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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Nov 12. 2019

완벽한 서른

서른 랩소디

만약 누군가 나에게 ‘완벽주의자인가?’라고 물으면, 나는 ‘아니오’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완벽하지 못하니까.’


그런데 나의 이 생각에 모순이 있다.

질문은 ‘완벽하냐’가 아니라,

완벽주의냐’였기 때문이다.


나는 누가 봐도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잘 세우는 능력이 있다.

거의 일주일치 목표를 하루 안에 계획한다거나,

일 년 치 목표를 심심찮게 갈아엎는다.

마음은 이미 수천 권의 책을 읽고, 수십 권의 책을 썼다. 아마 계획대로 살았다면 한 몇 백 년 산 도인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생각만 하는, 머리만 큰, 서른 살 어린이다.   


나에게는 또 다른 능력이 있다.

바로 세상 모든 이유를 끌어와 자책하는 능력이다.

왜 오늘도 하늘에 반짝이는 저 별을 따오지 못했는지’ 정도의 수준으로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런 면에서 나는 완벽주의자다.

높은 이상을 세우고, 끊임없이 오늘을 채찍질한다.

물론 거의 89퍼센트가 생각으로 그치지만.

그럼 완벽주의보다는, ‘완벽 생각 주의’란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서른이 되니 압박감이 더 든다.

‘쟤네들은 잘하는데, 난 지금까지 뭘 한 거지?’

‘서른이나 되었는데, 아직 이것밖에 못하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지?’

‘아무래도 이번 생은 망한 것 같다’


더 능력 있고, 더 어린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한다.

괜히 스물아홉 살짜리도 부러워진다.

‘서른’이라는 숫자에는 꼭 완벽한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인간들 중에 과연 누가 완벽할까?

역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과연 누가 완벽했을까?

특히 서른에 완벽했던 인간은 몇 명이나 될까?


제국을 건설했던 수많은 왕들도,

‘절대적인 존재’라 믿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했던 진시황도 그저 모두 약간 힘이 센 인간일 뿐이었다.

심지어 서른까지 살지 못한 천재들도 많다.

(서른 살에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고싶다. 그런 사회가 바로 이상사회겠지?)


완벽을 향해 가는 것은 괜찮다.

그렇지만 완벽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병아리가 용이 되지 못했다고

바다 앞에서 내내 울고만 있다면 어떨까?


멋진 꿈이야 꾸어도 좋지만, 자책하며 인생을 보내기엔 너무 창창하지 않는가.


앞으로 나는 완존 주의자가 되겠다.

매 순간 나의 인생에 ‘완전하게 존재하는’ 완존 주의자.


완벽한 서른은 아닐지라도,

아직 나에게는 완존 한 서른을 보낼 수 있는

두 달의 기회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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