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부터 하자면, 저는 간신히 스코어 90대를 치는 초보 골퍼입니다. ‘더블보기 플레이어’라고 하죠. 골프에 입문한지는 햇수로 5년째, 연습장이 아닌 필드에서 라운딩 하기 시작함을 의미하는 소위 ‘머리를 올린 지’는 만으로 3년이 되었습니다. 그중 2년을 골프환경이 비교적 좋은 미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라운딩 경험은 구력에 비해 많은 편입니다. 총 100회 정도?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점수가 그렇습니다. 변명을 찾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저 제가 점수에 무심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눙쳐놓습니다.
‘잉여골퍼’라는 말
그렇습니다. 저는 잉여골퍼입니다. ‘잉여’라는 말, 언제부터인가 유행하기 시작해 ‘잉여짓’, ‘잉여인간’, ‘잉여롭다’ 등으로 변주되곤 하지요. 나머지라는 뜻의 잉여. 좌우가 바뀐 ‘ㄱ’자모양의 나눗셈 틀에 넣었을 때 마지막 칸에 0이 아닌 무언가가 남는다는 것.
약간의 강박 성향을 가진 저는 초등시절 색칠공부 책 그림에 색연필 하나 바깥으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가 산수시간(! 그렇습니다! 저는 옛날사람인 것입니다!)이면 이렇게 다 나누어지지 않고 굳이 남는 이 잉여라는 존재가 꽤나 불쾌했었지요. 히틀러에게 유태인이, 군부독재에게 사회운동가가, 그리고 요즘 기성세대에게는 수많은 청춘들이 이런 불쾌한 잉여이려나요. 나누어 딱 떨어지지도 않으며, 쉽사리 포섭되지도 않고, 그래서 손으로나 발로라도 가리고 싶어 안달하게 만드는 그런 누추함인데도, 어찌해볼 도리 없이 들켜버리는, 혹은 있는 그대로 그냥 그렇게 드러나는 존재들.
제가 잉여골퍼라는 것은 골프에 있어 저 자신도 이렇게 누추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있어도 없어도 아무런 상관없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골퍼라는 의미입니다. 아리야 주타누간도 아니고 고진영도 아니고 심지어는 ‘SBS배 고교동창 골프’에 나오는 아마추어 골퍼들의 관록에조차 미치지 못함에도 그냥 꿋꿋이 자기 멋에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가장자리에서는 중심에서 볼 수 없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꿈에도 생각 못한 큰 것들을,
가장자리에 선 사람들이 맨 처음 발견한다."
- 커트 보니것
‘잉여골프’라는 말
잉여골퍼인 저에게 골프란 또 얼마나 잉여로운 활동인가요. 하루에 한 시간도 차지하지 않는 날이 대부분인 활동.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죠. 골프를 치는 날조차, 공이 슬라이스나 훅 없이 똑바로 간다 해도, 120개를 쳐도 100을 친대도, 하루아침에 싱글이 된다 해도 그게 무슨 상관? 안물안궁이지요.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조차 "오늘은 드디어 80대를 쳤어요"하는 말은 울림을 갖지 못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골프가 재미있지만, 어느 날부턴가 아이언을 놓고 골프 클럽을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다 해도, 그래서 골프화에 먼지가 수북이 쌓이고 스윙을 영영 잊어버린대도 세상뿐 아니라 저 스스로에게조차 별 상관이 없을 겁니다.
골프라는 운동으로 세상을 바꿀 만한 아무런 존재가치를 지니지 않는 사람이 하는 그냥 골프 이야기. 그래서 잉여골프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혹은 그러면 그런 만큼, ‘잉여골퍼가 아닌 자들’의 ‘잉여골프가 아닌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게, 새롭고도 자유로운 시선에서 바라보는 색다른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합한 건 바로 저같은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