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선생님의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고마운 세상에 살고 있다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선생님께서는 만물에 감사해하는 마음이 많으시다는 점이었다. 전에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에서 회복탄력성을 높이려면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읽었다. 이처럼 우울증 회복이나 긍정적 마음가짐을 가지는 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임을 알 수 있다. 김형석 선생님은 일상 속에서 항상 이를 실천하고 계시니 이렇게 건강히 오랫동안 좋아하는 일을 하시며 사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모두가 한 가지 일로 아흔아홉 가지 은혜에 보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 다 보답하면서 살 수 있을까!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 바 없다.
원래 내 성격은 시니컬하다며 쿨한 척하고 세상에 불평불만만 가득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불평불만은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발전이 있고 내가 행복해짐을 또 한 번 마음에 되새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그대로 남을 대접하라
요즘 서점에 가면 데일 카네기의 무슨무슨론이라는 책이 한 섹션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 책은 현대 사회생활에서 구성원들 간의 보이지 않는 세력 다툼, 눈치 싸움 등에서 고상하게 이기는 방법에 대해 저술하고 있다. 난 솔직히 <인간관계론>이라는 책을 예전에 읽어보았지만 그다지 인상 깊지 않았다. 내가 그 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첫 번째, 인간관계에 대해 계산적, 전투적으로 저술하고 있어 거부감이 든다. 두 번째, 회사 생활에서나 쓰일법한 금방 바닥이 드러날 것 같은 진심이 담기지 않은 관계에 대해 저술하고 있어서이다. 회사 내에서 얄팍한 전술을 써서라도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봐도 괜찮겠다.
김형석 선생님은 그보다 좀 더 원론적인 인간관계에 대해 저술하신다. 많은 이야기가 책에 담겨 있지만 내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문장은 이것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그대로 남을 대접하라.' 모든 인간이 상대에게 이 문장을 실천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유토피아가 될 것인가. 자신을 개차반으로 취급하길 원한다면 상대에게도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얼마나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문장인지 나는 이 문장 그대로를 내 생활에 실천하기 시작했다. 내가 고귀하게 대접받고 싶기에 남들을 고귀하게 대접하기 시작하였다. 그랬더니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진 느낌이다. 물론 안타깝게도 나에게 욕을 하는 사람에게는 똑같이 욕을 하지만 내가 더 발전한다면 그들에게 연민과 측은의 태도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취미를 가져라
우리나라 사람에게 "취미가 뭔가요?"라고 물어보면 8할은 '넷플릭스 시청' 또는 '게임'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2할은 '독서'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선생님께서는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지성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의무사항이라서 그다지 취미가 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시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취미란 무엇일까.
주어진 직업과 본업이 있으면서도 인간적 균형과 조화로운 성장을 위해 한 가지씩 관심 있는 분야를 개척해 보라는 뜻이다.
만약 내가 육체적인 직업을 가졌다면 정신적인 취미를 가지고 반대라면 육체적인 취미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신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본업을 후배에게 물려줄 때가 됐을 때 노년까지 계속해서 즐길 수 있는 취미라면 값진 생활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요즘 다독을 하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지성인의 의무사항은 다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취미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글쓰기'이다. 원래부터 블로그에 글을 자주 쓰던 시기가 있기는 했으나 이렇게 브런치에 작가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꾸준히 하는 것은 몇 달 되지 않았다. 그런데 글쓰기를 하고나서부터 내 삶이 더 즐거워졌고 정신적으로 윤택해졌음은 분명하다.
나의 전 직업은 기계어로 컴퓨터와 씨름하는 하루종일 앉아있는 직업이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한 건물에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과 매일같이 부딪히고 기싸움을 하는 그런 일터였다. 나는 그것에 환멸과 염증을 느꼈고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았다. 퇴사 후의 직업을 고심한 끝에 일부러 개인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바깥 활동이 자주 있는 직업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것에 만족한다. 전보다 활동량이 많아져서 허리가 아파 다리까지 저렸던 허리 디스크 증상도 많이 없어졌고 체력도 많이 좋아졌다. 이제 육체적인 직업을 가졌으니 대신 글쓰기라는 취미 활동으로 정신적인 부분을 채우고 있다. 이 정도면 직업과 취미의 밸런스도 맞고 앞으로도 쭉 노년까지 이어나갈 수 있으니 아주 바람직한 취미를 가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게다가 글쓰기는 나의 삶에 활력을 주고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이토록 좋은 취미가 또 있을까 싶다. 앞으로도 글쓰기를 꾸준히 해서 선생님의 말씀처럼 값진 인생을 살아보려고 한다.
인생을 취미와 학문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얼마나 고귀한가! 조용히 그러나 즐겁게, 그러면서도 값진 인생을 산다는 것이 바로 그런 면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삶의 완성으로 가는 길
책의 말미에는 선생님의 죽음에 관한 깊은 성찰이 담겨있다. 내가 한창 우울증이 심했을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 덕분에 죽음의 진정한 의미와 언제 어떻게 죽어야 좋은 죽음일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삶은 죽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완성으로 가는 것이다. 죽음은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완결 지어 남게 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가능해진다.
선생님께서는 죽음을 완성으로 가는 것이며 우리 삶의 완결 지어 남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셨다. 그럼 도대체 어떤 삶을 완성시켜야 하며 완결 지어 남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 즐거움과 행복의 기본 조건은 일을 할 수 있음이다. 청장년기에는 모르지만 늙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일이다. 일 없는 노년기는 자신과 이웃을 위해서도 반가운 것이 못 된다.
선생님은 행복한 삶에 있어서 일의 중요성을 말하신다. 본인께서 여태껏 일을 하시면서 살아오셨기 때문에 그 중함에 대해서도 더 잘 아실 것이다. 난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내가 존경하는 여러 선생님들께서는 항상 내 일을 사랑하는 것의 중요함에 대해 설파하신다. 늙어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인생이 또 있을까. 이렇게 산다면 죽음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나는 정말 행복하게 살았고 후회는 없다'라고 유언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김형석 선생님의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은 선생님의 목가적인 삶과 종교 정신의 실천을 잘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기꺼이 행복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가짐은 정말 본받아 마땅하다.
선생님 덕분에 세상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되었으며 내 행복을 위한 길의 방향성을 확실히 알았다. 선생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책을 통해 널리 알려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나도 선생님처럼 오래도록 건강하고 일을 하며 이웃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나눠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아니,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