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따님의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
트라우마 치료 : 어린 시절 상처받은 나에게 편지 쓰기
똑같은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더 많은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다. 누구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말에 나는 상처 입고 어쩔 땐 마구 화가 나기도 한다. 이는 불안이 높은 사람으로, 자신이 정한 틀을 벗어나면 굉장한 불편감을 느끼고 더 위험하고 부정적으로 감지한다고 한다. 또는 기질적으로 사회적 민감성을 높게 타고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예민하고 까다로워서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난 엄마로부터 어렸을 때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예민하다는 말을 엄마는 나에게 했다. 내가 선천적으로 사회적 민감성이 높게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자라면서 불안이 높아져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 이는 과거에 겪은 상처가 잠재의식에 저장되어 있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한다. 난 사실 이 책에서 이 단어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전쟁 후 병사들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이런 경우에도 적용되는구나 싶었다. 트라우마, 내 속에 깊이 내재된 충격과 수치심이 비슷한 상황을 만나 더 예민해지고 더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렇게 트라우마가 심할 땐 '어린 시절 나에게 편지 쓰기' 방법을 추천한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그 상처들을 하나씩 조곤조곤 읊어가며 어린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당시 내가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어떤 반응을 했는지, 주변인의 반응은 어땠는지 등을 상세하게 기록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나를 위로해 준다. "정말 힘들었겠다. 넌 충분히 슬퍼해도 돼 그럴 만 해." 이렇게 어린 시절의 나와 다시 조우하며 감정 정리를 하면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어 트라우마가 조금씩 치유되는 것이다. 내가 우울증에 걸린 후 이 과정을 본능적으로 나도 모르게 해왔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상처받았던 기억을 끄집어내어 부모님에게 말한 일, 브런치에 나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고백한 일. 이후로 내 우울증은 많이 호전된 것이 사실이고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예전처럼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은 전보다 덜 해졌다.
나에게 친절해지는 연습
나는 인생을 갈아 넣으면서 살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중학교 때에는 매일 새벽까지 공부했고 고등학교 때에는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아픈 와중에도 쉬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대학교 때에는 과탑을 놓치지 않았으며 그 와중에도 주말에는 항상 아르바이트를 했다. 졸업 후엔 대학원을 1년 동안 다니며 명절에도 쉬지 못했으며 대학원 중퇴 후에는 바로 취업 준비를 하며 열심히 면접을 보러 다니고 거의 두 달 만에 취업을 했다. 취업 이후에는 회사 내에서 열정적으로 일을 했고 회사 밖에서는 제2의 직업을 꿈꾸며 여러 가지를 배우러 다녔다. 결혼도 하고 부동산 공부를 한다며 주말에는 스터디와 임장을 갔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쉬지 않고 달려온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우울증에 걸려버렸다.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으면 나의 이런 상황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항상 난 나를 채찍질하면서 살았다. 더 잘해야지, 더 노력해야지, 더 벌어야지, 더 잘돼야지 등등. 마지막에 퇴사를 하면서 내가 자주 했던 말이 있다. "10년 일했으면 1년 정도는 쉬어도 괜찮잖아." 이건 거의 자기 암시에 가까웠다. '남들은 안 쉬고 계속 일 하는데 나는 왜 쉬어야 되는데? 남들처럼 그냥 계속 참고 다녀,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다 힘들어.' 사실은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했고 괴로웠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은 나의 쉼과 재도약을 적극 지지하고 받아주는 쪽으로 발전했다. 매일 아침 거울 속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넌 잘하고 있어. 넌 잘할 거야. 난 너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사랑해."라고 여러 번 말한다. 거울 속 내 모습을 이렇게 똑바로 본 것도 내 생애 처음이다. 자기혐오가 있어 거울을 거의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나를 지지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그렇게 해줄까. 그냥 우울증에 걸린 내 모습, 퇴사한 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고 사랑해 주자. 그렇다고 나르시시스트처럼 내가 제일 잘났다는 것이 아니다. 우울증 환자들은 보통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혐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고귀하게 생각해야 타인도 나를 존중해 준다. 내가 나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면 그것이 높은 자존감으로 형성되어 타인에게도 나만의 아우라가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미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내가 이렇게 나를 채찍질을 하며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만 했던 것일까. 나처럼 자기혐오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길 어려워한다. 그래서 거울도 자주 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왜 나는 이렇게 나를 마주하기 어려운 것일까. 보통 자아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은 청소년기에 찾기 시작하여 나이가 들면서 어느 정도 확립되고 정착된다. 하지만 한국의 청소년들은 자아정체성을 찾기에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중에서도 기특하게도 일찍부터 사유를 통해 자아정체성을 찾는 아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러기엔 강압적인 성장 환경에서 자라왔고 자아정체성을 고민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20대 중반에 다다라서야 자아정체성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단단하고 떳떳한 나로 채워진 느낌 없이 불안정하고 공허하며 쓸쓸하고 허전합니다.
불안정하고 공허하고 쓸쓸하고 허전함. 내가 줄곧 느꼈던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나를 채찍질하고 자꾸 뭘 배우고 정신없이 일하고 바쁜 것이다.
나는 훌륭하고 멋지지 않으면 환영받을 수 없으니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능력자가 아니면 수용될 수 없으니까 열심히 했던 거죠.
나의 존재만으로는 사회와 타인에게 수용되기 어렵다는 생각이 무의식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사회에 수용되기 위해서는 계속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정체성을 행동과 존재로 대조해서 설명한다고 한다. 정체성을 행동으로만 느끼는 사람은 계속 일하고 노력하여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고 한다. 그래야 사랑받고 수용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능력이 없어지거나 그 '무엇'이 되지 못하면 나 자신을 혐오하고 깊은 자괴감, 무력감에 빠져 우울증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존재로 정체성을 느끼는 사람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한다. 내가 항상 꼿꼿이 서 있기 때문에 정체성이 항상 충만하다. 나에게 어떤 변화가 와도 '나는 나'로써 단단하고 빛이 난다. 우리는 존재로 정체성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난 꼭 그 '무엇'이 되어야만 내가 될 수 있는가, 아니면 나만으로도 내가 될 수 있는가를 계속 질문하여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만으로 내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충분히 우울하고 충분히 아파야 해요.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단단해지고 넓어지거든요.
지난 연재에서 다뤘던 일본 의사의 <고마워 우울증>이라는 책과 비슷하게 이 책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울은 때로는 참 고마운 정서예요. 우울해야 자신을 볼 수 있거든요. 우울감이 있어야 브레이크를 걸 수 있어요.
브레이크 없이 채찍질하며 쉼 없이 달려왔던 나의 인생에 브레이크를 걸어 준 우울증에게 이제 아주 약간은 고맙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울증을 공부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발전했다. 우울하지 않았다면 돌아보지 않았을 나의 정체성과 나의 인생과 나의 가치관. 우울증으로 인해 충분히 아파하고 괴로워한 탓에 나의 일생을 돌아보고 사유하고 진정한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진짜 나를 돌봐주고 이제 다시는 나를 무시하지 않고 나를 몰아붙이지 않는 인생을 조금이나마 살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의 밖이 아닌 내 속에 있는 내 마음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 것 같다.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지? 가 아닌, 내가 무엇을 좋아하지? 무엇을 하고 싶지? 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 그 '무엇'을 잡으려고 하면 오히려 놓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난 무엇을 잡기 위해서 그렇게 살아왔던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 마음이 가는 것을 하다 보면 자연히 얻을 것은 얻어질 것이다. 웃따님이 13만 유튜버가 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적어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했으니까 후회는 없다.
가치화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누군가를 조건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유한하다. 예를 들면 '나는 우리 남편이 돈이 많아서 좋아.'라고 하는 것은 남편이 돈이 없어지면 끝나버린다. 근데 '가치화'하면 그 사람을 왜 좋아하는지 이유가 없다. 그냥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난 사실 남편을 가치화한 지 오래되었다. 남편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이유는 그냥 없었다.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고 고귀한 존재였다. 그만큼 나에게는 소중한 존재가 된 지 오래다. 그게 '가치화'라는 것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반면 '나' 자신에 대해서는 가치화하지 못했었다. 어쩌다 보니 자기혐오가 생겼다. 나는 몸이 아파서 별로였고 내 직장도 별로였고 돈도 생각만큼 많이 벌지 못해서 별로였다. 그냥 다 별로였다. 나는 나를 좋아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쩌면 우울증의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나를 어떻게 가치화할 수 있을까요? 참 역설적이게도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닐 때 나는 전부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우주의 먼지만도 못한 미미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내가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도 아니고 꼭 뭔갈 이뤄야 하는 존재도 아니다. 그냥 태어났으니까 사는 존재이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닐 때 나는 전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결국 '나'인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나 자체로 내가 되어야 스스로를 '가치화'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나를 지지하고 사랑해 주고 존중해 주고 고귀하게 생각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나 스스로를 '가치화'한 것이다. 아직은 어렵지만 이것도 훈련이 필요하고 계속 사유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래야 존재 자체로의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자세의 기초가 된다.
힘을 빼고 유연하게
나는 항상 인생에 힘을 주고 살았던 것 같다. 무엇이든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다. 1년 뒤, 5년 뒤, 10년 뒤를 계획하면서 살았다. 나에 대한 중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만 안심할 수 있었다. 반대로 힘을 주지 않고 사는 인생은 유연하지만 중심이 단단하다.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살다가 조금이라도 내 계획에 어긋나면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인생을 흘러가듯이 유연하게 살면 조금 삐끗하더라도 '그럴 수 있지'하고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30대 후반인 나는 100세 인생에서 그리 많은 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내 뜻대로 되는 건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무리 내 미래를 설계해 봤자 당장 내일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고 내가 세운 계획대로 잘 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내 마음도 수시로 바뀐다. 그냥 그때그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면 그만인 인생이 아닐까. 힘을 빼고 그냥 부유하듯이 사는 것이다.
힘을 빼면 진짜 중요한 게 보여요. 일단은 내가 중요합니다. 나의 즐거움과 보람, 재미, 의미 등이요.
나는 <다크호스>라는 책을 읽고 내가 충족감을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지, 그 감정은 무엇을 함으로써 느끼게 되는지 등을 난생처음으로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소소한 감정에 처음으로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난 사람들을 돕는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소개하고 설득하는 걸 잘하며 내가 소개한 걸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기분이 좋았다. 또 다양한 생각을 나누는 것도 좋아한다. 돈보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좋다. 조용한 장소를 좋아하고 사람이 붐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과의 갈등, 대결 구도가 정말 싫다. 어떠한 정보를 찾는 것에 능숙하다. 의미 없는 일은 싫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 대 사람으로 겉치레가 아닌 진심을 나누고 싶다.' 등등. 내가 충족감을 느끼는 것을 메모장에 쭉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것저것 '직장'이 아닌 '직업'을 통해 하나씩 실현해 보고 있는 중이다. 지금 직업을 통해 실현되지 않으면 다른 직업으로 전향할 생각도 물론 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내가 나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반드시 가야 하는 한 길만 있었다면 이제는 이 길도 있고 저 길도 있다.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로 가면 된다. 인생이 유연해지니까 심각하게 생각할 일도 별로 없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덕분에 우울증도 많이 호전되었다. 결국은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문제였던 것이다. 인생은 어차피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다. 그냥 부유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살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복잡할 것이 없다. 힘을 빼고 유연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웃따님과 나는 참 많은 것이 닮았다. 어렸을 적 트라우마나 완벽주의적 성격, 자기혐오 등등. 그 '무엇'이 되고자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온 것도 비슷하다. 그래서 더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우울증을 앓으면서 다섯 번이나 자살시도를 했고 결국 정신병동 입원까지 했었던 웃따님. 지금은 많이 호전되었지만 현재진행형으로 우울증을 지나 보내고 있는 웃따님을 응원하며 나 또한 우울증을 극복하지 말고, 이겨내지도 말고 그냥 잘 흘려보내자라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