방법도 동원했지만 어떤 소변기 디자이너도 오줌이 안 튀는 소변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한 적이 없다. 인류는 지금까지 반 세기동안 인공위성도 띄우고 태양계 밖에 보이저호도 내보내고 우주정거장도 만들고 심지어 버려지는 추진 로켓에 제어 장치를 달아 다시 쓸 수 있도록 안전하게 착지하는 추진 로켓도 개발해냈지만 여태 오줌이 튀지 않는 소변기를 개발하진 못했다. 이건 어쩌면 인류 최고의 천재라고 할 수 있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부활한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며 대충 디자인할 것이다. 이런 실패가 계속되도 남성용 소변기 디자이너는 회사에서 해고될 위험이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남자들은 소변기를 제대로 쓸 생각이 전혀 없다.
언젠가는 "남자가 흘려야 할 것은 눈물 만이 아닙니다"라는 마초적인 표어를 변기마다 붙이기도 했지만 이미 아무데서나 눈물을 흘려본 남자들은 그깟 오줌 흘리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미술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절대로 남성용 소변기를 만드는 회사에 입사원서를 내라. 베엠베에 입사원서를 내고 면접 일정이 잡히면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훌륭한 언변으로 자신의 디자인적 감각을 뽐내야 하지만 남성용 소변기 디자이너에겐 그저 파리 모양 스티커를 사마귀로 바꾸거나 미니멀하게 원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해보라. 남자들은 남성용 소변기만 제대로 쓸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화장실이 화장실인 이유 자체를 모른다. 그들은 오줌을 누고 손을 씻을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홍제역 남자 화장실의 모든 세면대에서 물이 나오지 않더라도 아무도 홍제역 역무실에 전화해서 "세면대에서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애초에 세면대에서 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남성용 소변기를 전봇대 모양으로 만들어 바닥에 흥건하게 오줌이 흐르더라도 남자들은 불만을 표시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워라벨을 완벽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디자이너로서 역량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면서 술을 마실 일이 없다. 게다가 당신이 남자라서 남성용 소변기를 이용하면서도 그걸 제대로 쓸 필요가 전혀 없다. 이건 거의 가톨릭 사제나 조계종 승려를 위한 콘돔을 디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충 아무렇게나 끄적끄적 그려서 생산팀에 넘겨버리고 당신은 월급을 어디에 쓸지, 여름 휴가를 어디로 갈지 정도나 고민하며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