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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봄 Jan 28. 2024

하찮은 상담심리사의 사적인 일기 _ 다섯 번째 기록

성장하기

요즘은 범죄심리학부터 MBTI까지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내가 전공을 바꿀 때만 해도

그리 인지도가 높은 학문은 아니었다.

그땐 미술치료, 놀이치료 등등 아동의 심리치료가 대중화되어 가고 '상담을 받으러 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은 줄어들던 그런 시기였다.


상담심리사가 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난 석사과정과 함께 수련을 받고 자격증 시험을 친 케이스다.


그렇다. 상담심리사가 되려면 수련과정이 필수다.

난 수련을 받으면서 논문도 함께 썼다. 숨 쉴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해야 할 일들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는 혼나고 까이는 일이다. 우스개 소리 같겠지만 정말로 혼나고 까이는 일이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것 같다.

대학원 수업에서 이론을 배운다면 수련은 실전이랄까.

하지만 상담을 많이 하게 된다기보다 주로 내담자가 처음 내방했을 때 하게 되는 접수상담이나 심리검사를 해석하는 해석상담을 주로 했던 듯하다.

그리고 이 모든 배움은 슈퍼비전을 통해 '자기 분석'을 하게 한다.


상담자에게 미해결 된 문제가 많으면 이는 내담자에게 투사되어 제대로 된 상담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담심리사들은 끊임없이 슈퍼비전을 받고 자기를 분석하여, 질 좋은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나의 슈퍼비전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미해결 이슈는  '성인남성'였다.


큰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성인 남성에게 위축되고 위협감을 느끼는 것, 그게 말투든 목소리든 체구든...

큰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성인 남성을 만날 때면 난 스물한 살의 가을, 그 장례식장에서 3일 내내 울었던 그때의 아이로 돌아갔다.

물론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으므로 이를 병리적으로 볼 순 없지만 다양한 내담자를 만나야 하는 상담자로서는 극복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꽤나 많은 내담자들이 큰아버지를 연상케 했다. 나는 꽤나 미세한 부분까지도 큰아버지와 비슷한 부분을 찾아낸던 것이다.


참 신기하게도

우리 과의 학과장님의 외형이 큰아버지를 매우 닮아있었다.

대학원에 입학해 첫인사 자리에서 교수님을 보고는 온몸이 얼었던 기억이 난다. 딱히 잘 못 한 것도 없는데 혼이 날까 봐 무서웠고 조교일을 하면서 교수님의 전화를 받거나 찾아뵙는 게 무척이나 힘들었다.


대학원 수업 중 '집단상담'에서 난 이 이슈를 오픈하고 한 학기 수업 내내 이 이슈에 대해 다루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 보고자 지도교수님으로 그 교수님께 요청을 드렸고, 그분은 내 지도교수님이 되었다.


논문을 쓰는 1년 동안 핸드폰에 교수님 성함이 뜰 때마다, 교수님 연구실을 올라갈 때마다, 마주 앉아 혼나고 까일 때마다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했다.

교수님이 내 의견을 물어도 조리 있게 대답을 하지 못했고 내가 하고자 하는 연구 주제를 설득하는 것도 어려웠다.

어차피 논문을 쓴다는 것은 교수님들한테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깨지는 일인 것을.



그러던 중 집단상담 수업이 끝나가고 논문도 막바지에 다 달았을 무렵 지도교수님께 그간의 일을 말씀드렸다. 내가 왜 교수님께 지도교수님이 되어 달라고 요청을 드렸는지.


교수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허허허 웃으셨다.

그리곤 '그랬어? 고생했네'라고만 하셨다.

 

얼굴은 큰아버지인데 웃는다.

나를 다독거려 주며 웃는다.

이 사람은 큰아버지가 아니다.

우리 가족을 해치지 않는다......


그리고 집단상담 마지막 날 나는 말했다.

'다시 보니 별로 닮은 것 같지도 않더라고요'




그제야 알았다.
결국 난 성인 남성에게서 큰아버지와 닮은 점을 '찾아내야만' 비로소 안전하다고 느낀 것이었다.

그래야 전투태세를 갖추고 그때처럼 무방비로 당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지금은 어떨까.

집단상담의 효과로 드라마틱하게 변화됐을까?

그럼 좋았겠지만 난 여전히 큰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성인 남성이 불편하다. 변화된 점은 공포스럽고 위협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불편하다는 것.


불편한 것은 치워버리면 된다.

말 그래도 불편한 것이지 그것이 날 위협하지 않는다.


우리 가족은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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