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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고요 Mar 29. 2023

다시 책을 펼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린걸까.


도서관에 이용자가 없다. 학교가 끝났는데도 말이다.

창문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목련꽃과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인다.

도서관 문이 열렸다.


또각또각.

누가 신발을 신고 들어왔을까 인사를 하며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이용자는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목발에서 나는 소리였다.


-첫사랑에 관한 책 있나요? 청소년들이 보는 책으로요.

내 눈을 바라보는 한쪽 눈. 그 눈을 바라보았다.

-그럼요. 책 보실 분이 몇 살쯤 되었나요? 딸이 볼 책인가요?

-... 제가 볼 책인데요...


책을 볼 사람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한 질문이었다.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한쪽 눈이 불편해서였을까. 40대는 첫사랑에 관한 책을 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당연한 것을 낯설게 보자고 날마다 다짐하면서. 나는 아직도 제자리다.


-책을 본 지 너무 오래되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싶어서요.

-잠시 앉아서 기다리시겠어요?


나는 의자 하나를 빼놓고 청소년문학책꽂이로 갔다.

작년 이용자 설문조사에서 청소년자료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에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싶어 청소년 문학만 따로 빼서 책꽂이를 만들어 두었다. 청소년 몇 명이 자주 살펴보며 이용하곤 했다. 그 책꽂이가 생각났다. 당장 떠오르는 책이 없었는데 청소년 문학 책꽂이 앞에 서니 관련 책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표지를 한 십 대 여자사람이 주인공인 책 2권과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 두 권을 건네어드렸다. 이용자는 3권을 골라 내게 주었고 나는 대출처리를 한 뒤 다시 이용자에게 드렸다. 이용자는 가방에 책을 넣고 신발장 앞에 섰다. 나도 모르게 그 모습에 눈길이 갔다.


굽 높은 신발. 지퍼를 열고 입구를 열어 발을 넣어야 하는 구조였다.

이용자는 2개의 목발에 몸 한쪽을 의지하고 한 팔로 익숙한 듯 신발을 신으셨다.

시선을 거두고 얼른 내 자리로 돌아왔다. 또 놀러 오세요.  


또각또각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쯤,

다시 창문을 바라보았다.

봄바람에 목련꽃이 살랑거렸다.





다음 날, 또각또각 소리가 들렸다.

이용자는 다음 편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다행이다. 마음에 드셨나 보다.

안타깝게도 한 권은 대출 중, 한 권은 소장 중인 책이 아니었다.

자료 예약과 상호대차 방법을 알려드렸다.


이용자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도서관을 찾는다.

누구나 알 법한 고전 동화와 희망, 긍정의 단어가 가득한 제목의 책을 빌려가신다.

첫사랑에 관한 책은 더 이상 찾지 않으시지만 청소년문학책꽂이에서 한참 책을 살펴보신다.

가끔 지퍼가 잠기지 않을 만큼 과자를 가득 넣은 팩도 주고 가신다.


-배고프실 것 같아서요.

-저 이 과자 진짜 좋아해요. 잘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음 달, 새책을 구입한다.

지퍼팩 가득 담긴 과자만큼 봄날 감성을 닮은 책을 사고 싶다.

이용자가 자주 살피는 서가 주변에 잘 보이게 놓아두고 싶다.

봄날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게 꽃 뿐일까.


내 마음도 두근 두근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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