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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극이 던지는 질문

영화 [살인자 리포트] 리뷰

by 따따시


영화 <살인자 리포트>라는 제목은 마치 다큐멘터리나 범죄 재현 프로그램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실제 스크린에서 만나는 작품은 단순한 범죄극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심리극에 훨씬 더 가깝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심리와 도덕적 갈등을 전면에 폭로한다. 관객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들의 속마음을 추적하게 되며, 이야기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인터뷰라는 장치

이야기는 연쇄살인마이자 정신과 의사인 이영훈이 기자 백선주에게 인터뷰를 자청하면서 시작된다. “기자님이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면 한 명을 죽이겠다”는 협박 같은 제안은 관객을 곧장 도덕적 딜레마 한가운데로 내몬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것은 살인자의 행적과 내면, 그리고 그를 마주한 기자의 심경 변화다. 영화는 마치 살인자의 자서전 같은 ‘리포트’를 펼쳐 보이며, 관객에게도 그 이야기에 휘말리도록 강요한다. 기자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는 단순한 과정을 반복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대화가 점점 더 위험한 긴장감을 조성하며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스릴러와의 차별성

보통의 한국 스릴러가 범인의 정체나 예상치 못한 반전에 집중한다면, <살인자 리포트>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다. 범인은 이미 드러난 상태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관객이 붙잡는 질문은 “누가 했는가?”가 아니라 “왜 그렇게 되었는가?”가 된다. 이러한 질문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관객을 따라다닌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초반부에 심어둔 복선들이 치밀하게 이어지며, 단순히 충격을 노린 반전이 아니라 설득력 있는 흐름으로 결말을 구축한다. 덕분에 관객은 순간적인 쾌감이 아니라, 과정 전체에 걸쳐 차곡차곡 쌓이는 긴장과 이해를 경험한다.


겉과 속의 괴리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인터뷰’라는 형식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서사 장치처럼 보이지만, 결국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핵심적 도구로 기능한다. 과거의 패턴이 현재에도 반복될 수 있다는 공포, 아직 벌어지지 않은 사건이 눈앞에서 일어날 것만 같은 서스펜스가 인터뷰를 통해 형성된다. 이 장치는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관객이 사건의 실체와 인물의 본질을 동시에 꿰뚫어 보게 만드는 창이다. 인터뷰는 기록이자 증언이고, 동시에 현재를 위협하는 경고로 작동한다.

진짜 의도를 감춘 두 사람이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려는 과정은 심리극으로서 날카롭게 묘사된다. 때로는 탐문과 조사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은밀한 심리전처럼 흘러가기도 한다. 질문과 대답, 그 너머에서 드러나는 표정과 연출들은 관객에게 심리 액션 영화 같은 인상을 남긴다. 겉으로는 차분하게 이어지는 대화이지만, 그 안에서는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고 또 속이려는 순간들이 반복되며, 작은 대사의 뉘앙스 하나에도 극적 긴장이 스민다.

영화가 끊임없이 드러내는 핵심 테마는 ‘겉과 속의 괴리’다. 인물들은 차분한 표정 뒤에 다른 속내를 숨기고, 진심을 은폐한 채 얄팍한 계산을 드러낸다. 겉으로는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전혀 다른 갈등이 끓어오른다. 그리고 그 괴리를 알지 못했던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결국 분노로 귀결된다. <살인자 리포트>는 이러한 과정을 집요하게 드러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나는 과연 타인의 내면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한다. 이 질문은 단순히 등장인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영화를 바라보는 우리 자신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된다.


배우들의 연기

이 모든 긴장과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은 배우들의 연기다. 이미 캐스팅 단계에서 ‘연기 대결’이 될 것이라 예상됐지만, 조여정과 정성일은 그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두 배우는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캐릭터를 맡아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도 치밀한 감정을 담아낸다. 대사의 흐름과 감정의 결을 정교하게 살려내며, 단순한 대화 장면조차 파국적 긴장으로 채운다. 특히 큰 스크린에서는 배우들의 눈빛이나 작은 호흡까지도 선명하게 포착되어, 관객은 두 인물의 심리전에 더 깊숙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 블록버스터만이 극장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밀도 높은 연기와 긴장감은 외부와 차단된 극장이라는 공간에서야 비로소 온전히 전달된다.


마지막 질문

영화의 마지막은 결국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누군가의 손에 피가 묻어야만 지킬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과연 법과 금기가 여전히 눈과 귀에 들어올까? 그러나 그 선택은 또 다른 파국을 불러올 수 있음을 동시에 경고한다. <살인자 리포트>는 어떤 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 각자에게 그 무거운 질문을 고스란히 남긴다.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에도 그 질문은 쉽게 잊히지 않고,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당신이라면, 그 앞에서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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