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선택의 기로에서
불감증에 빠져 버린 것들
아빠라는 사람이 딸아이의 대입입시가 코 앞에 다가올 때까지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고 살아왔다.
딸아이가 아이의 엄마가 알아서 잘하고 있어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말로 핑계를 대기에 창피하고 미안할 만큼.
내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고 사실 두 사람 모두 잘하고 있었지만 누구나 그렇듯 모든 일들은 잘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흔들리기 마련이다.
수시를 앞두고 6개 지망 대학을 결정해야 하는 문제 앞에서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아빠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딸아이가 정리한 학교들을 보고 어디를 가야 할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최선과 최악의 상황을 판단하여 결정해 주는 것이고 무엇보다 그 결정에 딸아이가 만족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나라고 답을 가지고 있겠는가. 나는 맘 가는 대로 선택을 하기를 바랐고 설사 떨어진다 해도 손해 볼 건 없다는 것과 선택한 대학들이 괜찮은 이유를 이야기해 주는 것으로 딸아이가 안심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런 것 보다 아빠가 같이 봐주고 챙겨주는 것만으로 위안과 안정을 찾아갔다.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줘서 인지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이것이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만 그렇겠는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언제나 이런 상황에 놓이고 선택이라는 기로에 서게 된다. 이때 누군가 작은 말 한마디는 불안을 해소하고 안정이라는 감정으로 불안을 밀어 내게 한다.
누군가 힘들어하고 결정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해 주는 것만으로 그 힘듬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
우리는 늘 문제 앞에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대부분의 갈등은 차선을 생각하며 일어나게 되고 결정에 방해를 주게 되는데 너무 많은 차선을 둔다면 어떤 것이 최선인지 잃어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최선을 정했다면 나머지 차선들이 최선을 대체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비교하여 아닌 것들은 과감하게 버리고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이 되지 않는다면 주저하지 말고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너무 깊은 생각은 가끔 원하지 않던 길로 방향을 잡아 놓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