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에서 딱 한 도시만 여행해야 한다면 아마 대부분은 쿠스코를 여행할 것이다. 마추픽추와 비니쿤카, 성스러운 계곡 같은 굵직 굵직한 명소들을 방문할 수 있는 베이스 도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스코가 특별한 더 중요한 이유는 이 곳이 잉카문명의 중심이라는 사실이다. 쿠스코의 어느 날, Free walking tour에 참가하여 쿠스코의 역사 뿐 아니라 잉카 문명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쿠스코가 잉카문명의 중심 도시로 일컬어지는 것은 지리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서쪽으로는 태평양이 있고 북, 동, 남쪽에도 깎아지게 높은 산이나 아마존 정글이 있어서 당시 사람들은 그 너머에는 세상이 없다고 믿었다. 마치 옛날 중국 사람들이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잉카사람들이 살던 영토 중에서도 가운데서 여러 도시를 연결했던 쿠스코가 중심 도시가 된 것이다. 실제로 수 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잉카 트레일의 중심이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이라고 한다.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은 다른 중남미 도시의 중심 광장과 비교해서도 특출나게 아름답다. 웅장한 교회와 성당이 두 면을 장식하고 나머지 두 면 역시 고풍스런 아치로 이루어져 낮이나 밤이나 운치가 있다. 사실 아르마스 광장은 (당시 이름은 잉카 언어인 케추아어로 된 다른 이름이었지만) 잉카시대에 더 규모가 컸다고 한다. 그랬던 것을 마치 일본이 경복궁 한 귀퉁이를 헐어 길을 냈 듯 중간 중간에 건물을 지어서 지금의 구조가 되었다. 이런 식민 시대의 아픔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잉카 시대의 건물은 모두 1층이었다고 한다. 100km도 넘게 떨어진 산에서 가져온 거대한 돌로 만든 건물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쿠스코에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2~3층이 넘는다. 식민 시대에 스페인 사람들은 1층으로 된 잉카 건물 위에 유럽풍의 건물을 올렸고 그래서 지금 쿠스코의 오래된 건물들은 1층은 잉카, 그 위로는 유럽풍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슬픈 것은 잉카인들에게 중요했던 신전이나 유적에도 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것인데 대표적인 건물로 코리칸차(Qorikancha)가 있다. 코리칸차는 잉카문명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지만 그 위로 스페인이 지은 Santo Domingo 성당이 있다. 코리칸차와 산토 도밍코 성당을 둘러보면서 문득 광화문에 있었던 조선 총독부 건물이 생각났다. 그 건물을 부순 게 김영삼 대통령 때라고 알고 있는데 내가 태어났을 때까지만 해도 광화문에 그런 건물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약간 소름이 돋는다. 먼 옛날 얘기 같지만 슬픈 역사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잉카문명에 대한 이야기 하나 더, 잉카 사람들도 숫자 3을 좋아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3가지의 신성한 동물; 콘도르, 푸마, 뱀이 있는데 (콘도르는 독수리나 매와 닮은 커다란 새다.) 쿠스코의 별칭은 Ciudad de Puma, 즉 푸마의 도시이다. 쿠스코를 위에서 내려다 보면 언뜻 달리는 짐승의 형상인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잉카 시대에 쿠스코를 푸마의 도시로 계획했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매력적인 도시 쿠스코. 나는 일주일을 머물렀지만 더 머물러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만큼 많은 명소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현지인들이 잉카 전통의상을 입고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 준다던지 스페인어와 영어로 호객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식민 시대의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곳, 지난 일은 어쩔 수 없다지만 지금도 몇 백년 전 강대국 출신 사람들이 여기서 돈을 쓰며 대접받는 사실이 조금 씁쓸하다. 남미 사람들이 스페인에 가서 화려한 휴가를 보내는 날도 올까?
쿠스코에 온 첫날, 나는 다음날 갈 비니쿤카(Vinicunca) 투어를 예약했다. 비니쿤카는 흔히 Rainbow Mountain, 무지개 산이라고 부르는 쿠스코의 명소 중 하나다. 해발 5,000미터에 위치한 비니쿤카 정상에 오르면 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나무나 풀은 없는 민둥산이지만 다양한 색의 층이 있어서 그 모습이 마치 무지개 같이 아름답다.
그런데 정작 비니쿤카에 간 건 오늘, 쿠스코에서 보내는 4일 째 날이었다. 나스카에서 쿠스코로 이동한 야간버스에서부터 안 좋았던 속이 쿠스코에서 본격적으로 나빠져서 예약한 날에 투어를 가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쿠스코 시내에서 며칠 여유롭게 보내며 속을 달랬고 오늘 아침 5시, 픽업장소인 작은 광장에서 버스를 탔다.
3시간쯤 달렸을까, 비니쿤카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아침식사를 위해 잠시 멈췄다. 예상과 다르게 사방의 들판과 산이 모두 눈으로 덮여 있었다. ‘와!’ 이 때까지만 해도 설경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비니쿤카에 오르는 길은 매우 험난했다. 식사를 마치면 곧 트래킹 출발지로 가서 등산이 시작된다. 해발 약 5,000미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해발 4,500미터 정도의 위치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산과 들판이 눈에 쌓였으니 하이킹 트랙은 시작부터 질척했다. 눈이 쌓여 미끄러운 것도 문제였지만 질척한 진흙길은 금세 신발을 흠뻑 적셨고 군데군데 미끄러운 곳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말을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잉카 문명의 중심지답게 현지 인디오들이 말을 데리고 오르락내리락하며 호객을 한다. 타지 않으면 내 몸이 힘들어지니 부르는 게 값일 정도라 (그리고 이제 고산병에는 익숙해졌으니) 나는 애초에 탈 생각은 하지 않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음을 옮겼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사실, 사실 말은 약 500년 전 잉카제국이 스페인에게 함락당하면서 전해졌다고 하는데 이 때 말을 통해서 옮겨온 전염병으로 수많은 인디오들이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그 후손들이 여행자들에게 말을 태워주고 돈을 버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중남미를 여행하며 이런 기분이 든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끝없는 설경,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조금씩 지치고 숨도 가빠왔다. 아무리 고산지대에 익숙해졌어도 해발 5,000미터는 역시 쉬운 것이 아니었고 나는 수시로 숨을 골라가며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아...’ 올라오며 예상한 대로 무지개 산의 한 쪽은 눈에 덮여 있었고 드러난 곳도 흐린 날씨 탓에 무지개 빛이 선명하지는 않았다. 사실 이 때는 너무 지쳐서 아쉬움보다 다 왔다는 안도감이 더 크긴 했지만 맑은 날 비니쿤카의 선명한 무지개 풍경을 생각하면 아쉽긴 하다.
비니쿤카가 무지개 빛을 띠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미네랄, 날씨, 그리고 환경오염. 흥미로운 것은, 비니쿤카가 여행지로 유명해진 건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는데 그 전에는 온도가 더 낮아서 산이 늘 눈에 덮여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눈이 녹아서 지금 아름다운 빛을 내는 유명 관광지가 됐다는 것이다.
뭐 어쨌든 반 쪽 남은 무지개 산이나마 사진으로 담고 산을 내려왔다. 길이 미끄러워 몇 번 넘어져서 다 내려올 때쯤엔 체력적으로 많이 지쳤다. 거의 다 내려올 무렵, 어쩌다 보니 길에는 나밖에 없었고 앞에 펼쳐진 설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틀었다. 아름다운 피아노 전주,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했다. 아름다운 풍경 때문인지, 많이 지쳐서인지, 아니면 한국에 있는 보고픈 사람 때문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 풍경과 음악에 잠시 감정이 복받쳤다. 수첩을 꺼내 그 감정을 잠시 기록하고 비니쿤카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았다.
쿠스코 도심은 자주색이다. 지붕이나 건물 벽이 모두 붉은 계열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쿠스코에서 남쪽으로 400km 정도 떨어져 있는 아레키파는 (Arequipa) 흰 색을 띤다. 광장을 둘러싼 교회와 건물들이 모두 흰 색이라 해질녘에 붉게 물드는 모습이 특히 아름다운 곳, 나는 아레키파에서 하루를 보냈다.
쿠스코에서 저녁 8시 버스를 타면 다음날 새벽 6시 쯤 아레키파에 도착한다. 지난번 버스에서 너무 고생을 한 탓에 Cama를 예약한 터라 이번엔 꽤 편하게 올 수 있었다. (페루의 버스는 보통 2층인데 Cama는 1층에 위치한 1등석을 의미한다. 좌석이 넓고 뒤로 더 많이 젖힐 수 있다.)
뿌노로 (Puno) 갈 밤 버스를 예약하고 짐을 맡긴 후에 아르마스 광장으로 갔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한산한 광장은 기대한 대로 하얀 빛을 띠고 있었다. 성당에 들어가서 잠시 기도를 하고 나와 광장을 거닐었다. 배가 고프다. 마침 호객꾼 아저씨가 광장 2층 테라스에 위치한 식당을 소개하길래 조금 가격을 깍고 들어갔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도심을 걷다가 간단히 식사를 하고, 졸리면 광장 벤치에 앉아 조금 잤다. 야간버스를 타고 도착해서 또 밤에 다른 버스를 타야했기 때문에 사실 많이 피곤했지만 천천히 하루를 보냈다. 모기인지 벌레인지가 자꾸 다리를 물어서 씻지 못한 찝찝함이 배가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아늑하고 조용했던 곳으로 기억된다.
티티카카 호수는 기대에 미치지 않았다. 뭐, 내가 늑장부려서 배를 타지 못하고 호숫가에서 바라만 봐서 그렇겠지만 아침에 너무 피곤했던 것이다. 다리에는 아레키파에서 물린 모깃자국이 가득하고 훌쩍거리는 것이 감기기운도 있다. 숙소의 차가운 공기를 피하려 이불 속에 잔뜩 웅크린 게 늦잠의 화근이었다.
오후 2시 반 버스로 볼리비아 라파즈로 넘어간다. 세어보니 페루에서 총 28일을 지냈고 하루 평균 37달러를 썼다. 마지막 날은 늘 그렇듯 현지 돈이 쪼들려서 어제 오늘은 시장에서 5솔짜리 (= 약 1.6달러) 밥을 사먹는다.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못내 아쉽다. 이번 여행 중 가장 오래 머무른 나라였고 어쩌면 가장 많은 탄성을 지른 곳이었는데... 이제 볼리비아에 가면 또 어떤 느낌일지,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사실 이 쯤 여행하면 설렘보다는 그냥 덤덤하다.
아직 점심은 나오지 않았다. 10분만 기다리라고 웃으셨던 주인 아줌마의 손이 바빠 보인다. 서울에서 이런 시장에 온 적이 있던가? 거기서 이렇게 싼 밥을 먹은 적이 있던가? 적어도 회사를 다닐 땐 없었던 것 같다. 같은 시간 속에 참 많은 삶의 모습들이 있구나. 작년 이맘 때도 아줌마는 여기서 밥을 지으셨을 테고 난 양복 차림으로 고층빌딩을 드나들었을 테다. 그렇다면 이제 1년 뒤, 나는 또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1년 전의 나보다는 가벼운 걸음을 걸을 수 있을까. 미리 알 수 있는 건 없으니 가봐야 한다. 당장 오늘 저녁, 라파즈가 어떤 모습일지도 모르는 한 사람일 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