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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은 Feb 09. 2023

진정한 커피의 맛

식당을 고를 땐 맛보다 조명을 따진다. 이왕이면 주황색의 간접조명이면 좋다. 커피도 역시 커피보다는 카페의 분위기가 중요하다. 이왕이면 카페 내부의 벽 컬러는 조명을 잘 담아내는 흰색이면 좋다. 본질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떤 이들은 주객전도된 취향을 꼬집으며 나를 감성충으로 분류하거나, 주황색 조명의 원조라며 투다리를 추천하기도 한다.


억울한 누명이 아닐 수 없다. 미(味)각보다는 미(美)각이 주는 만족감이 더 클 뿐이다. 맛에 관해서도 엄격한 편임을 진정한 커피 맛을 설파하며 증명하리라. 광고 경력 7년 차, 커피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는 날들이었다. 짬밥으로 권위를 내세우고 싶지만 아쉽게도 평일에 마신 커피는 그저 생존수단에 불과하다. 과감하게 말하자면 오로지 토요일에 마신 커피만이 진정한 커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토요일에 마셨다고 해서 모두 진정한 커피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첫 번째, 커피를 주문하기 전 헬스장에 들러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이왕이면 같은 노력으로 더 많은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복합관절 운동이 좋다. 대표적인 예로 벤치프레스가 있다. 참고로 커피에도 대표적인 에스프레소라는 커피가 있다. 에스프레소는 ‘exprss’의 이탈리아식 표기인데 곱게 간 원두를 높은 압력에 ‘빠르게(express)’, ‘짜내다(Ex-press)’라는 이중적인 의미에 어원을 두는 묘한 단어다. 그래서 원두 대신 이두, 삼두, 대흉근을 ‘빠르게’, ‘짜낸‘다는 행위에 있어서 에스프레소와 벤치프레스는 동의어다.


두 번째, 헬스장 다음으로 수영장에 들르는 것이 좋다. 무산소 운동 후 유산소 운동을 해주는 것이 순리이고, 더 많은 운동효과를 얻을 수 있다. 수영을 마친다면 바나나우유가 마시고 싶어 질 테지만 나는 대체로 참는다.


마지막, 농도 짙은 책을 준비하고 비로소 카페에 간다. 앞선 두 과정으로 더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야만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특히 한가로이 카페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공상에 빠져도 주말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세속적인 압박으로부터 영향받지 않는 이상적인 상태가 되면 커피의 맛을 냉철하게 음미할 수 있다. 거기에 농도 짙은 책을 탐닉하다 보면 어느새 졸음이 밀려온다. 준비과정이 길었지만 이제야 진정한 커피의 맛을 만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책이 주는 달콤한 지식과 나른하게 다가오는 달콤한 졸음이 마주하는 동안 커피를 마신다. 졸음의 단 맛과 지식의 단 맛 사이로 들어온 커피의 쓴 맛은 옅다.


나는 대체로 존다. 어떤 이들은 너는 카페에 자러 가냐고 꼬집는다. 하지만 진짜 VIP들은 백화점 명품관에 슬리퍼를 신고 가는 것처럼, 진정한 커피의 맛을 위해서라면 카페의 근사한 분위기 속에서도 꾸벅 졸 수 있어야 한다. 서사가 길었지만 진정한 커피의 맛은 꾸벅꾸벅 졸면서 마실 때에 느낄 수 있다.


졸고 나면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라도 가슴이 뛰고 싶었는지 모른다. 일상 속에서 가슴 뛰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 자신을 피로하게 만드니까. 가슴 뛰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피로사회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커피의 피에스타를 권하고 싶다. 토요일만큼은 피로를 쫓는 커피가 아닌, 단잠을 좇는 진정한 커피의 맛을 만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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