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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현 Sep 04. 2022

피신 몰리토 파텔에게.

얀 마텔, <파이 이야기>

<Life of pi> (2013)

살아감의,

다양한 방식에 대하여



 살면서 몇 번을 반복해서 마주치게 되는 작품이 있다. 흘려보냈던 누군가가 어느새 다시 나를 마주하게 되는 일처럼, 이 소설이 그랬다. 몇 번을 적어도 여전히 전하지 못한 말이 남는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온전히 떠나보내지 못했던 것만 같은 부채감이 계속 맴돌았다. 해결하지 못한 감정, 그 위화감이 나를 이끌었다. 어느새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틈새에 다시 빠져들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다. 순간에 대한 동물적 집착과 집념, 그리고 지나버린 시간을 아름답게 추억하고자 하는 노력이 아름다워 보일 뿐이다. 그러나 한 소년의 인생사를 관통한 <파이 이야기>는 '아름답다'라는 수식어 외 다른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웠으니까.


 망망대해에서 신을 부르짖던 소년이, 허기와 외로움으로 지친 영혼으로 호랑이 한 마리를 사랑하였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이별과 함께 막을 내렸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로. 그렇다면 그가 베푼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애초에 ‘사랑’이라는 관계가 성립 가능한 만남이었을까. 우리는 소설을 통해 종을 초월한 사랑의 성립 가능성을 엿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인생사에 대한 냉철한 관조를 시도할 수 있다.


사랑한다.
- 리처드 파커에게


 파이의 생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존재만으로 무시무시한 벵갈 호랑이를 ‘사랑하였다’고 표현한 그의 외침이 공허하게 들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기막힌 이야기 속에서 그는 분명 그 호랑이를 사랑하였고, 그것이 쌍방의 생존을 위한 것이든 일종의 교감이 이루어진 것이든 이는 그 자체로 너무나 가치 있는 사건이다.


 그렇다. 이 생존기의 모체는 어쨌든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를 떠나보내는 일은 다양한 모습을 갖는다. 만남과 이별을 상대와 공유했더라도, 각자의 것이 다른 법이다. 내게는 죽도록 힘든 일이, 상대에겐 자연스러울 수도 있는 것이다. 만남의 숭고함을 떠나서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과정이다. 그 이후의 삶이다. 만남이 내게 안겨준 것이 추억이라면, 그것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혹은 내게 남긴 것이 어떤 가르침에 대한 것이라면 이 또한 내가 안고 살아가야 할 흔적일 것이다.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의 만남이 파이에게 안겨준 것은 생명력이다. 생사가 오가는, 극적인 상황 속에서 움켜쥔 생명력. 이제 파이는 그것을 붙들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고통스럽고, 끔찍하고, 무서운 일을 함께 겪으면서 날 살게 했던 리처드 파커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내 삶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리처드 파커가 당신에게 작별하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과 나눈 추억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는 이미 당신의 삶에 녹아들어 있다. 당신은 그와 함께 살아남았고, 그 생존의 경험이 당신이 사랑하는 현재의 삶으로 이끈 것이다.


 절망이 맹수보다 훨씬 무섭다는 깨달음, 게으른 희망을 품는 과오, 인간은 살인을 포함한 무슨 일이든 익숙해질  있다는 사실에 대한 경계 등. 비록 다수가 잔인하고 두려운 경험이었지만 당신은  모든 것을 껴안았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 살아남아 현재의 삶을 지탱하고 있으므로  것이다. 생존 이후의 , 당신이 걸어야 했던 작은 문은 비교적 쉽다고 하지 않았던가. 당신의 삶을 위협할 가장  폭풍우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 천천히 삶을 음미하길 바란다.


 소설 밖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을 파이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내 삶도 흐르고 있다. 그러나 당신의 회상과 함께, 나 또한 잠시 멈추고 싶었던 이유들은 ‘이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놓아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여있었던 시간들을 뒤돌아, 사람들 틈으로 나오게 되면서 만나게 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했다. 그래서 잃는 일이 아팠다. 파이가 그랬듯이, 작별 인사를 망친 일이 내게도 상처로 남아있다. 당신의 말이 맞다. 서투른 작별을 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것이 나의 잘못이든, 상대의 잘못이든 아무것도 아닌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일을 알맞게 마무리 짓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만 놓아버릴 수 있으니까. 당신이 놓지 못했던 것들을 나도 놓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이 말했듯이, 삶은 보내는 과정이다. 눈물을 머금었겠지만 당신은 결국 리처드 파커를 흘려보냈을 것이다. 그래서 담담히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삶은 내가 원하는 모양과 모습대로 흘러갈 수 없고, 모두에게 같은 모습으로 기억될 수 없다.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인공인,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를 곱씹고 되돌아보아 비로소 그 다음을 창조해내는 일은 살기 위해 필요하다. 그 생명력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게 반추한 이야기와 이어진 삶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길 원한다.


 피신 몰리토 파텔, 당신에게 고맙다. 그리고 당신이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 이안, <Life of pi> (2013)

- 얀 마텔, <파이 이야기>, 작가정신(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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