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오스트라바 북 페스티벌
요즘 날씨, 봄이 한 발짝 다가왔다가 두 발짝 멀어지며 더디지만 나를 향해 조금씩 전진해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날들이다. 지난 주말에는 완연한 봄 날씨와 함께 소규모의 북 페스티벌이 오스트라바에서 열렸다.
규모는 작았지만 문화생활을 다양하게 할 수 없는 이곳에서 이런 행사는 무엇이라도 소중하기에 카메라를 손에 들고 집을 나섰다.
소규모 출판사는 물론 대형 서점 부스도 있어 다양한 체코 책들을 구경할 수 있었고, 할인까지 더해져서 꼼꼼하게 찾아본다면 원하는 책을 좋은 가격으로 살 수 있겠다 싶어 천천히 둘러보았다.
1933년 '어린이들을 위한 책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다'
Dášeňka 다센카라는 폭스테리어의 탄생부터 성장까지 함께 하는 귀여운 이야기들을 담은 책인데, 중간중간 귀여운 삽화와 다센카의 흑백 사진들이 함께 있어서 읽을 수 없어도 재미있는 책이다.
그 옛날 필름 카메라로 담은 반려견의 사진들이라니! 귀여우면서도 알 수 없는 애틋한 느낌으로 전해졌다.
도쿄에서 한창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을 때 매일 참새 방앗간처럼 들르던 헌책방에서 완벽하게 읽을 수는 없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레 요코의 에세이를 발견하는 대로 사 모았던 그때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그때 사모았던 것들 역시 대부분 귀여운 삽화가 그려진 책들이었는데, 도무지 읽을 수 없었던 것들을 언젠가는 읽을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기 마련이고 그래서 오늘도 나는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책들을 산다.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이 그림 같은 텍스트들이 의미를 가지고 나에게로 들어올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일본식 전통 제본(Japonska Vazba)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부스가 있어서 나도 참여해 봤다.
표지로 하고 싶은 종이를 두장 고르고 속지를 중간에 끼운 다음 송곳, 바늘, 실만 있으면 나만의 노트를 제본할 수 있는 간단한 방식이었다.
욕심을 내서 속지를 많이 끼웠더니 송곳으로 바늘구멍을 뚫기가 쉽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총으로 귀를 뚫어서 후회한 어린날처럼 사선으로 난 구멍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처음부터 다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잘못된 구멍을 뚫었다고 해도 오롯이 나의 것, 무엇이 되었건 나의 선택으로 잘못된 부분마저 고스란히 나와 함께 하는 것이다.
처음이라 서툴렀으나 다음번에는 분명히 더 예쁘고 실수 없이 만들 수 있으리라.
그리고 기승전 맥주, 어떤 행사든 맥주가 빠질 수 없는 여기는 체코이다.
북 페스티벌에서 크리미 한 폼이 예술적인 생맥주라니! 그것도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아닌 무거운 맥주잔을 고수한다! 진짜 맥주 부심만은 세계 제일이 아닐까?!
나는 체코 사람들의 이런 모습이 사랑스럽다. 맥주에는 진심인 모습.
체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 카렐 차페크.
1929년에 프라하 정원 애호가의 열두 달 계절별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이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알고 보니 한국에서도 얼마 전에 새로운 번역판이 나왔다고 한다.
동생인 요제프 차페크가 그려 넣은 재치 있는 일러스트 삽화 때문에 고전이지만 귀여운 느낌이 든다.
100년 전에 쓰인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정원의 일상과 인간의 삶에 대해 유머러스하고 다정하게 이야기한다.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
- 정원가의 열두 달
https://youtu.be/r6th_iRYlrI?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