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내달리던 시절엔 감수성은 불필요한 감정이었다. 지치지 않는 게 최우선이라 날 잠시 멈춰 생각하게 만드는 건 다 장애물이라고 여겼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란 책을 읽고서, 비로소 내 슬픔을 느낄 때가 오고서, 난 제법 감수하는 속도로 살게 되었다. 다른 슬픔에 아파할 줄 모르는 사람은 본인의 슬픔에도 눈 감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나의 슬픔에 자신 있게 슬퍼할 줄 알게 돼서야 다른 이의 슬픔에 아파할 수 있었다.
이슬아 작가의 수필집 <심신단련>을 읽었다. 유년시절 장애를 가진 친구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문득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정말 친했으면서 졸업앨범을 펼쳐야만 기억나는 친구도 있지만 친하지도 않았는데 또렷이 기억나는 친구들도 있다. 그중 윤지와 주혁이의 생각이 났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는 수업을 따라갈 수 없는 장애우를 위한 특수반이 있었다. 평상시엔 비장애우들과 같이 수업을 듣다가 일주일에 몇 번 2~3시간씩 수업을 들었던 것 같다. 우리는 친구를 놀릴 때 '너 특수반이지?'라고 묻곤 했다. 특수반이라는 공공연한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차별은 참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차별을 느끼는 역치가 높았던 시절이었다.
3학년이 되자 담임 선생님은 주혁이와 짝하고 싶은 친구가 있는지 물었다. 주혁이가 도움이 필요한 친구이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특수반 애와 짝이 된다면 따돌려지기 딱 좋았다.
침묵 속에서 손을 든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에게 이쁨 받고 싶은 마음과 다른 아이들과 는 다르다는 걸 티 내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린 나는 계산적이었지만 정작 나의 책임감은 계산하지 못했다.
주혁이와 짝꿍이 된 날, 선생님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혁이와 짝이 된 사실을 알리며 가정에서 내 행동을 각별히 격려해달라고 전했다. 다음 날엔 주혁이네 어머니가 학교에 오셔서 고맙다는 말과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전하셨다. 칭찬받으려고 한 일이었지만 칭찬을 받을수록 차례대로 죄책감이 생겼다.
내가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수업 과목이 바뀔 때마다 이전 과목의 교과서를 책상에 넣고 다음 교과서를 꺼내 펼쳐주는 일, 가끔 특수반에 데려다주는 일, 체육시간에 실내화 주머니를 챙겨 같이 나가는 일. 그동안 받은 칭찬들이 있었으므로 이 일들을 성실히 수행했다.
그렇게 새 학기가 시작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친한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들과 노는 게 너무 신나고 들떠서 체육시간만 되면 수업 종이 치기를 기다렸다가 밖으로 뛰어 나갔다. 신나게 공을 차고 놀다가 화단에서 개미를 먹고 있는 주혁이를 발견했다. 주혁이는 나 없이도 잘만 신발을 갈아 신고 나왔다. 친구들과 가까워질수록 주혁이를 정말 까맣게 잊었다. 지금 떠올려봐도 그 이후가 기억이 없을 만큼 주혁이의 존재를 오래 잊었다.
어느 날 체육시간이 되어 언제나 그랬듯이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두고 온 것이 있어 교실에 들어왔을 때 윤지라는 친구가 주혁이와 주혁이의 신발 가방을 챙기고 있는 것을 봤다. 내가 주혁이를 잊은 이후로 줄 곧 챙겨줘 왔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주혁이가 화단에서 개미를 주워 먹고 있을 때 윤지가 찾아가서 손을 털어주기도 했다.
아무런 칭찬도 받지 않은 윤지가 무슨 마음으로 주혁이를 챙겨줬는지 이제야 생각해본다. 윤지가 주혁이를 챙겨주던 그 순간은 내가 주혁이를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자, 나의 무책임을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