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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ug 11. 2019

여행의 이유

서른 랩소디


베스트셀러인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만들어지는(?!) 베스트셀러가 많아서 큰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 읽기 잘했다.


‘김영하’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이 여행에,

그의 여행이 경험으로 녹아 있었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이 여행에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소설의 여러 플롯 중에 ‘추구의 플롯’이라는 것이 있단다.

추구의 플롯에 따라 잘 쓰인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외면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에 따라 여행에 나서지만, 여정 동안 자신도 잘 모르는 채 추구해왔던 내면적인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고 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 속 주인공은

어느 날 꿈을 꾸고 여행을 떠난다.

‘피라미드 아래 묻힌 보물을 찾는 것’이 그의 외면적 목표다.

고생스러운 여정 끝에 그는 보물을 찾지 못하고 돌아온다. 외면적 목표는 실패에 그쳤지만, 계획하지 않았던 ‘자아의 신화’를 이루게 된다. 내면적 목표를 이룬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발견하러’ 중국 여행을 떠난다.

오히려 그는 이 여행으로 중국에 대한 희망을 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상상과 달리 중국은 그에게 ‘사회주의의 희망’의 땅이 아니었다. 외면적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여행을 통해 이후 김영하 작가의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여행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믿음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나, 여행을 떠난 이상 여행자는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가게 된다’


기대를 가지고 떠나지만,

모든 기대가 무너질 수도 있는 것.  

여행이 매력적이면서도 두려운 이유다.


‘만약 상황에 맞게 내가 가진 믿음을 바꾸지 않고, 집착한다면 여행은 재난이 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 이야기를 인간관계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인간관계를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믿음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나, 관계를 맺은 이상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가게 된다'


나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 내 믿음을 바꾸게 된 일이 있었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통해 내 믿음을 바꾸게 된 일도 있었다.


그들과 함께 일하기로 결심하지 않았다면,

나의 작은 세계에서 안온하게 나 자신의 믿음을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함께 일하기 시작하고부터는

풍랑을 만난 배처럼 내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작은 세계의 옳고 그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날이 많았다.

그 여행을 통해 나는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갔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안온했을 내 세계는,

그를 만난 후에 온통 그 사람의 시간으로 흘러갔다.

나는 기꺼이 내 믿음들을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기대를 품고 일을 벌이고, 관계를 맺어왔지만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돌아왔다.


인간관계라는 여행에서 추구했던 외면적 목표들은 이루지 못했지만, 언제나 내가 기대하지 못했던 내면적 성장이 있었다.   

심지어 나의 믿음을 내려놓지 못해 ‘재난 같았던’ 인간관계 여행으로 내 인생의 항로가 미묘하게 바뀐 속에서도 깨달음은 있었다.


인간관계 여행 속에서 내가 알아낸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두렵지만 매력적인 이 여행을 포기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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