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들여다보고, 귀기울이고, 관심 가져주기
현재 함께하고 있는 남자친구와도 만난 지 2년 반이 되어간다.
누군가에게는 긴 시간, 또는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동안 했던 연애 중 가장 장기간이다. 그전에 사귀었던 사람들과는 이런저런 이유로 롱디를 했던 적이 꽤나 있었기에, 지금 남자친구만큼 가까이 일상을 공유하면서 연애를 하는 것은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우리는 지금까지 동안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가족을 알게 되고, 함께 살기로 결심하고, 두 번의 이사까지. 이곳저곳 여행도 많이 다녔다. 그래서 사귄 기간에 비해 굉장히 많은 것들을 함께했다고 느낀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서로를 다독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 덕에 지금까지 큰 싸움 없이 지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갈등이 쉽게 생길 수 있는 상황도 있었는데, 우리의 무던함 또는 배려로 그것을 잘 지나왔던 것 같다.
스위스에 온 지도 햇수로 5년이 넘어간다. 모국을 떠나 온 이곳에서 이렇게 오래도록 지내게 될 줄 몰랐지만, 이곳에서 미래 계획을 세우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지만, 그와 함께하고 있는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가끔은 믿기지 않는다. 서울의 좁은 집을 떠나 인구 14만의 한 소도시에서, 설산에 둘러싸인 나라에서, 밥벌이 해 먹고 살고 있다는 것이. 지구 반대편에서 온 다른 국적의 남자와 일상을 함께하고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
아침형 인간 체질 때문에 주말 아침에도 비교적 일찍 눈이 떠지는 날이면, 옆에서 그가 곤히 자고 있다. 가끔 그의 얼굴을 보며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린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았는데, 지금 이렇게 함께 누워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느낌. 서로 다른 곳을 보던 우리가 이제 같은 곳을 보며 걸어가고 있다는 것.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던 그는 이제 김치와 고추장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그는 야행성이며, 고기를 좋아하고, 외향적이지만 마냥 파티를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다.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지만, 의외로 특정 상황에서 스트레스 받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땐 나의 차분한 마음으로 그를 보듬어준다. 나는 평소에 걱정이 많지만, 막상 닥치면 냉철한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같이 살기 전까지만 해도 모르던 그의 모습들이지만, 이제는 나름 그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많아진 만큼, 연애 초기의 설렘과는 다른 느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반드시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서로를 잘 모를 때보다 쉽게 갈등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파악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정말 큰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일이니까.
도파민 터지는 연애 초기가 아니더라도, 지속적으로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식물을 기르는 것처럼 말이다. 매일 상태를 체크하고, 아픈 곳은 없는지 지켜봐주고, 관심이라는 양분으로 챙겨주어야 한다. 식물이 잘 자라기를 막연히 기대하기보다는 내가 이 식물의 예쁜 부분을 위주로 봐줘야 한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에서 더 잘 자라는 식물처럼, 변함없는 시선으로 상대방을 따뜻하게 바라봐 줄 줄 아는 것이 성숙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나는 개인적으로 최대한 나와 상대방의 '다름'에 대한 연습을 하고 있다. 식물이 저마다의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하는 생각을 상대방도 똑같이 하기를 바라지 않는 연습, 그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것은 비단 연인뿐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모든 관계에 해당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놀랍도록 마음이 편안해진다. 항상 마음에 새기려 노력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것만큼 소중한 것도 많지 않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좀더 아끼고 보듬어주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