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경의 마음에도 작은 그림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성훈이 갑자기 감정적으로 변할 때마다 나경은 혼란스러웠다. 그를 이해하는 게 점점 어려워졌다. 몇 시간 전까진 웃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신을 밀어내고 감정이 사라진 것처럼 구는 성훈 때문에 나경은 답답했다.
나경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아니면 이 사람이 너무 힘든 걸까…? 나랑 안 맞는 건 아닐까?”
안정형인 나경에게 성훈의 감정 기복은 받아들이기에 어려웠다. 나경은 그를 만나는 과정에서 확실히 힘들다고 느꼈다. 때론 상처받기도 했다. 하지만 나경은 여전히 그의 곁에 머물러주었다.
어느 순간, 성훈은 스스로 깨달았다.
“이 사람은 떠나는 사람이 아니구나.”
그녀는 그를 고치려 하지 않았고, 그저 그가 흔들릴 때 들어주고, 기다려주고, 필요한 말만 했다. 나경 역시 성훈을 통해 배웠다. 감정이란 건 늘 일정할 수 없으며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때로는 기다림이고, 때로는 경계를 세우는 용기라는 것을 말이다.
성훈는 나경과 함께 있으면서 처음으로 감정이 흔들려도 괜찮다는 경험을 했다. 그건 그에게는 거의 기적 같은 감정이었다. 나경도 성훈를 통해 자신의 감정적 여유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며 ‘나도 힘들 때 말해도 되는 구나’를 배웠다. 그들의 연애는 완벽하지 않았고, 둘 다 여러 번 삐걱거렸다. 하지만 둘은 그 속에서 서로의 결핍과 가능성을 천천히 보듬어가고 있었다.
안정형과 혼돈형의 사랑은 언뜻 보면 정반대의 사람들이 만난 것처럼 보인다. 한 사람은 다정하고 느리고 안정적이고, 한 사람은 흔들리고 갑작스럽고 마음의 결이 예측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둘의 만남은 종종 서로의 세계를 넓히는 특별한 사랑이 된다.
혼돈형에게 안정형은 처음 경험해 보는 안전한 사랑이 된다. 감정이 흔들려도 떠나지 않고, 갑자기 불안해져도 이해하려고 하고,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버벅댈 때조차 조용히 옆에 머물러주는 사람이 안정형 애착 유형의 사람이다.
그 안정감은 혼돈형에게 엄청난 경험이다. 흔들려도 괜찮다는 말이 처음으로 현실이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안정형에게 혼돈형은 감정의 깊이와 인간의 복잡함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늘 평온하게만 흐르던 감정의 세계에 새로운 색을 더해주고,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던 상처, 누군가의 내면의 폭풍을 처음으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 관계가 오래가기 위해서는 우선, 안정형 유형이 소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혼돈형 상대를 만났을 때 안정형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내가 이 사람을 안정시켜줄 수 있을 거야’라는 과도한 책임감이다. 하지만 안정형의 역할은 상대의 감정을 받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경계를 세우고 현실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안정형은 다음과 같은 것을 잘 지켜야 한다.
1) 감정 폭풍에 끌려 들어가지 않기
2) 상대의 두려움을 대신 해결해 주려 하지 않기
3) “난 여기 있어. 하지만 너의 감정은 네 영역이야.”라고 알려주기
4) 자기 시간을 절대 포기하지 않기
5) 상대가 불안할 때도 지나친 희생을 하지 않기
안정형이 이런 경계를 잃는 순간 혼돈형은 더 불안해지고, 안정형은 금방 지치게 된다.
혼돈형 역시 연습해야 할 것이 있다. 혼돈형의 감정은 파도가 아니라 폭풍에 가깝다. 하지만 오래가는 관계는 감정이 아니라 행동의 안정성에 달려있다.
혼돈형이 연습할 것은 다음과 같다.
1) 감정이 요동칠 때 바로 행동하지 않기
2) 잠수, 갑작스러운 차단, 폭발적 감정 표현을 멈추기
3) “지금 무섭다.” “불안하다.”를 말로 표현하기
4) 감정 변화를 설명해 주는 연습
5) 상대의 안정감을 공격하는 말 피하기
6) 정서 조절을 위한 개인적인 루틴 가지기(산책, 휴식, 감정을 정리하는 노트 등)
혼돈형은 “사랑하는데 왜 무섭지?”라는 양가감정을 느끼고, 그걸 통제하지 못해 흔들리는데, 그걸 말로 표현하는 법만 익혀도 관계가 훨씬 안정된다. 안정형은 충분히 오래 머물 수 있는 유형이지만 혼돈형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안정형이 모든 걸 받아내는 구조라면 안정형도 결국 이렇게 느낀다.
“내가 이 사람의 감정을 대신 짊어지고 있구나… 이건 건강한 관계가 아니야.”
그리고 떠난다.
안정형과 혼돈형의 조합은 서로를 구원하는 관계도 될 수 있고 서로를 소진하는 관계도 될 수 있다.
차이는 단 하나다. 둘 다 자기 감정을 성숙하게 다루려는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