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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초보, 알프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스위스 스키장은 스케일이 다르다 

by 은달 Mar 17. 2025

스위스 하면 생각나는 것 중 하나는 당연 눈 덮인 산이다. 고도가 높은 산맥이 국가 전체에 자리잡고 있는 스위스에서는 설산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여름에도 3천 미터가 넘는 고도의 산 꼭대기는 눈이 쌓여 있으니, 파란 하늘과 절경을 이루어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심지어 이런 산이 스위스 어딜 가도 보인다. 이런 자연환경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겨울 스포츠가 발달했으리라는 짐작이 된다. 


그리고 스위스에서 가장 흔한 겨울 스포츠를 고르라면 단연 스키다. 주말 아침에 기차역에 가면 각자 스키를 들고 스키장에 가기 위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스키를 배우며,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스키 방학도 있다. 보통 2월 중순인데, 이 때는 모두가 스키장에 가서 스키 타는 걸 배운다고 한다. 이렇게 스키 친화적인 나라이니, 스위스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스키를 곧잘 타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모든 유럽 사람들이 스키를 잘 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옆나라 독일만 봐도 높은 산맥이 많지 않기 때문에 스키를 타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다. 보통 스키를 잘 타는 유럽 사람들 중 스위스인이 아닌 경우는 두 가지다. 가족들이 모두 스키를 타거나, 파트너(남편 혹은 아내)가 스키를 탈 줄 알아서 배우게 된 케이스이다. 사실 스키는 꽤나 비용이 많이 드는 스포츠다. 우선 장비 렌탈과 하루 리프트권 결제만 해도 몇십 만원이 기본이다. 스키를 배운 적이 없다면 무조건 강사에게 강습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 또한 꽤나 비싸다. 게다가 스키장 근처 호텔도 가격이 나가는 편이라 웬만큼 애호가가 아니면 즐기기 힘든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 어릴 때 한국 스키장에서 한두 번 강습을 받기는 했지만, 그 후 스키장을 간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내가 현재 기억하는 건 단지 'A자'를 만드는 것뿐. 반대로 남자친구는 할아버지 세대부터 스키를 탄 전통적인 스키어 집안이다. 두 살 때부터 스키를 배웠다고 하니 말 다했다. 매년 아버지와 함께 일주일씩 스키를 타러 갈 정도이니, 스키에 얼마나 진심인 집안인지가 느껴진다. 스위스에 살면서부터 스키를 한번쯤은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비용도 부담스럽고 도전하기가 두려워 미루고 있었는데 남자친구의 영향으로 인해 지난해부터 스위스에서 스키 타는 것을 도전하게 되었다.


작년 초 처음 스위스에서 스키를 탔을 때, 정말 대자연 속에서 별도의 안전 장치 없이 스키를 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울면서 내려왔던 기억이 난다. 호텔에 머물면서 3일 동안 스키를 타는 일정이었는데, 첫날은 정말 너무 무섭고 왜 재미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과거의 경험을 믿고 스키 강습을 받지 않은 것 또한 실수였다. 다행히 몸이 어느정도는 기억하는 건지, 마지막 날에는 나름 안정적으로 내려오기는 했지만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자니 죽을 맛이었다. 나의 첫 스위스 스키 여행은 그렇게 기억되었다.


그리고 찾아온 올해 스키 시즌. 남자친구는 시즌이 시작되기 몇 달 전부터 눈망울을 빛내며 이번 스키장은 어디로 갈지에 대해 계획했다. 나는 사실 내키지 않았지만(작년의 경험, 그리고 스키 사고가 났다는 많은 주위 사람들의 말 때문에), 솔직히 피하기에는 아까운 경험이기도 했다. 전세계 각지에서 스위스에 스키를 타러 일부러 찾아오는데, 기차로 2-3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사는 우리에게 스키는 매력적인 스포츠였다. 그리고 작년에 스키를 탔을 때 마지막 날에 아주 조오금 재미를 느꼈다. 어차피 스위스에 계속 살면 피하기 힘든 상황이니, 이번엔 조금 더 제대로 타보기로 결심하고 여행 계획을 승낙했다.




우리가 찾은 스키장은 Altesch Arena 라는 곳인데, 스위스 발레(Wallis) 주에 위치해 있다. 빙하(glacier)로 유명한 곳이라 사계절 관광객이 찾아온다. 우리도 가을에 이곳으로 등산을 간 적이 있는데, 고도가 높은 곳이라 블루베리가 잔뜩 있어 한가득 따왔던 기억이 있다. 스키장 지도를 봤을 때 가장 쉬운 난이도인 블루(blue) 가 많이 보이길래 이곳으로 선택했다. 


우리는 개인 스키가 없기 때문에 우선 스키를 렌탈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이곳 스키장의 케이블카에는 스키를 끼울 수 있게 케이블카 외부에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스키 리프트를 탈 수 있는 중간 마을이 나온다. 우리 호텔이 위치한 곳은 Fiesch 라는 마을이었고, 이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가면 Fiescheralp 라는 곳에 도착한다. 이곳은 많은 리프트가 모이는 곳으로, 여기서부터 스키를 타기 위한 리프트가 시작되는 곳이 된다. 

이런 식으로 케이블카에 스키를 끼우고 탑승한다


스키장 지도(출처: https://www.bergfex.com/aletsch-arena/panorama/) 


Fiescheralp 에 내려 다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 드디어 스키를 탈 수 있는 코스가 시작된다. 우리는 지도의 오른쪽 측면에 보이는 Fiesch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지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알프스의 스키장은 보통 여러 개의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처럼 짧은 코스를 반복해서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 아니다. 한 코스가 매우 길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키를 타며 이 마을 저 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다른 풍경을 구경하는 방식으로 즐긴다. 우리도 첫 날에는 맨 오른쪽 산맥 위주로 다니다가, 그다음 날에는 슬로프를 타고 Bettmeralp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 탔다. 비슷한 난이도에서 다양한 코스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듣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보면 분명 초급자 레벨인데 절벽을 내려가야 하는 수준이다. 내 옆 꼬꼬마 친구들이 아무 생각 없이 슝슝 내려가는 걸 보면 더욱 처참하다. 그들 옆에 선 나는 작년의 기억이 두려워 한참을 못 내려가고 있었다. 나의 문제는 s자 커브를 만들 수는 있지만 속도를 내기가 무서워 완만한 커브를 그리지 못하고 지그재그로만 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커브를 제대로 만드려면 속도가 어느 정도 나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다행히 남자친구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었다. 우선 스키를 산 경사와 평행하게 놓고 사선으로 내려오는 것을 연습했다. 숙련자가 되면 속력을 줄이기 위해 A자를 만들 필요가 전혀 없으며, 오직 커브의 바깥쪽에 위치한 다리에 힘을 주는 것으로 속력을 조절한다고 했다. 이곳에 올라온 이상 어떻게든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약간은 반 강제적으로 올바른 스키 자세를 취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커브를 돌 때 바깥 방향 무게중심에 집중하니 어느 정도는 수월하게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원체 빠른 속도감을 무서워하는 터라 일자로 가야 할 때는 마음속으로 백 번도 넘게 살아남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 같다. 


그렇게 블루 코스를 몇 번 더 내려오고 나서, 그가 레드 코스로 한번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자신이 보기에는 나의 자세가 지난번보다 훨씬 안정적이어졌으며, 슬로프를 보면 꼭 블루가 가장 쉬운 단계인 것도 아니라면서. 나도 그것에는 동의했다. 게다가 마을과 마을 사이를 이어주는 슬로프들은 주로 레드 코스였다. 자신을 믿고 좀더 도전해 보기로 했다. 


다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마주한 레드 코스는 경사가 더 가팔랐다. 하지만 내 선택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못 내려갈 순 없었다. 그래서 오로지 커브 만드는 데만 집중하기로 했다. 내 스키와 전방 10미터를 보고 빨간 s자 커브가 그려져 있는 것을 상상했다. 경사가 가파를수록 다리에 힘을 더 주고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열심히 내려오니 벌써 레드 코스가 끝나 있었다. 다행히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 


남들은 너무도 쉽게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스위스에서 무사히 스키를 타고 내려온 것이 자랑스러울 따름이었다. 내가 해냈다는 생각에 남모를 뿌듯함이 차올랐다. 이 맛에 스키 타는 건가? 원래 도전을 크게 두려워하지는 않는 나였지만, 운동신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에 몸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사실에 더 크게 감동했던 것 같다. 


우리의 스키 여행의 묘미는 당연히 피크닉이 한몫 한다. 얼마 전 컵라면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이후 등산할 때마다 라면을 챙겨가는데, 스키장에서 눈 구경하며 먹으니 더욱 꿀맛이었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으려 노력하는 각종 초콜릿과 당류도 오늘만큼은 허용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스포츠를 즐기고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다. 스위스 거주자로서의 장점을 최대한 누릴 수 있었다.  


설산 위에서 먹는 컵라면은 꿀맛이었다!


한국에서도 스위스에 방문하는 사람들 중 스키를 타는 것을 도전하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곳에서 스키 타는 것을 추천하는지 물어본다면, 개인의 실력에 따라 정말 다르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초보자이지만 운이 좋게도 지금까지 다치지 않고 잘 타고 다녔고, 두 번의 스키 경험이 쌓인 지금은 어느 정도 두려움 없이 스키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특별히 스키를 잘 타는 사람이 아니라면 강습 받기를 무조건 추천한다. 한국의 스키장과는 차원이 다른 스케일과 날씨 등 환경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스키를 탄 마지막 날은 정말 한 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뿌옇게 짙은 날이었다. 이런 날은 무조건 속도를 줄여 천천히 내려와야 한다. 상황이 많이 안 좋은 경우 스키 타기를 중단하기도 한다. 조금 흐린 정도가 아니라 앞이 그냥 하얗게만 보인다.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런 환경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라면 날씨를 반드시 확인하고 좋은 날을 골라 스키를 타기를 권장한다. 

정말 이 정도로 앞이 안 보인다




이번 스키 여행은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운동선수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스키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사라지게 해주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나에게 소중한 기억이다. 하지만 스키가 위험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절실히 느낀다. 누구나 즐기기 쉬운 스포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알프스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나로서는 스키 타기의 기회를 놓치기는 아쉽기에 매년 도전할 생각이다. 언젠가는 현지인들처럼 자유롭게 슬로프를 오가는 모습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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