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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현 Sep 17. 2022

체념(諦念)

단어와 감정

@kylefromthenorth_, Unplash

#사람 #존재 #기제


1.

 누군가 나를 각자의 언어로 무참히 살해해도 별 수 없다, 그렇게 여겼던 날이 있다. 그것은, 사랑받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했던 현실에 대한 방어 기제 때문이 아니다. 비록 지쳤을지라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너머의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나는 결단코 모든 이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없다. 당연히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타인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었던 노력을,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우스워질지언정 그것은 나다운 것이니까.


 그저 나와 타인들 사이에 중간지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사슴이나 토끼가 맹수와도 나누어 쓸 수 있는, 숲 속의 고요한 호수처럼 말이다. 서로를 위해 각자의 야성을 내려놓은 공간이, 평화와 안정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2.

 이제껏 나의 야성은, 타인을 '흑과 백'으로 나누는 공격 기제였다. 나를 비껴가는 이들과, 그들로 인한 소음에 늘 부딪쳤다. 판단하고, 낙인찍으며 심연에 나만을 남겼다. 그러자, 어느새 심연이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가 나의 공허를, 공허의 이유를, 진실을 묻는다.


 늘 안식에 이르지 못했던 것은 내가 키웠던 그의 존재로 인함이다. 내려놓지 못했던 지독한 검열 때문이다. 왜 세상을 떠보는 고문관처럼 굴었나. 늘 흠뻑 젖어들지 않았던 것은 타인과 내가 다르다는, 자만의 발로였나. 무엇이었던 중요치 않다.


 변하지 않는 진실은, 나 또한 온전하지 않은 한낱 인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내가 '한낱'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홀로 존재한다면 상처도 흠도, 혹은 그 어떤 따뜻한 온기도 찾아볼 수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3.

 그래서 이 깨달음은 가치가 있다. 언제나 지금처럼 사람들 틈에서 다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당신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어떤 깨달음에 대하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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