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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May 05. 2023

2 개다래는 겨울을 난다

오늘도 자라는 중입니다

 나는 설명서를 읽어보기 전에 버튼부터 눌러보는 타입의 인간이다.

 기계는 이것저것 눌러보다 고장 나면 고치면 되고, 내가 저지르는 충동적인 일들은 내가 책임지고 수습하면  되니까. 하지만 생물과 관련해서는 그 실수에 대한 결과를 감내하는 주체가 내가 아닌 것이 문제다.  내 무지 때문에 산 채로 쓰레기통으로 가게 된 개다래 1호처럼 말이다.


 두 번째 개다래나무가 집에 도착했다. 이번엔 설명서 대로 차근히 해보기로 한다. 집 앞 다이소에 가서 가장 넓고 큰 플라스틱 화분과 분갈이 흙, 배수에 좋다는 마사토를 사 왔다. 근데 화분 아래 구멍은 이렇게 커도 되는 건가? 사 온 화분에 마사토를 대강 깔고 흙을 넣는다. 이대로는 화분에 있는 흙이 너무 높아서 개다래 뿌리가 다 안 들어간다. 흙을 좀 덜어내고 넣고, 어 또 안되네? 또다시 덜어내고 넣고. 힘겹게 흙높이를 맞춘 뒤에 보니 화분 밑으로 흙이 쏟아져 나왔다. 이때 알았다. 그게 막으라고 있는 구멍이구나. 무언가 의심스러울 땐 역시 확인을 해봐야 한다.

 여전히 내 분갈이 실력은 전혀 늘지 않았는데, 그래도 이제는 망과 배수용 자갈도 미리 넣을 수 있게는 되었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


 넓은 화분으로 옮긴 개다래 2호는 집에서 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에 두고 지켜보았다. 이번엔 꼭 건강하게 기르겠다고 다짐하며.

 그런데, 이번엔 잎이 마른다. 식물은 무조건 해 쬐는 게 좋은 거 아닌가 했지만 동남향인 우리 집의 햇빛은 그 정도가 아니었던 것 같다. 식물에 따라 필요한 햇빛의 양이 다르다는 걸 이때는 몰랐다. 어설프게 물을 좀 더 주어보기도, 해가 조금 덜 드는 곳으로도 옮겨보았지만 잎들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뭐든지 빠른 피드백에 익숙한 나는 당장 시들시들한 잎들을 보니 금세 초조해진다. 결국 파이팅 넘치는 바보인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제일 튼튼해 보이는 가지를 하나 제외하고 나머지를 가위로 모두 잘라버렸다. 내 딴에는 영양분을 한쪽으로 몰기 위한 가지치기였지만, 앙상해진 개다래는 슬프게도 가을을 지날 때까지도 새 잎도 새 가지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겨울이 왔고, 개다래 2호는 몇 남지 않은 잎마저 모두 떨구었다.

내년 봄에 개다래 3호를 주문해야 하는 걸까? 급한 마음에 식물은 가지로도 번식을 한다고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잔가지들로 어설프게 물꽂이를 해본다. 네, 결과는 역시나 실패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뭘 믿고 충분히 자라지도 않은 가지를 수돗물에다 대충 꽂아놨는지 모를 일이다.) 생각보다 뿌리에서 떨어져 나온 가지들은 연약하고, 모든 식물이 물꽂이가 뿅 하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해 겨울은 나에게도 개다래에게도 길었다. 내 늙은 강아지를 암으로 보내고 맞는, 보리가 없는 첫겨울.  오랜 친구를 잃은 나는 뿌리 잃은 나무처럼 부유하며 끊임없이 죄책감과 상실감에 휩쓸렸다. 보리와 처음 만났을 때의 나는 너무 어려서, 내가 너무 치열하게 내 인생을 사느라 보리가 충분히 행복하지 못했을 까봐 자꾸 후회가 되었다. 나는 때때로 나를 향해 걸어오는 보리 발자국 소리를 꿈에서 듣곤 했는데, 그런 날은 하루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펫로스 증후군이구나. 나는 내 슬픔의 크기를 충분히 예상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는 그것보다 더 버거웠다. 하지만 슬퍼하기만 하기엔 함께 살기 시작한 고양이와는 아직도 알아가야 할 것들이 많았다. 잔병치레가 잦았던 우주는 종종 병원에 갈 일이 생겼고 익숙하지 않은 일들로 우주와 씨름을 하다 보면 한 번씩 감정적으로, 혹은 체력적으로 힘든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잊힐 때쯤 한 번씩 바싹 마른 나뭇가지에 물을 주었다. 괜찮아질 거야, 그렇게 개다래한테 하는 소린지 스스로에게 하는 소린지 모를 말을 하면서.


그래서 탈 많았던 개다래 2호의 생사는 어떻게 되었냐 하면, 봄이 되자 죽은 듯해 보이던 가지에서는 연두색의 작은 새순이 돋아났다. 놀랍게도.

이 초록 친구는 겨우내 내가 했던 일들이 아주 쓸모없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많은 실수들로 개다래에 대해 알아가는 동안 버텨준 인내와 생명력에 경외심마저 든다. 그리고, 근거 없는 자신감도 같이 생겼다.

어, 나도 기를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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