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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Apr 05. 2021

극장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

영화 [자산어보] 리뷰

정말 오랜만에 극장을 방문하여 관람을 했던 [자산어보]는 이준익 감독의 특징이 돋보이는 영화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느껴진 가장 큰 장점은 흑백으로 제작한 명확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고 이번에서는 감상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은 딱 하나입니다. 누군가에게 추천할만한 영화인지 그것으로 이야기를 하는 편인데, [자산어보]는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는 맛이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유배를 가게 된 정약전의 이야기가 주가 되는 영화인데, 분명 정약전은 유배를 온 것이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휴가를 온 듯한, 힐링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넓게 펼쳐진 바다와 자연들이 어우러지는 집 그리고 여러 바다 생물들이 재미를 주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촬영입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촬영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것이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런 촬영을 더욱 빛나게 하는 프로덕션 디자인까지. 확실히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봤을 때, 그런 요소들이 온전히 느껴질 그런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이 너무나도 아름답기에 오히려 흑백인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촬영에 신경을 썼다는 이야기를 하면 영화를 가볍게 보는 분들에게는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간단하게는 피사체를 앵글의 어디에 위치시키는 가, 더 나아가서는 움직임을 통한 영화의 분위기 형성을 이뤄내기도 합니다. 특히나 글씨는 쓰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런 장면을 효과적으로 잘 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런 내용을 자세히 모르더라도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시선으로 보면 영화가 다소 길게 느껴질 여지도 있습니다. 하나의 에피소드나 시퀀스를 일반적인 길이보다 조금 더 늘였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실 이 부분은 편집 과정에서 연출자의 선택입니다. 분명 이준익 감독 또한 영화의 일부분에서 조금 늘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겁니다. 그럼에도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이죠. 이는 모든 감독들에 숙명처럼 다가오는 선택의 순간 중 하나입니다. 영화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서 조금 빠른 컷 편집을 하게 된다면 인물의 감정 및 서사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즉, 지루함과 충분한 설명 사이에서 그 농도를 잘 조절하는 것이 감독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자산어보]는 이준익 감독의 노련미가 상당히 돋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늘어진다고 하기는 하지만 아주 많이 늘어지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느껴질 여지가 있을 정도에서 다른 이야기의 전환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짧은 시간에 인물의 감정과 서사를 완벽하게 설명한다면 가장 좋을 것이지만 사람의 감정은 기름에 불 붙이듯 갑자기 끓어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물을 끓이는 과정처럼 서서히 형성이 된다는 것이죠. 즉, 관객들의 감정적인 공감을 이끄는 요소 중에 하나가 바로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지루할 수 있다는 여지가 있다는 이 말은 다르게 표현한다면 인물의 감정에 스며들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부여하는 일이며, 이는 관객들이 인물을 잘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나름의 배려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 영화를 집에서 본다면 건너뛰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극장에서는 온전히 감독의 의도대로 시간의 흐름을 맞이해야 하기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을 관객들의 호흡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죠. 극장에 입장한 관객들은 자신의 두 시간을 온전히 감독에게 맡기는 것이기에 감독은 그것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관객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겁니다. 

[자산어보]는 그런 만족감이 드는 영화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배우의 연기는 온전히 배우의 능력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는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위치에 어떤 사람을 배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인데, 이것은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배우에게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가,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는 영화에 대한 기대감에도 영향을 끼치겠지만 배우들에게 맞는 옷을 입힌다는 개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를 펼칠 수 있는 환경도 조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아이들의 놀이를 예를 들어본다면 주차장에서 드레스를 입혀놓고 아이들에게 놀라고 한다면, 제대로 놀 수 있을까요? 그럴 부모님은 없으시겠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라보는 부모님조차 불안한 마음이 먼저일 겁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제대로 놀기 위해서는 놀이터와 편한 복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는 배우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배우에게 맞는 역할 배정해주고, 배우가 자신만의 연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영화 내적으로는 공감이 가능한 스토리와 외적으로는 긴밀한 커뮤니케이션과 촬영장 환경 통제가 그것일 겁니다. 물론 [자산어보]에 등장한 거의 모든 배우들이 상당한 연기력을 보여주는 배우들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그런 환경 자체를 잘 조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인물들 간의 케미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 인물들의 캐릭터가 확실하다 보니, 어떤 인물들을 붙여놓아도 상당히 흥미로운 시너지가 발휘됩니다. 거기에 배우의 연기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연출도 한몫을 합니다. 배우들이 연기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최대한 영화 외적인 요소는 배제하는 모습입니다. 거기에 흑백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이 면이 아닌 선이 강조된다는 것인데, 이 선들이 배우들의 표정과 윤곽 및 주름 등 인물의 감정을 보여주는 요소에 잘 적용되어 영화를 보는 내내 연기를 보는 맛이 있는 그런 영화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당시 사회의 시대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영화가 말하는 이야기들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부분은 격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흑산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창대는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인물입니다. 정약전은 평생을 학문에 정진해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약전이 창대의 선생이 되어서 창대에게 가르침을 줄 것 같지만 영화는 그런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애초에 [자산어보]라는 제목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창대의 지식이 더 중요한 영화라는 것이죠. 약전이 바다 생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조선은 성리학을 주된 이념으로 삼은 나라입니다. 성리학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배운 자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학문이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죠. 성리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약전은 흑산의 유배 생활을 통해서 그런 학문적인 것이 백성들의 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물고기를 더 잡는 방법이 중요하지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사람의 마음이 어떤 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죠. 이렇게 약전이 ‘자산어보’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에 매진하는 실학에 가까운 태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누군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장인 정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창대는 스스로 배움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창대에게는 물고기와 관련된 지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지식이죠. 현재의 창대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창대보다 빨리 시작한 사람과의 간극을 줄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기에 자신만의 분야를 구축한다는 것이죠. 현재는 그런 분야가 인정을 받는 분위기지만 이런 분위기가 생겨난 것도 고작 10년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지식인들이 돈을 버는 방법은 가만히 앉아서 백성들이 내는 세금을 착취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실질적으로 재화를 만드는 백성들이고, 지식인들은 배웠다는 이유로 그들의 위에서 그들 착복하는 것 이외에는 크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 즉, 학문을 공부한 지식인들은 그저 성공을 위한 지식일 뿐이었고, 그를 뽐내는 것에만 급급한 사회였고 그 지식을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 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양반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현대 사회의 대한민국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분야가 다를 뿐이지 모든 사람들은 각자 분야에서는 지식인이라는 이야기가 도출됩니다. 그리고 그런 지식인이 되는 것조차 신분과 성별 등에 의해서 제한을 받던 조선시대의 이야기를 통해서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뽐낼 수 있는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죠. 

[자산어보]는 흑산을 하나의 사회로 보고 있습니다. 그저 바닷일을 하며 먹고사는 작은 사회에 깨어있는 한 명의 인물이 등장함에 있어서, 변화하는 흑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리고 이는 흔히 말하는 지식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도록 만드는 작용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을 영화는 못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언택트 시대에 극장의 필요성을 어필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커다란 화면과 빵빵한 스피커의 스펙을 온전히 활용하는 그런 영화라 볼 수는 없지만, 극장이라는 공간이 오로지 큰 스크린과 좋은 스피커만이 아닌 극장이라는 환경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영화임과 동시에, 영화를 보는 맛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그런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영화를 볼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런 고민이 무색할 만큼 상당히 만족하면서 봤습니다. 만약 집에서 봤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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