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
가을을 향해 가고 있지만 아직 서울의 한 낮 기온은 34도까지 오르고 햇살은 여전히 따갑다. 뜨거워진 기온만큼이나 습도도 높다. 이럴 때 내게 비염이 찾아온다.
언젠가부터 민감해진 나의 코. 환경의 변화에 민감해졌고 변덕을 부리는 날씨 앞에서 항상 무릎을 꿇고 하루 종일 비염에 시달린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하나둘씩 몸에서는 이상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내는 오래전부터 비염을 달고 살았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그걸 코라고 달고 다녀?"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긴 세월을 같이 살아오면서 아내에게서 전염이 된 건지? 세월을 이기지 못한 것인지? 서로가 이런 것까지 닮아가며 비슷한 수준의 비염을 달고 살게 되었다.
내게 비염을 달고 살기가 시작하면서 아내는 내가 했던 말을 메아리로 돌려주듯 이야기했다. "그걸 코라고 달고 다녀?"
"어, 그러네"
딱히 할 말도 반박할 말도 없었다.
"당신 닮아가나 보네"
딸아이가 보고 있다가 한마디 더 거든다.
"천생연분이셔"
함께 살고 있는 환경이 문제인지? 정말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시들어가는 몸뚱이가 되어 버려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세월 탓이라면 난 열심히 살아온 죄 밖에 없는데 세월이 야속하다.
그러나 그 세월을 한탄해 봐야 무엇하겠는가? 비염이 찾아오면 약 잘 먹고 정상으로 돌아가기를 비는 수밖에 없다. 세상 일이 다 그렇다. 살다 보면 견디기 힘든 날도 찾아오지만 그 모든 것이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고 지나간다. 아등바등해 봐야 그 순간이 더 힘들어지고 고달파질 뿐이다. 그런가 보다. 어쩔 수 없지.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다가올 시간들에는 반복되지 않을 경험치로 쌓아가며 된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바람직한 태도이다. 비염이 찾아왔다고 강제로 떼어 버릴 수 없다. 한번 찾아온 비염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조용히 잠복하다 때가 되면 나타난다. 나타나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약을 먹거나. 그 순간에 할 수 것을 하면 된다. 적과의 동침. 때론 싫어도 불편해도 함께 해야 할 때가 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도시가 시골처럼 깨끗하고 맑은 공기로 가득해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