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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Jul 13. 2022

보물은 내 안에 있다  

St. Mary's Church, Negombo

니곰보에 있는 수많은 성당 중 St. Mary 성당을 유달리 특별히 기억하는 건 단지 큰 규모와 주교좌성당이라는 상징성 때문 만은 아니다. 성당입구 분수대에 자리한 개구쟁이 천사들과 눈인사를 하고 마당으로 들어서면 투명한 빛깔의 성전이 싱긋 미소 짓고 있다. 신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은 대칭적 평면 그리고 돔 형태의 지붕 등 콜롬보 대교구 주교좌성당인 St. Lucia 대성당과 외관이 닮아 있는 듯 하지만, 유려한 곡선 속에 힘이 있고 어쩐지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성전 안에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우선 양쪽 회랑엔 열네 분의 입체적인 성인 조각상들이 자리한다. 많은 성당을 다니다 보니 이제 제법 많은 성인들이 보다 친숙하게 느껴지는데, 이젠 성당마다 수호성인들의 표정 그리고 손짓이 구현하는 영성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찬란한 빛을 길어 나르는 스테인글라스 그리고 그 빛이 쏟아져 빛나는 석상들도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만났던 성당과는 또 다른 압도적인 스케일과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끌어당긴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릴 것 같은 천사들
화려하지만 기품을 잃지 않은 성전 내부
성인들의 수호가 항상 함께

성전이 품은 5가지 보물


미색과 금빛으로 수 놓인 성전의 건축은 1874년 후반에 시작되어 1922년에 마칠 만큼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긴 인내심 끝에 탄생한 성당은 화려하지만 절제된 기품이 돋보이는 세련된 미학을 보여준다. 내부는 여느 유럽 성당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답다. 제단엔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을 담은 조각상, 한눈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가 서린 천장화, 별빛 조각 같은 스테인글라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중 그리스도의 삶을 현지 예술가의 눈으로 해석한 천장화는 오묘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놀랍게도 천장화는 N.S. Godamanne라는 불교 예술가를 통해 그려졌는데 마치 설화처럼 성경 속 이야기를 기록하여 종교를 넘어선 신앙적 포용과 관대함을 담고 있다.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을 상징하는 조각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펼쳐지는 이야기
스테인리스가 선물하는 빛을 내안에 가득 담기

성전 옆에는 가톨릭이 탄압받던 네덜란드 식민시대가 지나고 다시 종교적 자유를 되찾은 시대에 첫 주춧돌을 올렸던 Mission House가 있다. 한국에선 서울 대교구 앞에 위치한 사도회관 정도의 의미랄까? 지난 성탄절 너무도 아름답게 장식된 문 앞 성모님을 발견하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 앞에서 긴 기도를 드렸었다. 신기하게도 다시 돌아온 자리. 거짓말처럼 오늘은 문이 열리고 문 너머 빼꼼 모습을 드러낸 성모님이 보인다. 그리고 그 빛나는 얼굴을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었다. 그저 우연 일지 몰라도 나에겐 특별하고도 가슴 떨리는 응답 그리고 또다시 기억될 감사함이었다.

성탄의 성모님
다시 찾아 인사를 드렸고
활짝 문을 열어주셨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Mission House 옆에는 작은 지하 성전이 있다. 지난 방문 때는 보지 못했던 성광이 모셔져 있는 지하 공간이었는데  한 자매님이 기도를 하고 계신다. 그저 성당 곳곳에 감탄을 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에게 이곳에서 놓치지 말고 꼭 보야야 하는 것들을 알려주신다. 언어 제약으로 의사소통이 원활 친 않았지만 결국 성물방, 외부에 있던 신자들에게 묻고 물어 자매님 픽 성전의 보물인 성모자상을 끝내 찾아냈다. 랑카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들에게 친절하지만 성당 안에서는 그 선량함이 더욱더 진하게 느껴진다.  종교를 넘어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마음,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따뜻한 손길. 이를 가슴으로 느낄 때면 나도 더욱 사랑을 실천하고 싶은 용기가 저절로 피어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

세상을 처음 만나는 관문 


시시각각 신비로운 빛깔로 머무는 자리마다 수놓는 스테인글라스 향연 속에 머물다 보니 어린 시절 빛의 마법을 선사하던 옛 성당의 기억이 떠오른다. 한국 성당 중 가장 오래된 근대성당 중 하나인 인천 답동 성바오로 성당. 수도로 향하는 관문이며 외국 무역의 거점이 되는 인천에 세워진 주교좌성당으로 위치로나 의미에서나 여러모로 St. Mary 성당과 닮아 있다. 무엇보다 성당에 들어서면 성당 전체를 감싸는 긴 아치형의 창문을 통해 빛의 조각들이 쉴 새 없이 반짝이는데, 홀로 앉아 기도 중이라면 더 특별한 은총을 선사한다. 


대성전 오른쪽에는 옛 주교관으로 쓰던 목조건물을 신축하여 만들어진 인천교구 역사관도 둘러볼 수 있다. Mission House에서 성모님을 만났던 축복처럼 역사관에서는 인천교구가 걸어온 역사를 함께 할 수 있었다.근대화 이후 밀집한 노동자들의 인권과 존엄이 무너지던 시대 교회가 어떻게 세상에 맞서 목소리를 냈는지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과 동행했는지 가까이 알 수 있었다. 세계교회와 한국이 처음 만난 자리인 인천 그리고 스리랑카의 관문이었던 니곰보 그리고 그 교구를 관장하는 답동성당과 St.Mary Church. 건축양식과 겉모습은 다를지 몰라도 역동하는 역사 속 걸어온 길 그리고 보편교회로서의 정신이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성당이 전한 다섯가지 보물 


이제 성전을 나와 네곰보 시내 구경을 간다. 기름 부족으로 배가 출항을 못하게 되면서 어시장은 한산했고 수많은 배는 부두에 멈춰져 있다. 평소라면 타지 않았겠지만 내수 진작을 위해 Dutch Canal에서 짧게 보트를 타보기로 했다. 천천히 마주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가톨릭 교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오랜만에 나는 보트 소리가 반가웠는지 모두들 손도 흔들어주고 반가워해 주신다. 우리 배를 태워주신 분은 무려 한 달간 일을 나가지 못했는데 오늘 뱃삯으로 가족의 생계비를 버실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 하신다. 그저 묵묵한 정직함으로 삶의 지켜내는 사람들의 고된 일상의 표정을 읽으며, 먼바다에 파도처럼 일렁이는 St. Mary 성당을 바라본다.

인내심, 관대함, 감사함, 선량함 그리고 정직함


가장 평범하고 당연한 듯 하지만 어느 하나 삶 속에 온전히 녹여내기 쉽지 않은 신념들. 성탄과 부활 이곳을 방문하며 발견한 나만의 5가지 보물들이다. 어쩌면 누군가의 깊은 심연을 먼저 알아채고 희생과 사랑으로 물을 줘야만 가꿔갈 수 있는 마음들이다. 매일 다짐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 불확실성 속에 피어나는 조바심,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것에서 불평불만이 쌓이고 나는 분명 또다시 삐걱거릴 것이다. 하지만 삶의 중심축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넘어져도 무게 중심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완벽하지 않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포근히 안아주는 품 속 지구별 5 원소처럼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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