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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 Sep 19. 2022

행성으로 가는 주유소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린다. 차 안까지 풍기는 묵직한 기름 냄새를 잠시 코 안에 가둬본다. 

창 밖을 본다. 저녁 9시 반, 충청도 어느 국도의 풍경은 세상에서 가장 검정스러운 페인트를 부은 듯하다.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닌데. 밤은 겨울처럼 차가워진다. 뒷자리에 앉은 나는 최대한 편한 자세를 찾는다. 


건물의 천장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디를 가나 천장을 괜히 올려다본다. 나는 천장의 높이에 따라 나를 다르게 느낄 수 있다. 낮은 천장에선 내가 좀 더 선명해지고, 높은 천장 아래에선 머리 위의 공간만큼 내가 더 부풀어오른다. 그렇게 나는 천장에서 나의 존재감을 발견한다. 


주유소란 공간은 특이하다. 커다란 풍력발전기나 댐의 규모까진 아니지만, 사람이 열댓명 정도 서야 딛을 수 있을 만큼의 높은 천장엔 압도감이 있다. 파라솔같은 천장 아래에서 자동차들이 멈춰서고, 직원들은 의자에 앉아 믹스커피를 마신다. 어떻게 보면 무섭기까지 한 이 천장 아래에서 많은 일들이 진행된다. 그렇게 천장 밑엔 늘 일상이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비슷한 높이와 넓이를 가진, 필요한 자에게 필요한 만큼의 무언가를 제공하는 공간. 해가 쨍쨍한 날이면 더 높아보이고, 비가 오는 우울한 날이면 한층 더 낮아보이는 기묘함이 있는 공간. 출발지와 목적지를 물을 필요가 없는 이곳은 저장소에 가득찬 기름의 용량만큼 존중스러운 무관심으로 가득하다. 주유소 아래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구름처럼 그저 그렇게 어디론가 흘러가는 갈 채비를 하는 것.


밤의 주유소는 우주를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거장 같다. 각자의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의 연료를 충전하고 각기 다른 행성으로 흩어진다. 반갑게 찾아온 낯선 존재를 언제나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러나 마중과 배웅은 없는 주유소를 뒤로 하고 나의 행성을 찾아 시동을 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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