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Joseph's Church_동백 성요셉성당
스리랑카는 정말 가봐야 할 곳이 아직도 화수분 같지만, 교통여건 상 북부와 동부로의 여행은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올해 7월엔 출장으로 스리랑카 북부 주 킬리노치와 동부 트링코말리를 동시에 다녀왔다. 수도 콜롬보에서 북쪽으로 9시간 그리고 또 동쪽으로 6시간을 달리는 쉼 없는 여정이었다. 끝도 없이 나오는 군사 체크포인트 그리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에 모든 체력을 소진하고 막바지엔 끄덕이 인형처럼 매달려 갔다. 그리고 목적지 도착 직전 차창 밖으로 발견한 작은 성당 하나. 지친 나를 반짝 살아나게 한 마알간 얼굴의 성전은 조용하지만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창문에 매달려 “여기서 내려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성당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시 왔다. 6시간을 달려온 북동부 트링코말리. 스리랑카의 몰디브로 불리는 유명한 휴양지지만 도시는 생각보다 낡고 노후화되어 있다.. 하지만 상업화되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의 표정은 투명하게 살아있고 정감이 넘친다. 우선 도시 초입에 위치한 St. Mary 대성전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산토리니와 같은 청량한 외관에 감탄이 터져 나왔지만 굳게 닫혀있는 성전 내부. 북부 주는 워낙 날씨가 덥기 때문에 하루 중 해가 제일 강한 오후 12시에서 3시까지 문을 닫는데 깜빡한 것이다. 아쉬움은 접어두고 호텔에 도착해 간단히 짐부터 풀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여정의 가장 큰 갈망이었던 St. Joseph's Church로 달려갔다.
성당에는 일행 없이 나 홀로 다녀오기로 했다. 어떤 제약도 없이 오래 바라오던 곳에서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청명한 하늘 아래 이 마법 같은 공간은 요셉 성인의 품처럼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구글에는 시간이 나와 있지 않아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모든 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찬찬히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성당은 포르투갈 바로크 양식을 따르는 전면부를 가졌지만 성벽 뒤에는 바로 양철 지붕으로 이어진 소박한 형태를 하고 있다. 자연 속 한 폭의 수채화처럼 포근히 쌓인 평화로운 이 성당은 왜 그토록 강하게 나의 마음을 두드렸을까.
사실 성당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았던 건 금빛 천사들의 비호 아래 자리한 성 요셉 성인이었다. 나무 빛 외투를 입은 성인은 성전 심장에 놓여 있는데 색감과 구도가 안정적인 조화를 이룬다. 압도적인 규모나 그 어떤 화려한 장식도 없이도 오래 눈길을 사로잡는 이 성당의 신비는 무엇일까? 어쩐지 저 안으로 들어가면 오래 안전하게 보호받을 것만 같은 느낌. 내부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사람들이 서로 다른 모양의 신앙을 만들어 가고 있을까?!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은 물음표와 느낌표가 공존한다.
불이 꺼진 성전 내부부터 찬찬히 둘러보기로 했다.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낡은 의자엔 장궤 틀이 퐁당퐁당 놓여있다. 성전 벽면 일부는 페인트가 벗겨져 벽돌이 드러나 보이기도 하고 비가 들이치기라도 하면 물바다가 될 것 같은 구멍도 여럿 보인다. 하지만 성당 바닥과 성전 벽면에 놓인 성상엔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자신의 집처럼 언제나 성전 안을 쓸고 닦았을 신자들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다. 제단의 양 옆에는 성요셉상 그리고 마리아상이 모셔져 있었다. 불을 켜지 않아도 빛나는 성상의 존재감. 자신이 가꾸는 신앙에 대한 예의와 애정을 간직한 이 공간은 물적으로 부족할지 몰라도 영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성전의 왼편에는 성전의 정체성이 새겨져 있다. 벽면에는 성요셉 성인께 드리는 기도문이 적혀 있고 유리장 안에 잠자는 요셉상이 모셔져 있었다. 신부님이 직접 가꾸실 것 같은 작은 텃밭엔 이름 모를 식물들이 자라고, 성당 뒷마당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 기구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때마다 중요한 가톨릭 전례 행사가 있을 때면 쓰일 작은 상설 무대는 또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아이들이 직접 그린 듯한 배경, 높은 하늘이 수놓은 뭉게구름이 아지랑이처럼 내 마음을 타고 흐른다.
자꾸만 재미난 상상을 하게 되는 신기한 공간이다. 나의 작은 사진기 프레임 속엔 초록 잔디를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성전 뒤편에서 그런 아이들을 위해 놀이기구를 만드는 신부님, 나무 벤치에 앉아 기도하는 신자들이 담긴다. 그리고 공간을 가로지르는 맑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 속 떠들썩한 사람들 위로 성 요셉 성인이 모두를 축복하듯 환한 미소를 짓고 계신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특별한 성요셉 성당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친구들과 함께 에버랜드를 향해 가던 중 지하철 너머 산속에 폭 안겨 있는 성당하나를 발견했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생각만 했던 그 기억 속 성당을 이번엔 직접 찾았다. 신기하게도 이 성당도 성요셉을 주보성인으로 모시는 동백 성요셉 성당이다. 성요셉 성인은 언제나 강한 이끌림으로 나에게 손짓하신다.
스리랑카보단 성전의 규모는 훨씬 크지만 성전입구에 자리한 요셉 성인의 따사로운 미소가 나를 웃음 짓게 한다. 벽돌로 만들어져서일까 어쩐지 부드러운 곡선보다는 강인하고 무게감이 느껴지지만, 벽면을 가득 매운 스테인글라스의 서사들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아기자기한 이야기에 다정함이 묻어난다. 한 층 더 올라간 성가대 석에서 내려다본 성전 전면은 참으로 평화롭다. 아버지의 품에 머무는 시간은 언제나 나를 쉬게 한다.
그저 지나치지 않고 다시 찾아와 이곳에 머물게 해 주심에 그리고 또 다른 아버지의 성당을 찾아 이 은총을 내 안에 가득 담을 수 있음에 작은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성전에 남겨진 메시지를 찾고 서로의 감정을 교감할 수 있다는 건 작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신앙의 보호 아래 우리가 언제까지나 영혼의 떨림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매일의 작은 위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본다. 마음을 두고 이곳에 머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