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한다.
덥수룩 해진 머리카락
바람이 불면 더 산발이 되어 버리는 머리카락.
또 한 달의 시간이 지나갔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40대까지도 흰머리가 거의 없었다.
쉰이 넘어서면서도 새치 정도만 있었는데
서너 해가 지나고
하얗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세월에 장사가 없구나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행복하게 살자고 약속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인가?
시간은 야속하게도 아내의 머리에도
흰 눈을 뿌리고 있다.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정말 많이 듣는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랬고
오랜 시간 같이 일하다 나이를 알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자랑 같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제 나이로 보이지 않은 것에 신경이 쓰이기도 했었다.
한 달 만에 찾은 미용실
원장의 말이 그 말들을 무색하게 했다.
한 달 만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흰 머리카락이 왜 이렇게 많아졌냐고
이제 염색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나는 그런가요?라고 태연하게 말을 했지만
한 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 파는 것처럼 아팠다.
어쩌면 이제 정상적인 궤도에 진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생 젊게 살아갈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살았나 보다.
갑자기 찾아온 무릎 통증도
점점 더 세상을 선명하게 보지 못하게 하는 노안도
늘어나는 흰머리와 속이 훤이 들여다 보이는 머리 속도
모두 인과응보의 결과이겠지만
이렇게 빠르게 젊음이 줄행낭을 칠 줄 몰랐다.
아직도 마음은 청춘인데…
아직 50대면 청춘이 아닌가?
새로운 인생길로 다시 출발하기에 좋은 청춘 아니었던가?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하나씩 다가오는 노화를
길을 막듯 막을 수는 없다는 우울감에
갑자기 소주가 당긴다.
갱년기가 찾아온 것일까?
아니면 지나갔는데 몰랐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진행 중인 것인가?
왠지 진행 중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변화에 감정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몰라도 주변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사춘기 같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자니 새삼 창피해진다.
이 나이에도 창피함이라는 감정은 아직 남아있나 보다.
인정해야지 어떻게 하겠는가?
지난 세월로 되돌아갈 수 없으니
내게 찾아온 이 세월과 친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안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고
하나둘씩 늘어나는 불편함은
불편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인정하며
흘러가는 세월을 벗 삼아 살아가야겠지.
갑자기 늘어 버린 흰 머리카락들이 마음을 휘휘 저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