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과학자 네트워킹 후기
우연히 좋은 기회가 생겨 최근 한인 과학자들과 네트워킹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주로 연구자들이 모이는 자리라 나를 제외한 거의 모두가 이공계열 박사 학위를 갖고 있거나 박사과정 중인 분들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학력자들만 모인 곳에 있어서 살짝 부담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걱정과는 다르게 다들 선하고 부드러운 분들이셔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느낀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의 연구에 대해 진심으로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본인의 일에 열정적이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눈빛이 반짝 빛났다. 한 분은 나와 같은 국가에 살고 계셔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을 보며 '아, 이런 사람이 박사 하고 교수 해야 하는구나' 라고 확실히 느꼈다. 로봇을 연구하신다는 그분은 실험할 때와 놀 때 크게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셨다. 진심으로 자신의 연구분야를 사랑하는 것이 느껴져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 분은 동유럽의 어느 국가에서 연구직을 하고 계셨는데, 한인이 많지 않은 곳이다. 유명한 대학도 별로 없고, 유럽에서도 급여가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그분은 본인의 포지션에 만족하며 생활하고 계신 듯했다. 정보가 거의 없었을 텐데, 연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낯선 나라에서 오랫동안 거주하고 계시는 것이 너무도 대단해 보였다. 동유럽에서 경제생활을 할 경우 사실은 한국보다도 급여가 높지 않을 텐데 말이다.
옆 나라인 독일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꽤 계셨다. 그 중 한 분께서 독일 연구원의 월급 체계에 대해 소개를 해 주셨는데, 세전과 세후의 차이가 너무 커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독일은 실제로 세율이 매우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유럽 전반적으로 세율이 높은 편이지만, 독일은 세전 연봉이 높은 편이라 그런지 그것이 매우 두드러진다. 독일인인 남자친구는 그것이 너무나도 싫어 독일을 떠난 사람 중 하나다. 가난하지는 않지만, 부자가 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다들 박사를 갖고 계신지라 박사과정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는데, 나 또한 박사과정을 고려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취리히에 유학 왔을 땐 그것이 장기 목표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석사 후 바로 박사과정을 시작할 수 없어 일자리를 찾아 현재 직장에 취직하게 된 케이스다. 연구자로서의 삶에 대해 오랫동안 진지하게 고민했고, 현재도 진행중인 고민이기에 그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 노력했다.
사실 아직 박사과정에 대한 꿈을 놓은 것은 아니다. 나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책으로 해결하려 하는 사람이고, 새로운 분야에 대해 배우고 이해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학구적인 편이다. 전공 분야에 대해 좀더 깊게 알아가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러나 이번 네트워킹 이후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그분들은 과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갖고 계신 분들이고, 나는 돈을 좆는 세속적인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돈 때문에 스위스에 정착한 것은 아니다. 우연히 내 분야에 걸맞는 회사가 나를 뽑아줬고, 그 덕에 지금까지 회사생활을 이어오고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 배우는 것도 많다. 실무 위주라 실제로 쓰이는 기술을 다룰 수 있어 좋다. 내가 세속적이라 느낀 이유는 '만약 내가 하고 싶은 연구가 스위스가 아닌 다른 국가에서 이루어진다면 나는 나라를 옮길 수 있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솔직히 쉽지 않을 것 같다. 오랜 직장생활은 아니지만 그동안의 경제생활을 통해서 돈이 주는 위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연구자를 포함해 이공계열 직군이 고연봉인 편이다. 금전적 여유가 생기면 나를 좀더 돌볼 수 있고, 선택지가 훨씬 많아지며,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달라진다. 삶의 어느 단계부터는 돈보다 시간이 더 귀중해지는데,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도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도 다른 문제다.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큰 과제다. 갖가지 고생을하며 익숙해진 국가를 떠나 다른 나라에 새롭게 정착한다는 것은 더더욱이나 힘이 든다. 나는 연구 하나만 보고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을 고려할 수 있을까. 그곳에 모인 분들은 이주의 가능성도 고려를 하고 계신 듯했다. 현재 거주하는 국가에 5년 이상 살고 계셨는데도 말이다.
무엇보다 복잡한 감정이 들었던 것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분들은 관심 분야가 확고하고 그것을 연구를 위한 최고의 환경을 찾아다니는 분들이었다. 나는 현재 직장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더 깊은 배움에 대한 열망도 있다. 관심 분야도 다양하다. 하지만 오로지 연구를 위해 나의 생활 수준을 낮추고 싶지는 않다. 내가 연구자에 적합한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다. 내 개인 시간을 쓰면서까지 연구만 하고 싶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돈도 여유롭게 벌 수 있는 환경을 찾기는 정말 쉽지 않다고 느낀다. 나뿐만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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