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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고요 Mar 20. 2023

사치스러운 그 분과 브런치

너무 자연스러워서 좋아하는 줄도 모르고 당연하게 해왔던 것

-그거예요. 사치.

앞으로 사치스럽게 살려고요.


작년 가을쯤 이 분을 처음 만났다.

60대 여자 사람.

도서관 구석구석 살펴보는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분이구나. 여기에 자리를 틀지 고민하고 계시는구나.


-저 모임 저도 할 수 있나요?

책 고르는 모임 안내문을 가리켰다.

새책을 구입할 때마다 책 고르는 모임을 구성하고 회의를 한다. 참여자가 없어 관심 있어할 만한 분께 직접 안내를 드려도 대부분 부담스럽다고 손사래를 치신다. 그런데! 먼저 하고 싶다고 하시다니!

역시 내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책 고르는 모임.

사서인 나, 사회복지사, 이용자, 그리고 그분이 오셨다.

돌아가며 도서관에 구입하면 좋을만한 책과 주제를 편안하게 소개했다. 책을 나누는 일은 삶을 나누는 일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책 이야기를 나누며 그분의 일상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이제 다 컸어요. 나도 너무 바쁘게 살았고요.

여기 이사 오면서 한 가지 약속을 정했어요. 일주일에 딱 하루는 일 대신 책만 볼라고요.

오늘 같은 시간이 나한테는 사치예요. 사치 좀 부리려고요.


그렇게 그 분은 일주일에 한 번씩 오셔서 사치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가신다.

창가에 앉아 5시간씩 책만 보다 가신다.  




그 분과 나만 있던 날.

물을 많이 넣은 믹스 커피 한 잔을 건네드렸다.

언젠가 물을 많이 탄 믹스커피를 좋아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언제 같이 커피 마셔요.

그 분은 내게 커피 잘 마셨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티타임을 제안하셨다.


일주일 후 우리는 브런치 카페에 마주 앉았다.

그분은 시간이 넉넉하지 못한 나를 위해 커피와 파니니를 주문해 놓고 기다리셨다.


우리는 6인용에 가까운 4인용 테이블에 마주 앉아

2인분에 가까운 파니니를 각자 한 접시씩 먹었다.

그리고 함께 걸었다. 봄빛이 따뜻해서 겉옷을 벗었다.


도서관에 도착한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나는 카운터 안으로 들어왔고

그분은 창가 앞으로 갔다.

우리는 각자 할 일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들이 하나둘 떠올랐어.
너무 자연스러워서, 좋아하는 줄도 모르고 당연하게 해 왔던 것들
_<중요한 문제>(조원희/이야기숲) 중에서


그 분이 용기내어 부리는 '사치'는

내게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좋아하는 줄도 모르고 당연하게 해왔던 것'이다.

그 분을 볼 때마다 나의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감사한 마음이 스며든다.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ㅇㅇㅇ님, 도서관, 친구.


친구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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