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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은 Nov 01. 2020

당연함 분실 사건

지갑을 잃어버리고

사람의 기운은 지갑에서 나오는 게 분명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떠올린 건, 어제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다시 한번 지갑을 잃어버린 것처럼 기운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기운이 없는 걸 보면 기운은 지갑에서 나오고,  기운이 넘치고 싶은 사람들이 명품지갑을 사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지갑은 SPA 브랜드였는 걸.


명품이 내뿜는 기운 같은 건 사실 관심 없다. 나는 재발급을 위해 은행과 공공기관을 7군데나 방문해야 한다. 그전까지 아무도 나를 신용할 수 없다. 무엇보다 기운이 빠지는 이유는 나 조차도 신용할 수 없는 나의 꼼꼼함 때문이다. 나는 내 것들을 섬세하고 꼼꼼하게 챙기는 것에 자주 실패한다.


쥐도, 새도, 사람도, 주인도 모르게 사라진 지갑은 어디로 갔을까? 정확히 말하면 지갑은 움직이지 못하니까 지갑을 두고 내가 사라진 거다. 나는 어디에다가 소중한 지갑을 내팽개쳤을까.

잃어버리기 전까지 지갑은 당연하게 있어야 하는 내 물건 중 하나일 뿐, 그리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존재감이란 것은 역설적이게도 존재하지 않을 때 더욱 실감하게 된다. 그렇다면 소중함은 뭘까. 당연함으로 존재하다가 그 대상이 부재할 때 생겨나는 감정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반대로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나에게 당연함을 주는 존재가 소중한 것일 수도 있겠다. 당연한 가족들, 당연한 친구들, 당연한 직장, 당연한 집, 당연한 주말, 당연한 시간, 당연한 인생. 이 자리를 빌려 당연해서 소중한 존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나에게 당연해줘서 고마워."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대신에 잘 잃어버린다. 나의 소중한 모든 물건에 GPS 장치를 달고 싶다. 오래전 상대방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연인 위치 공개 어플을 알게 되었다. 그 어플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연인 상대의 '실시간'이 궁금한 것일까, 아니면 언젠가 상대방과의 관계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걸까. 그러나 상대방을 실시간으로 궁금해한다면 얻는 것은 이별일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딴 길로 샜다. 내 이야기에도 GPS를 달아야 한다.


지갑을 잃어버리고 여러모로 유익한 교훈을 얻은 것 같다. 지갑이 없기 때문에 수업료는 낼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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