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번다는 것의 의미
우리는 왜 돈을 버는 걸까.
나는 이 질문을 가끔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리고 그 답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늘 머무른다.
과거에는 열심히 일하면 집을 살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조금 늦게 출발하더라도 10년, 길면 20년쯤 꾸준히 일하면 내 집 마련이 가능하리라는 기대가 사회 전체에 깔려 있었다. 그 희망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다.
더불어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강했다. 회사에 희생하면 언젠가는 보상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며 흔히 말하는 ‘딸랑딸랑’ 아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요구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내쳐지는 것도 결국 그들이었다.
오랜 기간 회사를 위해 헌신했던 중년들이 필요 없어지자 자리에서 밀려났고, 먹고살기 위해 자영업에 뛰어드는 일이 흔해졌다. 그렇게 퇴사 후 치킨집이라는 씁쓸한 농담도 생겨났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지금의 젊은 세대는 더 이상 회사를 의지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충성하기보다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 나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가, 나는 이것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다. 그래서 즉각적인 보상을 원하고, 능력에 따라 보상이 돌아오는 걸 공정이라 여긴다. 미래에 언젠가 성장할 것이라는 희망 대신, 지금 내가 노력한 만큼 돌려받는 현실적인 보상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게 젊은 세대에게는 나를 챙기기도 벅찬 상황이 생기곤 한다. 연인이나 친구까지도 포기한 채,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까지 웅크리고 버티는 것이다. ‘자리 잡으면 연애해야지, 결혼해야지’라고 마음먹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실제로 연애와 결혼을 하는 비중이 과거보다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 또한 공감이 되고, 안타깝기도 하다. 나 역시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고, 안정이 되어야 다른 누군가를 챙길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결정사를 통해서 어느 정도 검증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가성비의 5년, 약속의 10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로를 배신하고, 신뢰하지 못해 의심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현실도 그렇다. 나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한편으로는 이런 문제들을 고위 공직자들이 과연 알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사실 이런 것들만 제대로 해결돼도, 연애와 결혼 문제, 더 나아가 ‘그냥 쉬었음’ 청년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인식의 변화가 생긴다. 나부터도 어릴 적에는 아이들이 그저 시끄럽고 때만 쓰는 빌런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그 모습이 점점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자녀에 대한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런 시선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면, 연애에 대한 긍정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즉,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도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가족을 위한 삶. 그런 마음이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를 위한 일이라면 포기하고 싶을 때 일을 내려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일을 해야 누군가가 행복해질 수 있고, 그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곧 나의 행복이 될 수 있다.
또 누군가는 가족의 행복,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회사를 포기하기도 한다. 과거보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지만, 동시에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분명해졌다. 그래서 나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왜 돈을 버는가? 분명히 나의 행복,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행복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필수 조건이 아닐뿐더러, 돈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행복과 함께하는 삶을 꿈꾼다. 그리고 그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데 돈이라는 존재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즉, 현대에 와서 돈을 번다는 것은 필수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선택지로 작용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이상의 부를 쌓는 것보다는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나 혼자만을 위한 시간에 투자하기도 한다. 결국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알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시간이다. 돈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치이지만, 시간은 자연 혹은 신이 만들어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시간이다. 내가 무언가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가가 나의 인생을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다. 다시 한번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돈을 버는가? 내가 원하는 곳에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서 돈을 번다는 대답이 가능할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이유로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어떤 일이든 계기와 동기 부여가 중요하다. 좋은 계기를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아직 나에게는 그런 행운이 오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계기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답은 잘 모르겠다. 다만 무작정 계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든다.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는 말처럼, 그 기회가 왔을 때 내가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결국 중요한 건 그 준비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돈은 삶의 목적이 아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곳에 시간을 쓰기 위해 필요한 조건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