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는 어디일까요? ‘살기 좋다’라는 감정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이를 순위로 매긴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영국 이코노미스트 조사에 따르면 무려 7년 연속으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가 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이 도시가 속해 있는 나라는 오랜 기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민자들이 향했던 곳이면서 한동안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던 1순위 국가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남반구의 거대한 대륙 오스트레일리아의 유럽풍 도시 멜버른으로 떠나보겠습니다.
1.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어원은 '미지의 남방 대륙(Terra Australis)'입니다. 세계에서 6번째로 큰 이 대륙은 수천 년 전부터 살고 있던 원주민 어보리진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7세기 초 메르카토르 지도를 제작하며 항해 기술이 발달시켜 온 네덜란드인들에게 발견되며 '뉴 홀란드'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곧 쓸모없는 땅으로 인식되며 그로부터 200년 넘게 또다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그러다 18세기 후반 비로소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에 의해 동부 해안이 개척되며 유럽 문명이 이식되기 시작합니다.
네덜란드 지리학자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의 지도에 표시된 미지의 남방 대륙
오스트레일리아의 면적은 770만 km²로 대한민국의 약 77배에 달할 만큼 거대하지만 인구는 약 2500만으로 절반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만큼 인구밀도가 매우 낮다는 뜻인데요. 그 이유는 오스트레일리아 영토 대부분이 건조 기후의 불모지(outback)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오스트레일리아 인구 대부분은 온대 기후가 나타나는 동부 해안가에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적인 두 도시 시드니와 멜버른이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가로 질러 멜버른으로 가는 중. 가운데 건조 기후의 불모지 아웃백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수도는 인구가 가장 많아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도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를 시드니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사실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는 남동부 내륙에 위치한 캔버라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수도를 정할 당시 자연스럽게 가장 큰 두 도시 시드니와 멜버른이 경쟁하였습니다. 두 도시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고 결국 어부지리로 두 도시의 가운데 위치한 캔버라로 수도가 정해졌습니다. 캔버라는 우리나라의 세종시처럼 계획된 행정 도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유럽풍 도시 멜버른
그렇다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는 어디일까요? 대부분 오스트레일리아의 랜드마크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시드니를 떠올릴 텐데요. 의외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최대 도시는 멜버른입니다. 2021년 기준 멜버른의 인구는 487만 명으로 시드니에 비해 근소하게 앞섭니다. 멜버른은 오랜 기간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제적 중심지이자 최대도시였던 시드니에 비해 늦게 개발되었지만 1860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부터 폭발적으로 인구가 급증하며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특히 멜버른은 ‘남반구의 파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문화적 성장이 눈부셨습니다.
프린스 다리와 멜버른 도심의 모습
문화 도시라는 별명답게 멜버른의 구시가는 개척 초기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기차역인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이나 19세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세인트 폴 성당 앞을 걸으면 마치 유럽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반면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자유로운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겨진 그라피티 거리가 나옵니다. 호시 어레인 거리는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에서 도보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과거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어서 한국 관광객이 특히 많이 눈에 띕니다.
자유로운 예술가들의 그라피티 작품이 인상적인 호시 어레인 거리
19세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 폴 성당(좌)과 멜버른 시청 (우)
멜버른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그물망처럼 트램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총길이 250km, 26개에 달하는 노선, 1700여 개의 정류장의 어마어마한 규모의 트램은 도심 안팎을 촘촘히 연결하여 멜버른 시민들 뿐만 아니라 여행객들에게도 최적의 교통수단이 됩니다. 멜버른 트램의 또 다른 장점은 도시 중심부에서는 완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료 트램 구간에서는 교통카트나 승차권 없이 트램을 타고 도시의 주요 거점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무료 구역 안에 도시의 주요 명소가 몰려 있기 때문에 멜버른을 처음 방문한 여행객들에게 트램은 필수 교통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과 트램
3. 썸머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는 곳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는 우리가 살고 있는 북반구와는 계절이 정반대입니다. 우리에게 한여름인 8월이 이곳에서는 한겨울이고, 반대로 12월은 한여름입니다. 그 덕분에 멜버른에서는 이색적인 계절 여행을 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한여름 밤의 썸머 크리스마스입니다. 트램을 타고 멜버른의 중심가 플린더스 스트리트에 도착하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기 위한 많은 인파가 몰려있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은 여느 크리스마스 시즌의 도시와 비슷하지만 사람들의 가벼운 옷차림에서 여름의 공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나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화려한 불빛 속에서 평소 느끼지 못했던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즐겨봅니다.
'Merry Christmas'라는 글자와 반팔 옷차림의 사람들이 대조적인 모습
오스트레일리아는 거대한 국토의 면적 덕분에 위도대별로 다양한 기후가 나타납니다. 적도 부근에 위치한 도시 다윈은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는 열대 사바나 기후가 나타나고,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도시 퍼스는 여름이 뜨겁고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납니다. 반면 멜버른은 서안해양성 기후가 나타납니다. 서안 해양성 기후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의 영향으로 여름은 그다지 덥지 않고, 겨울도 별로 춥지 않은 기후입니다. 영국과 꼭 닮은 기후 때문에 많은 초기 이민자들이 멜버른을 선택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이후에도 멜버른의 온화한 기후 덕분에 많은 이민자들이 정착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멜버른은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알렉산드라 가든에서 바라본 멜버른 도심
멜버른의 중심에는 야라 강이 흐릅니다. 빼곡한 건물로 가득 찬 멜버른 다운타운의 남쪽에 위치한 프린스 다리를 건너면 알렉산드라 가든을 비롯하여 멜버른 파크, 야라 공원 등 다양한 규모의 정원과 공원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거대한 규모의 숲으로 가득 찬 초록색 공간은 야라 강 건너편에 우뚝 솟은 도심 속 건물들과 묘하게 어우러집니다. 온통 푸른 잔디와 우거진 나무숲 사이 걷다 보면 여행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입니다. 공원에 있는 아늑한 카페에 들러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스트레일리아 커피를 즐겨봅니다.
4. 조화가 필요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는 곧 이민의 역사입니다. 17세기 초 네덜란드인들에게 처음 발견된 이 거대한 대륙은 18세기 후반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척되었습니다. 현재 시드니에 해당하는 동부 해안으로 초기 정착한 사람들은 주로 런던의 범죄자들이었습니다. 영국은 산업 혁명 초기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서 경범죄자들이 다수 발생하여 수용할 공간이 부족해지자 새로 발견된 오스트레일리아를 일종의 유배지로 택한 것이죠. 그래서 오스트레일리아를 범죄자의 후손으로 칭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민자들은 곧 일반인들과 유럽인들로 확장되었습니다. 1900년대 이후 산업이 발달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 중국인을 비롯하여 수많은 아시아인들이 연쇄적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 결과 오스트레일리아는 더 이상 유럽계 백인이 주류인 국가라고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오스트레일리아
과거 오스트레일리아는 백인 이외의 인종 이민을 제한하고 차별하는 ‘백호주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넓은 영토에 비해 부족한 노동 인구와 그에 따라 점차 증가하는 유색 인종들의 발언권 증가로1970년대 이후 이민법이 개정되었습니다. 그 결과 더 많은 국가에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하였고, 1980년대에는 그 비율이 영국계 이민자의 비율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다문화 국가로 거주자의 50% 이상이 해외에서 태어났거나 부모가 해외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인구 500만 명의 멜버른은 이민자들의 도시답게 다양한 국적의 음식점들로 가득합니다. 유럽 풍 건물들 사이로 지나가는 트램을 바라보면서 베트남 현지만큼이나 맛있는 베트남 쌀국수의 맛을 느껴봅니다.
썸머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서두에서 밝혔듯이 '살기 좋다'라는 감정은 주관적이기에 순위를 매긴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멜버른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고 할까요. 넓은 영토에 비해 작은 인구, 소득이 높고 부의 재분배가 비교적 잘 이루어지는 사회적 제도,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온화한 기후 등 외부적인 조건은 많습니다. 또한 유럽의 흔적이 남아있는 도시 건축물들과 남반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계절 경험까지. 이런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멜버른이 살기 좋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조화롭게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는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화 시대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인종과 문화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더욱 중요합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혐오하고 배척하는 분위기는 결국 한 사회, 국가를 고립시키고 발전을 막습니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멜버른의 모습을 통해 살기 좋은 도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