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은 커피 마시면 뇌세포 죽는다."
어린 시절 이모가 커피를 마시면 뇌세포가 죽는다고 해서 진짜 그런 줄 알았다. 더위사냥을 먹으면 정말로 뇌세포가 죽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거짓말은 언제나 진실 같다. 거짓말 같은 거짓말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아무도 듣지 않는 말들은 소외되고 진실보다 더 진실 같은 거짓말들만 남는다. 실제로 나는 어린이의 뇌세포가 적기 때문에, 커피는 어른들만 마실 수 있다는 게 거짓말이라는 걸 고등학생이 돼서야 알았다. 멍청하게도 그 말을 계속 믿었던 이유는 줄곧 먹어왔던 더위사냥이 뇌세포를 죽이는 커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주인공, '안나'라는 인물은 가족들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때 지구에 홀로 남아 냉동 수면 기술을 연구한다. 과학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우주는 더 넓어졌다. 또 다른 혁신적인 과학 기술이 발견되자, 이전엔 상상도 못한 먼 우주까지 갈 수 있게 되고 더 많은 행성과 항로를 개척하게 된다. 새롭게 갈 수 있는 행성이 많아짐에 따라 자원적 가치가 낮은 행성과 수요가 적은 항로의 운행이 중단돼버리는데, 안나의 가족이 이주한 행성도 운행이 영원히 중단돼버리고 만다. 안나는 미래에 기술이 발전하면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고 본인이 개발한 냉동 수면 기술로 오랜 시간 수면에 들어간다. 그러나 미래에도 인류는 빛의 속도를 넘지 못했으며 항로 또한 재편되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가족들의 수명까지도 넘어 버린다.
그렇게 안나는 100년 넘게 폐쇄된 우주 정거장에서 하염없이 우주선을 기다린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뇌세포가 죽는 냉동 수면 기술의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안나는 치매에 걸린 듯,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린다. 우주 연합에서 정거장을 철거하려고 하지만 안나가 기를 쓰고 정거장을 지켜낸다.
김초엽 작가는 독일의 '가짜 버스 정류장' 기사를 보고 이 작품을 떠올렸다고 한다. 독일 한 요양원에는 가짜 버스 정류장이 있다. 요양원에서 머물던 치매 노인들은 가족들이 그리워지면, 시설에서 도망쳐 나와 가짜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그러나 노인들을 데려가는 건 버스가 아닌 시설 직원이다. 노인 대부분이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에 착안하여, 가짜 버스 정류장을 만든 것이다.
과연 미래에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가족이 보고 싶어 시설을 뛰쳐나온 노인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줄 수 있을까. 사실은 노인과 가족은 빛의 속도로 갈 필요 없이 우주선을 탈 필요도 없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몇백만 광년 떨어진 안나 가족에 비하면 너무 가깝다. 그 거리는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어떤 물리적인 속도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작품 속 안나는 자신을 회유하러 온 우주 연합 직원에게 말한다. 작가는 인류가 영영 풀지 못한 과제인 빛의 속도 만이 갈 수 있다는 은유를 적용한 게 아닐까.
진실은 씁쓸하다. 가족들이 보고 싶어 뛰쳐나온 노인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이, 고작 가짜 버스 정류장이라는, 거짓말이라는 게 더 거짓말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